폭풍이 지나간 자리

그 후에 나에게 남은 것

by 따뜻한 말 한마디

작년 가을,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라는 큰 폭풍이 나에게 오면서 3개월의 휴직을 했다. 그리고 집에서 재충전을 한 후에 복직을 해서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있다. 나의 경우 이전 부서에서 일을 하던 도중 회사에서 Acting Out이 일어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직을 했다. 회사에서 큰 이벤트가 일어났기 때문인지, 나는 조직 이동이라는 배려 아닌 배려를 받아 복직을 한 후 새로운 조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가을과 겨울에 나에게 불어닥쳤던 폭풍의 흔적을 새삼스레 느끼는 중이다. 대략 5개월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어떨까?


예기 불안

예기 불안은 경험자가 아니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공황을 겪었던 장소를 지나가거나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공포감과 불안을 느끼면서 심장이 요동을 친다. 그에 따라 호흡도 가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문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예기 불안에 시달리는 것인데 특히 회사 같은 경우는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많이 힘든 상황이다. 특히 새로운 조직에 배정이 된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병력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불안하거나 공황을 느낄 것 같은 상황이 와도 이해를 시키는 게 쉽지 않고, 그 과정 또한 험난하다. 이 때문에 가슴속에 불안을 안고 살지만 내 속으로만 가라앉히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안고 가야 할 증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하고 차분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무덤덤 해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힘들다.


사람과의 거리 두기

예전의 나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항상 먼저 다가가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퇴근 후나 주말에 친한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하지만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심해지고 난 후, 그 사람들은 떠나갔다. 떠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어도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 예전과는 다른 의미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과 멀어진 만큼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가고 실행하고 있지만 외로운 감정이 들 때가 적잖이 있다. 이럴 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한다.


말수가 적어진다

인간관계가 좁아지면서 자연스레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게 된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이후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아마도 내 곁에 사람을 더 두었다가는 그 사람들 또한 떠나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내 주변에 사람을 별로 두지 않게 되어 말수가 적어진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굳이 내 상태를 말하고 싶지 않고, 이해를 구하기도 껄끄러워 그런 것이다.


의욕의 저하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본격화되기 전, 나는 회사 생활에 의욕적인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내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내 일이 아닌 일도 많이 맡았고 잘 되지 않았을 경우 내가 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도 많아졌다. 그로 인해 감정 조절의 어려움, 스트레스의 거대화 그리고 공황 증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휴직을 하면서 나 자신의 의욕도 많이 없어진 상태이다. 의욕적인 내 자아가 활성화될 경우 내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경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전의 밝고 의욕적이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지는 때도 있다. 내 건강 유지와 의욕 사이에서 아직까지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지금이다.


복직을 한 지도 3주가 다 되어간다. 아직까지는 폭풍의 흔적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이런 흔적을 다 없애고 예전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만, 어찌 보면 상기 흔적들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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