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아사나
오랜만에 요가원을 갔다. 스노보드 타다 다친 어깨 탓에 한 달은 푹 쉬었고, 또 한 달은 두문분출했다. 두 달 사이 요가원엔 새 얼굴이 꽤 늘었다. 수련실 거울을 향해 열댓 명씩 두 줄로 앉는데, 뒷 줄은 이미 모르는 얼굴로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늘 앉던 앞 줄 창가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낯익은 한 분이 뒷 줄 틈에서 서성대다 내 옆에 와 자리를 잡았다. 깡마른 체격에 안경을 써도 큰 눈을 가진 40대 중반 여자 회원님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어 달 늦게 시작했고 원래는 주로 뒷 줄 매트장 바로 앞에 앉았다.
사실 우리 요가원은 신규 회원이 거의 없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단, 네이버에 등록된 상호와 건물 외벽 간판, 인스타그램 계정명, 요가원 입구 보도블록 X폴대마다 이름이 다 다르다. 지금 남자 원장님이 가게를 인수하기 전 이름이 네이버와 외벽에 남아 있고, 이후 보다 심플하게 바꾼 상호가 새로 만든 인스타그램과 X폴대에 들어갔다. 나도 처음에 헷갈렸다고 통일하시는 게 어떻냐니 한 자리에서만 이미 9년째 운영 중인 원장님은 "그래도 올 사람은 알아서 오는데요."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요가원 내부도 이제 요가를, 혹은 운동을 시작해볼까 하는 여자들에겐 덜 매력적일 수 있다. (요가는 여성 회원이 대부분이니까.) 요가원의 핵심인 수련실은 이곳의 강력한 강점이긴 하다. 뜨끈하게 끓는 보일러 열선이 빈틈없이 깔려 있어 한 겨울에도 금세 몸과 마음을 완화시킨다. 요가원 몇 곳을 전전해봤지만 사실 이런 시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겨울에 '와일드 씽*'을 하다 냉골에 발을 딛자마자 그대로 철퍼덕 드러누웠던 적이 (내 팔 힘이 달렸던 것도 있겠지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겨울까지 다녀봐야 아는 부분이고. 먼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라운지와 상담 필수 점검 코스인 탈의실은 감성 요가원보다 터프한 서핑샵에 가깝다. 예쁜 요가복 아래 살짝 드러낸 복근 사진으로 '오요완 (오늘 요가 완료)' 해시태그를 달고 스토리를 올릴 만한 포토스폿은 없다. 카메라 각도를 아무리 돌리고 꺾어도 라운지 한 쪽 하프랙과 벤치프레스, 다섯 마리 강아지, 그리고 배변패드가 걸릴 테니까.
대신 주변 요가원에서 하루 한 번, 주 2회 수강료 수준으로 하루 몇 타임이고 일주일 내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3개월씩 등록해야 한다. 그 정도는 해봐야 변화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원장님의 생각인데, 이 또한 진입장벽일 수 있다. 나도 상담받는 내내 배를 까뒤집고 누운 채 꼬리로 내 허벅지를 톡톡 치며 카드 결제를 독촉한 비숑 녀석이 아니었다면 두세 번째 허들에 걸려 이 요가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신규 회원이 급증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몇 달 전 지역 맘 카페에 올라온 "이 요가원 별로예요."라는 한 줄때문이었다. 상호와 인테리어, 수강료에 그렇게 초연하던 원장님이 한 줄 리뷰에 상처받아 갑자기 콤부차를 한 박스나 사다 놓고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쓰는 회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나도 원장님이 수련 중에 찍어 준 사진까지 첨부해 400자를 꽉 채워 리뷰를 남겼다. 콤부차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콤부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는 첫 3개월을 꾸준히 오면 기본 4~5년은 다니게 되는 곳이다. 오전반 어머니들 태반은 오픈 때부터 다니셨다 하고, 저녁반 한 분은 서울로 이사가고도 한 시간 수련을 위해 왕복 두 시간을 걸려 이곳에 온다. 하루에 두 세 타임씩 연달아 수업을 듣는 분도 꽤 된다. 그만큼 대부분이 숙련자다. 나도 나름 이곳저곳 요가원을 다니며 잔뼈가 굵어졌다 생각했는데, 그들 앞에서는 그저 세꼬시였다. 그들과 비교는 애당초 마음을 접었고, 방해나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다 같이 거울을 보고 외발로 설 때 그들의 주의력을 흩트리는 날파리가 안되려 더 집중했고, 다리를 쭉 벌려 앉아 모두 바닥에 뺨을 대고 엎드릴 때 혼자 고장 난 게임기의 두더지처럼 볼록 솟아 있었지만 어떻게든 고관절을 앞뒤로 흔들며 용을 썼다. 보통 초심자는 부담스러워하는 거울 앞 창가 자리를 고수한 것도 앞은 물론 어둠이 반사한 창문에 비친 옆모습까지 보면서 빨리 자세를 익히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니 한 발로 서 남은 다리와 팔을 T자 모양이 되게 앞뒤로 뻗어 30초는 거뜬히 버텼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바닥에 (컨디션이 좋을 때만) 이마도 닿게 됐다.
