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코나아사나
한 명의 등장으로 토요일 오전 수업 시공간이 바뀌었다. 파란 7부 레깅스, 짙은 보라색 민소매 탑에 자줏빛 투명 트라이탄 물통을 든 키 180센티미터쯤의 독일계(추정) 백인 여성이 금발을 질끈 묶으며 수련실로 들어왔다. 10년 전에 힙한 감성으로 대구에서 강남역까지 진출한 F&B 대표님을 만난 적 있었는데, 다음 업장의 인테리어는 수염 기르고 타투한 남직원들이라던 그때 인터뷰가 떠올랐다. 역시 분위기를 만드는 건 비싼 가구, 낯선 음악, 강렬한 향보다 사람이다. 그런 유명한 속담도 있지 않는가? "사탄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내가 사는 인천 송도는 '국제 도시' 타이틀에 맞게 대형마트 무인계산대 삼 분의 일은, 지하철 좌석 한 줄마다 한 둘은, 셀프 주유소 내 앞 뒤 옆 차 중 한 대에는 외국인이 있다. 오늘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 6층에서 핑크색 킥보드를 밀고 들어와 또박또박 "안녕하세요, 나는 여덟 살이에요."라고 한국말을 하던 큰 눈의 뽀글 머리 소녀도,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나란히 신호를 기다리던 골든레트리버 보호자도, 바뀐 신호에 물수제비처럼 맞은편에서 튀어나온 자전거 탄 중년 여성도 모두 외국인이다. 인종도 국가도 성별도 연령도 다양하다. <심즈>에서 만든 것 같은 단정한 공원 옆으로 표정 없는 고층 글라스 빌딩들이 짝다리를 짚고 선 동네 배경 탓에 이태원의 미래 버전 메타버스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양 손바닥 사이 <해밀톤 호텔>을 두고 녹사평역, 한강진역 방향으로 쭉 눌러 펴서 지저분한 것들은 자 대고 슥슥 잘라내면 여기일 것 같다. 가상현실이라 그런가, 여기서 일 년 반을 사는 동안 영어 실력은 안 늘고 외국인과 자연스러운 눈인사만 늘었다. 그럼에도 동네 요가원에서 전형적인 백인을 보니 하멜을 처음 발견한 조선인처럼 당황했다. 여기까지 외국인이라니? 매일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수련실을 내가 굉장히 내밀한 영역으로 여기고 있었구나 불현듯 깨달았다.
전면 거울로 그녀를 흘끔 대다 그녀와 나 사이 다른 회원들이 몇 명인가 세어봤다. 수업 후반에 두 명씩 짝이 되어 서로 자세를 도와줄 때 혹여나 파트너가 될까 봐. 어제 <스픽*>이 5분만이라도 영어 회화 연습을 하라고 애절하게 보낸 푸시 메시지를 엄지로 쓱 올려 지워버린 것이 후회됐다. 기지개를 켜며 수련실을 둘러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초점은 시위에서 삐끗 오발사된 활처럼 매가리 없이 창 밖으로 던져졌다.
수업이 시작됐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원장님과 선생님, 주로 승무원이나 명문대생, 글로벌 바이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회원들이 대부분이라 영어도 무리가 없을 텐데 한국어로 진행됐다. 당연하지. 근데 왜 나는 영어로 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지독한 사대주의 콤플렉스다. 반면 그녀는 한국어를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미숙해 보였다. 한 박자씩 늦거나 한 세트씩 더했다.
그녀를 보니 나의 파리, 베를린, 발리가 생각났다.
7년 전 처음 유럽을 혼자 갔다. 베를린으로 들어가 파리로 나오는 일정으로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자마자 <NRC> 어플부터 켰다. Nike Run Club의 약자인데, 나이키가 러너들을 위해 (라곤 하지만 실은 빨리 러닝화를 닳게 해 매출을 올리려고) 만든 앱이다. 페이스 측정도 해주고 꾸준히 뛸 동기 부여 챌린지도 걸어주고, 도시마다 러닝 세션도 열어준다. 여정에 맞는 세션이 있나 검색했더니 마침 파리 한 카페에서 인근 공원까지 4킬로미터를 뛰어가 40분짜리 워크아웃을 하는 이벤트가 있어 등록했다. 나이키 했으니 이젠 아디다스! 아디다스 런베이스 독일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당시 경리단길 꼭대기에 생긴 <아디다스 런 베이스 서울>에서 주 2회 러닝 트레이닝을 받을 때라, 아디다스 본고장에 간다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원수간 키스 벽화 못지않게 <런 베이스>도 꼭 가봐야지 했다. 새벽 1시 베를린 호텔에 도착하는 날 아침 6시 세션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호텔과 <런 베이스>는 걸어서 15분. 우리나라로 치면 경리단길, 연무장길, 을지로 같이 거칠고 힙한 감성의 젊은 동네에 있었다. 베를린 하면 유명한 대형 클럽도 꽤 모여 있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이었는데, 그 일대에 가장 핫한 카페와 맛집, 펍, 서점을 거점으로 로컬 트레이너가 10킬로미터를 함께 뛰는 프로그램이었다. 나의 두 발이 트렌디한 시티투어버스가 된다니! 아직 있지도 않은 시차나 피곤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바로 현지 유학 중이던 선배의 도움으로 페이팔 결제까지 끝내버렸다.
