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놓인 군자란(君子蘭)에 주홍색 꽃봉오리가 잎 사이로 피어오르고 있다. 40여 년을 기다리다 두 해 전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이는 늦둥이의 귀한 선물임이 틀림없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며 내 모든 것을 지켜본 이 군자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머니의 얼이 서려 있다. 군자란의 굵은 잎 속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실재 모습인 실상(實像)뿐 아니라,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삶의 기억과 어머니의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허상(虛像)까지 담겨 있는 듯하다. 실상은 허상을 남기고 사라지지만, 기억 속에 남은 허상은 마음을 오가며 실상으로 이어진다. 기억의 허상은 정신이 흐트러지기를 기다리고, 영혼의 허상은 정신이 모아지기를 기다린다. 실상과 허상의 이야기를 마음과 생각, 그리고 정신과 영혼의 이야기로 보고, 실상(實像)과 허상(虛像)을 오가며 그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곳에 가려고 할 때, 그 일이나 장소에 대해 알아보고 적절한 준비를 한다. 준비를 잘하면 할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60년으로 보던 시대가 서서히 사라지고, 이제는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생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60세에서 100세까지의 40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새로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40년의 세월은 현대 문명의 선물이자, 우리가 다시 한번 세상에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60살을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라고 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10간(干)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지(支)가 맞물려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데 60년이 소요된다는 계산이다. 물론 요즘에는 60살 환갑 잔치를 보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60살 회갑이 되면, 10간과 12지를 사용하는 사주팔자(四柱八字)`도 새로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60살 회갑은 태어나서 공부하고 일하며 자녀를 키우며 지나온 60년을 한 생애로 보던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이 세상에서 거듭나는 제2의 삶으로 이어주는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즉 지나간 70년이 다시 시작하는 제2의 삶의 10대에 해당하고, 80년이 20대의 전성기이며, 100년이 40대의 완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삶의 묵상은 삶 속에서 얻은 경험과 체험의 묵상이며, 삶의 실상에는 허상이 숨어 있고, 삶의 허상에는 실상이 숨어 있다. 실상과 허상의 조화는 물질계의 실상이 허(虛)할 때는 정신계의 허상을 보완하고, 허상이 허(虛)할 때는 실상을 보완하며 이루어진다.
현대 생활에서 오는 각종 스트레스로 몸이 허(虛)할 때는 마음을 달래고, 마음이 허(虛)할 때는 몸에 활기를 주는 운동이나 호흡 등을 생각할 수 있으며, 몸과 마음이 허(虛)할 때는 심신수련을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삶의 실상과 허상의 조화에 대한 묵상의 화두는 "관계"이다. 자녀관계, 인간관계, 초월자와의 관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자녀관계나 인간관계의 경우, 누구나 좋은 관계를 원하지만 복잡한 현대 생활의 사회 구조와 놀랍게 발전하는 기술 과학 문명에 편승한 급격한 가치관 변화는 이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정신문화에 부정적인 요소를 자극하여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우리가 지켜왔던 전통, 도덕관, 그리고 기존의 가치관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현대 사회 속에서의 생활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윤리적 행위의 선(善)과 악(惡), 좋고 나쁨, 맞고 틀림, 있고 없음 등과 같은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사고(思考)에서 벗어나, 문화와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전체론적이고 합리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 속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인간관계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세대 갈등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생활 환경과 문화적 배경 또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만족스러운 해답은 없을지라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길은 하나이며, 그 열쇠는 마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불가의 이심전심, 도가의 유유자적, 유가의 덕목, 기독교의 사랑을 통해 마음을 닦고 나누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며 몸과 마음을 더욱 괴롭히게 된다. 지나친 생각이 병이 될 수 있다면, 지혜를 구하는 올바른 생각은 약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닦으며 깨달음을 구하는 지혜의 약은 때로 쓰지만, 인간관계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음식이든 운동이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기도나 명상이든 그 깊은 맛을 깨닫고 즐길 때 우리는 그 일의 달인이 될 수 있다. 달인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없이 정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노력은 여러 사람과 함께할 때 더 수월해진다.