숙련자는 자세를 사포질 한다. 살짝 틀어진 골반을 나란히 당기고, 발가락 대신 발등으로 바닥을 누르며 섬세한 균형감을 찾고, 무의식으로 펼친 손가락 사이사이를 단정히 모은다. 선생님들도 숙련자의 미세한 결여를 멀리서 눈으로 찾아내고 말로써 안내한다. 우아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초심자는 자세를 조각한다. 일단 산에서 채굴한 흙 투성이 모난 돌(초심자)을 작업장(매트)으로 덜덜덜 굴려온다. 석조가(선생님)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정과 망치를 휘두른다. 돌은 요란스럽게 파편을 튀기며 모양이 휙휙 바뀐다. 여전히 표면은 거칠고 과정은 부산스럽지만, 다듬어지는 돌도 다듬는 조각가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사포질보다 재밌긴 더 재밌다. 그래선지 원장님은 초심자의 매트까지 올라와 핸즈온*을 해주고 어떤 때는 당사자보다 그 몸에 더 욕심을 내기도 한다.
그 욕심이 투영된 대표 인물이 몇 명있는데, 오늘 그 중 두 명이 첫 줄에 나란히 앉았다. 바로, 나와 내 옆의 40대 회원님. 타고난 근력만 있고 유연하지 않은 내가 바닥과 가깝게 뻗을 때, 유연하지만 근육도 살도 하나 없는 그녀가 바닥과 멀어져 버틸 때 선생님들은 더 신나했다. 나와 그녀도 정체불명의 원석에서 그래도 이젠 어디다 가져다 둘 만한 무언가는 되어가는 것 같아 스스로 대견했다. 직접 이야기는 나눠본 적은 없지만 뚝뚝 흐르는 땀에 윙크 아닌 윙크로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칠 때, 서라운드로 앓는 소리를 체면도 잊고 서로 터트릴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가끔 새로운 자세 시범을 위해 숙련자 대신 모델로 불려 앞으로 나갈 때는 10년 마다 한 번씩 신인그룹을 내는 YG엔터테인먼트의 보석함 데뷔조가 된 것 같았다.
정각이 되자 원장님이 수련실로 들어왔다. 오늘따라 유독 숙련자가 없었다. 오히려 나와 그녀가 고인 물 언저리 이끼 정도가 될 정도로. 새삼 곧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원장님은 수련실 중앙 매트에 앉으며 뒷줄을 천천히 살펴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이 나와 그녀에게 맺었다.
"오늘 수련은 모두에게 큰 성장이 될 거 같네요. 여기 서로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어요."
시작과 끝이 없이 별의 궤도를 그리듯 반복되는 만다라 아사나. 머리서기에서 다리를 등 뒤 바닥으로 넘겨 머리를 축으로 시계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몸을 계속 회전하며 돈다. 반복되는 움직임을 통해 돌아보고 나아가고 나아진다.
*와일드 씽 : 다운도그 자세에서 한 다리를 천장으로 뻗었다 그대로 그 다리를 접고 몸을 비틀며 바닥에 내려 몸을 뒤집어 늘리는 동작
*핸즈온 : 요가 강사가 가벼운 터치로 수련인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