<런 베이스 베를린>은 역시 원조집다웠다. 이차선 경리단길이 보이는 통창 GX룸에 블랙 앤 화이트 락커, 감성이라면 (그마저도 가끔만 오픈하는) 남산타워 뷰 루프탑이 전부인 서울과 달랐다. 오래된 회색 벽돌 체육관을 개조한 원조집은 외벽엔 빈티지한 목조 간살을 덧댔고, 실내엔 아디다스 시그니처 블랙으로 리셉션과 라운지를 도장해 놨다. 라운지를 꺾어 들어가니 자작나무 원목과 화이트 벽, 크고 작은 식물이 놓인 비건 카페에서 두 백인 여성이 비비드한 착즙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카페 뒷문으로 나가니 하늘색, 주황색, 하얀색 페인트가 면과 선으로 칠해진 보도블록 공터가 나왔다. 방금 내가 나온 건물 양 옆으로 양철 슬레이트와 화이트 아크릴 외벽의 물류창고 같은 체육관이 서로 마주 보고 서있었다. 맞은편 담장까지 요새처럼 싸인 운동장 끝에 홈페이지에서 본 오늘 코치가 두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풀고 있었다. 딱 붙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의 새파란 민소매탑과 연한 에메랄드그린 러닝 쇼츠를 입은 코치는 양 옆으로 넓게 벌린 다리를 한쪽씩 굽혀가며 안쪽 허벅지를 늘렸다. 아직 낮게 걸린 아침 햇살이 그녀의 드러난 어깨 근육과 높게 묶은 웨이브진 금발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두 남자는 깔끔하게 운동복을 입은 <나 홀로 집에> 두 도둑 같았다. 키 190센티미터는 돼 보이는 한 명은 헐렁한 검정 드라이핏 반팔과 반바지 탓에 넓은 어깨와 얄쌍한 종아리가 더 도드라졌다. 그 덕에 운동복보단 일상복에 가까운 네이비 티셔츠와 회색 반바지를 입은 다른 한 명이 유독 땅딸하게 보였다. 공터에 들어선 나를 향한 시선과 함께 그들의 수다와 스트레칭이 잠시 멈췄다 다시 이어졌다. 나는 카페 뒷문과 그들 중간 어디쯤 가다 말고 어색하게 쪼그려 앉아 애꿎은 운동화 끈만 다시 묶었다.
6시에 맞춰 도착한 젊은 남녀에 섞여 코치와 나 홀로 집 콤비에게 갔다. 코치는 짧은 훈련 후 동네 한 바퀴를 돌 것이라며 '날아라 슛돌이'에서 본 작은 고깔과 사다리 스텝을 깔았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는 하하호호였지만 내겐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영어를 못해서 안 건 것은 아닐 것이다.) 작(아 보였겠지만 난 165센티미터)고 어(려 보였겠지만 이미 서른은 넘어버)린 동양 여자애를 새벽 댓바람부터 동네 속의 동네에서 본 의아함 때문인지, 아님 수줍은 코리안 걸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배려인지, 혹은 그저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태도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스스로 만든 낯섦과 머쓱함이 그들로 인해 소외감으로 증폭됐다. 그래서 더 빨리 잰 발로 고깔을 넘기고, 가슴까지 무릎을 차올리며 사다리 스텝을 밟았다. 서양인과 체급차에 굴복하지 않은 2002년 월드컵 태극전사들처럼 메이드인 경리단길 근력과 소월길 근성을 최대한 끌어냈다. 비록 태극전사는 4강전에서 독일에 패했지만 나는 선두 그룹으로 동네 한 바퀴를 여유 있게 들어왔다. (목에서 피맛은 살짝 났지만.)
