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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Aug 13. 2024

05. 균형의 법칙

아도무카브륵샤아사나


  용기 내 고백하자면 요즘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분명 아침 여섯 시, 개운하게 눈을 떠도 괜히 기화 직전 피로를 이불 끄트머리에 둘둘 말아 무릎 사이에 끌어다 끼운다.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 충전 케이블을 뽑고 또 유튜브를 연다. 딱히 한 것 없던 전날 밤, '그래, 차라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했던 미라클 모닝은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추천 못할 만큼 보고 또 본 쇼츠에 40초, 1분, 3분씩 밀리더니 루틴은커녕 기적적으로 사라진다. 결국 화장대 대신 빨간 신호마다 운전대에서 화장할 만큼 준비시간만 남기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밍기적거림의 관성은 탄력 잃은 고도비만 환자 뱃살처럼 회사에서도 축축 늘어진다. 종종걸음 같은 후배들 타이핑 소리 사이 느슨한 나의 마우스 클릭이 악장 전환처럼 드문드문 낀다. 회사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참 재미없다. 공중분해가 될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일, 노력 대비 광(光) 나는 일, 몇 날며칠 해도 알아주지도 않는 일. 입사 십 N연차가 되니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근무시간 나를 저전력모드로 전환시킨다. 회사에서 풀 액셀을 밟고 나면 퇴근 후 '진짜 내 것'을 할 에너지가 없을 테니까! 저연차 때 얄밉던 대리 과장 아저씨가 겹쳐 보이다가, 그래도 나는 할 땐 제대로 한다며 당연한 소리를 대단한 것처럼 한다.

 

  오늘 아침 막 돌아가던 쇼츠 중에 이동진 평론가가 나왔다. "워라밸에만 집중하는 건 퇴근 후 시간만이 인생이라 생각하는 아주 불행한 관점이에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확한 대사 인용을 위해 유튜브 '기록'탭을 다시 뒤져봤지만 이후로도 봐버린 쇼츠가 258단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쌓여 있어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 논지였던 것은 맞다. 얼추 십 년 전 회사 후배와 짧은 대화가 느닷없이 생각났으니.


  "인생에서 제일 젊은 시기에,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니까, 대충 하면 너무 아깝잖아! 내가 하는 만큼 성장하는 것 같아!"


  고작 사회생활 몇 년 차 주임이 이동진과 맞먹는 해안을 갖고 있었다니! 그때 나는 회사 광합성론자였다. 브이룩업, 섬프로덕트 같은 엑셀 함수를 현란하게 다루는 내 손가락, 몇 주 동안 새벽 퇴근하며 기획한 행사에 바글바글한 고객들, 모두 혀를 내두르는 까칠한 선배나 업체가 나에게는 다정하게 협조할 때 뿌듯함이 스물 여섯 살 나의 엽록체였는지 내 몸 구석구석 여린 연둣빛 새순이 하나 둘 터지는 재미를 즐겼다. 그런데 지금은 볕이 부족했는지, 통풍을 안 시켰는지, 물을 되려 많이 줘버렸는지. 아님 분갈이 시기를 놓쳤나? 새순은커녕 뿌리 근처 잎이 누렇게 말라 간당간당 붙어있는 듯하다. 낮에 회사에서 에너지를 비축했다 생각했는데, 집에 와보니 공회전만 할 뿐이다. 마치 방치된 자동차 배터리처럼. 1인 가구의 BGM일 뿐인 TV에서 <여섯 시 내 고향>이 끝날 때까지 출근복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틀어 놓은 방송이 <여섯 시 내 고향>인 것도 MC들의 클로징 멘트를 듣고서야 알았다.) '무기력'이라는 단어도 과분한 그저 '게으름'에 죄책감을 느끼며 겨우 몸을 일으켜 빨래나 갠다. 오늘 밤도 이러다 지나가겠지.




  유독 푸시업과 하이 플랭크를 많이 시키던 수업에서 선생님은 15분쯤 남기고 아도무카브륵샤아사나 시범을 보였다. 엎드려뻗쳐에서 한 발을 차올려 양손으로 물구나무를 부드럽게 섰다 내려와선 회원 두 명씩 짝을 지어줬다. 나는 갓 태어난 망아지 뒷발질처럼 껑충대다 잡아주려던 파트너 얼굴을 찰 뻔했다. 겁먹은 그녀가 비켜선 지도 모르고 바로 또 시도하다 어깨 관절이 찝히면서 등으로 추락했다. 땀에 절은 등짝과 마룻바닥의 마찰음이 수련실을 울렸다. 선생님은 한달음에 달려와 그나마 안전하게 떨어진 거라며, 겁먹지 말고 다시! 하곤 매트 앞에 양손을 벌리고 섰다. 오장육부의 여진이 남은 채로 엎드려뻗쳐 자세를 잡는데 선생님이 덧붙였다.

  "오히려 발은 무겁게 바닥을 딛고, 시선은 가려는 곳을 보세요."

  어깨가 열리고 어쨌든 다리가 들렸고, 마침내 선생님 양손 사이로 겁먹은 골반이 착지했다.