파리도 비슷했다. 세션 내내 포토그래퍼가 운동하는 모습을 찍고 NRC 계정 메일로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다. 풀샷, 그룹샷, 원샷 원샷.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앵글에 나는 빠지는 것 같았다. 역시 한국에 돌아와 몇 주가 지나도 메일함에 새 메일은 없었다. 당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사그라들었고, BTS와 블랙핑크는 없었다. 그 여행 중 어느 날 파리 뒷골목에서 잠깐 쉬러 나온 식당 직원들이 내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길까지 건너와 방귀를 뿡 뀌고 저들끼리 낄낄대는 것이 나의 수모가 아니라 그들의 수치인지 모를 때였으니, 세션에서 배척이 이방인에 대한 경계보단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훑고 간 이름 모를 공원의 말간 얼굴, 고가도로 아래 진한 연기와 냄새를 풍기던 부어스트 노점, 무지개색 머리에 손바닥만 한 망사, 비닐, 가죽을 걸치고 아침 여덟 시에도 클럽에 들어가던 무리까지. 크로이베츠베르크 아침 조깅은 몇 분대 페이스, 몇 킬로미터 루트의 숫자 기록이 아닌 낯선 배경이 내 안의 풍경으로 번지는 감각으로 기억됐다. 운동을 끝낸 파리 공원에서 카페로 다 같이 돌아오는 길에 "평소에 러닝 자주 해? 잘 뛰더라 너." "너 나이키 옷 이쁘다. 어디서 샀어?"라고 먼저 물어 준 백인 모녀의 다정한 눈빛은 여행자에게 이웃이란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줬다.
그리고 다음 해, 친한 언니 둘과 발리 서핑트립을 갔다. 1일 2입수 전지훈련에 피로가 정점을 찍은 출국 전 날, 식당에서 말을 트게 된 또래 한국 여자 여행객들이 오늘도 요가원에 간다며 전단지 하나를 꺼냈다. 누구나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인 데다 괜찮은 마사지샵 가격 정도에 무엇보다 스튜디오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추천했다. 그때도 요가를 하긴 하던 나와 요가 지도자 과정을 막 시작한 언니, 그리고 이미 10년 차 필라테스 강사인 다른 언니까지. 우린 동시에 전단지 스케줄표에서 지금 당장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찾았다.
요가원은 바뚜볼룽 해변에서 마을로 500미터를 들어갔다. 야자수 잎 그늘을 밟으며 요가원 대문에 들어서니 가네샤*석고상이 정원과 연못을 지키고 있었다. 정원을 향해 아예 뚫어버린 1층 벽과 그쪽을 바라보게 놓은 널찍한 패브릭 쿠션 소파, 짙은 팔로산토 향이 더위에 달아오른 호흡을 의식의 입구에 차분히 내려놓았다. 구불거리는 짙은 갈색머리를 늘어트린 중동계 여성이 데스크에서 눈인사를 보냈다. 곧 시작할 수업을 듣겠다고 하니 매트를 하나씩 챙겨주며 2층으로 안내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둘러싼 대나무 벽은 숲에서 그대로 잘라다 엮었는지 웅장하리만큼 높았고 그대로 수련실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계단 커브를 돌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멈칫, 큰 후회가 밀려왔다.
"아, 여기 진작 올 걸!"
수련실은 동남아식 라탄 게르 같았다. 한 층을 더 만들어도 될 만큼 높은 천고의 종마루를 중심으로 밝고 얇은 목재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었고, 그것을 또 다른 질감의 서까래가 가로로 원을 그리며 잡아줬다. 정원으로 트여있던 1층 그 방향 그대로 2층도 허리 높이 죽란 위로는 창문도 없었다. 오던 길에 그늘만 밟은 그 야자수의 리드미컬한 정수리 움직임이 눈에 가득 찼다. 반질반질한 원목바닥에 볕뉘가 바람처럼 일렁였다. 예수님 머리의 백인 남자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등지고 요가블록을 깔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그런 그를 60명은 족히 넘는 (대부분 유럽이나 호주 출신으로 보이는) 수련생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구운 아몬드색 요가 매트와 초콜릿색 볼스터를 깔고 촘촘히 앉아 있었다. '이런데 사람을 더 받았다고?' 이미 양 옆으로 손 뻗는 동작은 불가능해 보이는 인구 밀도에 우리 셋까지 보탤 수는 없겠다 싶어 다시 내려갈까 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자기 매트를 몇 센티미터씩이라도 옮겼다. 우리는 셋인데 "여기!" 자리가 났다고 손을 드는 사람들은 다섯이나 됐다. 한 명은 첫 줄 중앙에, 하나는 왼쪽 중간에 나는 오른쪽 뒷 줄에 뿔뿔이 흩어져 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정렬에 대해 수련했다. 고요한 이완을 지향하는 인요가*수업이라 몸도 영어 리스닝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마사지 대신 온 건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숨 한번 가쁘지 않고 80분이 지난 게 아쉬웠다. 하지만 마지막 10분의 사바아사나가 모든 걸 전복했다. 심지어 이 7박 8일의 여행 전체를! 바람에도 질감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태양에 그을린 바다의 짠내, 문짝만한 열대 나뭇잎이 털다 남은 낡은 오토바이 매연, 지구 허리춤에만 서식하는 손바닥만한 새의 울음마저 실어 온 바람이 수련실 60여 명의 날숨을 보듬었다. 팔다리 가슴에 스치는 공기만으로 500미터 밖 파도가 잔음으로 들리고 열대의 초록빛이 피부에 스몄다.