  5년 간 새벽 야근이 당연했던 부서에서 칼퇴는 물론 퇴근 전 가방 싸고 책상 정리까지 할 수 있는 지금 팀으로 옮긴 지 일 년 반. 종종 받는 안부 연락에 입사 후 역대급 워라밸이라 답했다. 선배 동료들은 그래 그동안 너무 일에 치였으니 이제 좀 쉬엄쉬엄하라 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하루가 아니라 재직기간 전체를 기준으로 다시 맞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유를 즐기려 할수록 시소대는 균형을 잡긴커녕 한쪽으로 계속 기울어지더니, 결국 붕괴! 그런데 이번엔 워크 붕괴였다.


  매년 11월이면 몇 백 명씩 대규모 인사발령이 나는 회사에서 애초에 '내 일'은 없었다. 언제든 근무지와 직무가 변경될 수 있었고, 내가 공들여 차려놓은 내년도 밥상을 새로 온 누군가가 냉큼 수저만 얹거나, 엎어버리거나 어느 쪽도 당연했다. (나도 누군가의 밥상을 홀랑 먹은 적이 있으니.) 그래서 '일=나'가 되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회사 일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닌 회사의 것이니까. 내가 뺏겼다 말았다 할 영역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 없이도 회사는 다 굴러가'를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은 시스템 속 일개 부품으로서 태만한 자조보단, 어쨌든 대기업을 다닌다는 배부른 자만에 더 가까웠다.


  결국 일에 쿨하지 못했다. 두 번의 발령을 거쳐 사내에서 가장 하고 싶던 직무를 맡자 책임감과 자부심, 재미가 깊어진 만큼 일과의 거리 조절은 실패했다. 힘든 상사와 월급 루팡 옆자리 팀원, 세포분열하는 업무량에 매일 울면서도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놓아주지 못했다. 그 일을 놓으면 내가 아닐 것 같았고, 그 일을 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새 부서에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란 밈처럼 적게 일하고 더 좋은 고과를 받았다. 하지만 성취감은 없었다. 나름 사내에서 원하는 커리어 맵을 그려 온 줄 알았는데, 발 앞에 뜬금없이 툭 떨어져 깨진 나침반에 한동안 멍했다. 점심시간마다 오른손으론 직원식당 급식 반찬을, 왼손으론 채용 어플을 뒤적댔다. 이직도 하려면 진작 직급 가벼울 때 할 걸. 퇴근길엔 두 귀를 스칠 뿐일 재테크 유튜브를 들었다. 근무 중에 주식창만 보던 한심한 회사 아재들이 이제 보니 어쩜 더 현명했을지도. 자기 전 침대에서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인의 피드를 봐버렸다. 사업도 배포가 있어야 하는데 내 배포는 그냥 월급쟁이 사이즈지, 뭐. 업무상 여유는 마음의 분란만 늘렸다. 두꺼워진 방황의 시간은 조급함을 옥죄었다. 이제는 나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텐데, 뭘 해야 하는지는 둘째치고 성장이 뭔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설프게 그은 '성장'이란 테두리 밖에 아직 선택받지 못해 곧 깍두기 신세가 될 동네 꼬마처럼 '회사일'은 남아있었다. 테두리 안의 정의를 골똘히 생각할수록 경계선만 더 짙어졌다. 한때 회사 광합성론자가 이렇게나 바뀌다니. 팬이 한 끗으로 안티가 된다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SNS에 올라오는 핸드스탠드 사진에선 균형이 가장 중요해 보였다. 선생님도 일단 거꾸로 선 내 골반을 잡고는 외줄 위 어름사니가 벌린 양팔 대신 (지금은 팔이 발이 되었으니) 두 발을 앞 뒤로 쫙 벌려 균형을 잡으라고 했다. 어느 쪽이 더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않게, 일과 일상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회사원의 번뇌만큼이나 힘들었다. 수업은 며칠 연속 핸드스탠드에 집중했다. 파트너를 위협하던 망아지 뒷발질도 어느새 나무에 열매를 따는 우아한 코끼리 코처럼 나름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균형의 시작을 알게 됐다. 공중의 두 다리가 아니라 처음 매트에 양손을 짚었을 때 무겁게 바닥을 미는 발, 전방을 향한 시선부터가 균형의 출발이었다.


  몸의 균형 감각을 깨우니 잦은 워라밸 붕괴의 원인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딛고 선 여기에 대한 묵직한 인식, 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용기. 이 두 가지가 단단히 역할을 할 때 내 몸과 마음은 거꾸로든 똑바로든 휘청대지 않았다. 파사삭 부서진 공갈빵 같은 회사일로 빚은 자존감에서 내 노력과 열정의 함량이 적어도 이스트 1t스푼은 됐으리라는 위로가 긍정으로 바뀌었다. 언제든 내가 대체될 것을 알면서도 온전히 내 것으로 진심을 다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내 일, 그리고 일을 하는 나였다. 바닥에 딛은 발바닥부터 발목, 종아리, 햄스트링, 엉덩이까지 뻐근하게 힘이 찬다. 이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앞을 본다. 흠, 고개는 들었지만 솔직히 시선이 머물 곳은 아직 모르겠다. 업무능력이 아닌 사회생활에 더 치중해 이 회사에서 갈데까지 가볼지, 진짜 오롯한 내 평생 일을 어떻게 찾고 해낼지. 하지만 뻗은 발 끝에 힘이 빠지지 않게, 어물쩡 그대로 주저않지 않게, 회피하지 않고 앞을 노려본다. 그리고 일단 내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이불부터 발로 차버리고 벌떡 일어나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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