여행 짐을 쌀 때는 러닝화와 요가복을 늘 먼저 챙긴다. 여행지에서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루라도 운동을 빼먹으면 안 된다는 유난스러운 강박이라기 보단, 낯선 장소에서 가장 익숙한 행위를 하는 것이 좋아서다. 여행지를 원래 살던 곳처럼 대할 때 몇 박 며칠 시한부 임시 인생을 갈아 끼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새로운 인생을 하나 더 얻는 기분이다. 그래서 발리에서도 일주일 내내 한 숙소에만 머물고, 플리플랍을 끌며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그 길목마다 마주치는 얼굴 하나 둘 익혀가고, 마음에 드는 식당은 아침저녁으로 가고, 학교 가듯 일출시간에 맞춰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 우연히 간 요가원에서야 비로소 여행지가 아닌 '내 동네'에 묵직하게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올해 초 회사에서 근속 15년을 채웠다고 안식월을 다녀오라고 했다. 흔치 않은 장기 휴가에 멀어서 못 갔던 유럽을 돌아볼까, 다들 한다는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할까 고민만 하다 결국 안식월 자체를 미뤘다. 계획에 없던 큰 지출도 부담이었지만, 이미 나는 '송도 2년 살기' 프로젝트 중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는 전국구 발령 탓에 좋게 말하면 여행, 솔직히 말하면 표류하는 기분으로 15년을 채웠다. 그래서 낯선 곳에 가면 그렇게 익숙한 척 살고 싶었나 보다. 송도를 처음 온 날도 사무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요가원 상담부터 다녔으니까. 뿌리 없는 존재의 불안을 타지에서 보너스처럼 얻는 삶으로 갈음하려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요가원의 독일 그녀도 연유는 모르지만 조금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한국말도 모르면서 네이버와 인스타그램, 간판 상호도 다 다른 (<08. 타임슬립 수련실> 회차 참고) 동네 속의 동네 요가원을 찾아온 것을 보면 익숙한 일상 찾기에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글을 몰라서 다 다른 상호가 상관없었을 수도.) 그러고 보니 런베이스 코치도 그저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의 당황한 리액션이었을 뿐인데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그때 독일 그녀와의 오해도 청산했으니, 여기 독일 그녀의 보너스 인생에 다정한 환영을 전해야겠다. 파리에서 모녀의 목소리와 눈빛처럼.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트리코나아사나 : '삼각자세'라는 이름처럼 가장 안정적인 구조인 삼각형을 몸으로 만드는 자세이다. 양 발을 앞 뒤로 벌리고 앞 발과 같은 쪽 팔을 바닥으로 뻗어 발목을 잡는다. 이때 허리도 꼿꼿하게 앞쪽으로 굽히고 다른 팔은 하늘을 향해 뻗는다. 삼각자세는 내 몸과 정신, 주변 환경이 서로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를 견고한 삼각구조 아사나에서 호흡하며 알아차린다.
스픽 : 광고을 다시 찍겠다 선언한 이효리가 한동안 "스피킹은 스픽"이라고 광고하던 영어 회화 공부 애플리케이션이다.
가네샤 : 인도 신화 <라마야냐>에 나오는 신으로 남자 몸에 네 개 팔, 코끼리 머리를 가졌다. 지혜, 재산, 행운을 관장한다.
인요가 : 음양(陰陽) 철학에서 온 요가로, 깊은 스트레칭과 고요함을 통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로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