무난한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은 현재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고치기 어려운 병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많은 관계에서는 개선하려다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관계는 점차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삶의 작품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진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로 나누어 보면, 물질세계는 실상의 계(系)로, 정신세계는 허상의 계(系)로 투사될 수 있다. 이때 음과 양의 조화에 따른 실상과 허상의 관계는 양극을 가진 자석처럼, 삼라만상의 최대 단위에서 최소 단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과 현상에 고르게 작용한다. 갈라진 실상의 계(系) 안에는 또 다른 실상과 허상이 존재하고, 허상의 계(系) 안에도 또 다른 실상과 허상이 존재하듯이, 이러한 양극의 구성은 삼라만상의 최소 단위에까지 이어진다.
이에 대한 예시는 우리의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작품"이다. 우리가 하나의 소중한 작품을 만들 때 손의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작품에 담기는 정신이다. 정신계에 속하는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감정이 물질계에 속하는 "작품"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물질계에 속하는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그 안에 숨어있는 예술가의 정성과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물질계의 작품 속에는 정신계의 흐름이 깃들어 있으며, 정신계의 경험과 감정은 훌륭한 작품을 창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진정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물질계나 정신계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삼라만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상과 허상의 양극적 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때로는 실상이 허상을 누르기도 하고, 허상이 실상을 앞서기도 하며,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을 이끄는 실상과 허상의 조화는 삼라만상의 우주 원리에 속한다. 실상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허상이 너무 부각될 때, 이 균형이 깨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상과 허상의 조화는 전체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삶의 여러 문제를 이 전체적 또는 작품적 차원에서 묵상하면서 문제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면을 발견할 때, 우리는 우주 원리에 따르는 실상과 허상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삶의 퍼즐
일생은 삶의 작품이며, 그 작품은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살아있는 실상이다. 삶의 작품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수많은 사건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마치 퍼즐과도 같다.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이 삶의 퍼즐은 언제나 남은 조각들이 있어 늘 미완성이다. 설령 잘 맞춘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세심히 들여다보면 빠진 조각이나 엇갈린 조각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어, 삶의 퍼즐은 완전할 수 없다.
삶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삶의 퍼즐은 개인의 생애에 따라 길고 짧으며, 크고 작기도 하다. 이 삶의 퍼즐을 이루는 각 조각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fact) 등의 실상을 의미하며, 인간관계와 같은 매체를 통해 서로 맞물리게 된다. 이 조각들이 맞물릴 때, 그 이음새에는 때로는 좋은 관계가, 때로는 나쁜 관계, 혹은 힘든 관계가 자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계의 다양함이 결국 우리의 삶을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게 만든다.
삶의 퍼즐은 사건 중심이며, 인간관계는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이를 실상과 허상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에 연계된 인간관계"와 "인간관계에 연계된 사건"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건에 연계된 인간관계"에서는 인간관계가 사건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인간관계에 연계된 사건"에서는 인간관계가 사건의 실상을 넘어 감정 같은 허상에 얽매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삶의 양과 질
삶을 양과 질로 나누어 본다면, 삶의 양은 수명이고, 삶의 질은 일생에 해당한다. 수명은 수평적이며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이고, 일생은 직선적 시간의 굴레를 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수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직선적 시간인 수명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 백 년이라 해도 우주의 150억 년 역사에 비하면 티끌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일생이라는 작품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일생은 유구한 우주 역사 속에 남는 유일무이한 작품이 된다.
현대 생활에서 시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간에 착오가 생기면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거나 비행기를 타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며, 그에 맞춰 일정을 진행한다. 이때 시간은 일정한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똑딱똑딱 흘러간다. 역사적 시간은 객관적이고 직선적이며, 수평적인 연대표 상의 기간을 의미한다.
또한 중요한 회의에 가는 길에 친구가 "늦었어, 시간이 없어, 빨리 가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시험을 볼 때 시간이 부족해 끝을 못 낼 때도 있다. 또는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물처럼 느껴지는 양적 또는 공간적 개념으로 감지된다. 즉, 수평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의 순간이나 기간을 수직적으로 세워 그 안에 내재된 내용을 주관적으로 관찰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어에서는 시간을 표현할 때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한다: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는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며, "카이로스"는 순간, 시절, 기회, 또는 특정한 때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수명과 일생에는 차이가 있다.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직선적인 시간으로 백 년이라고 할 때, 백 년의 흐름은 우주의 150억 년, 인류의 12만 년 역사의 흐름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생은 햇수나 기간에 관계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수많은 순간과 사건을 포함하는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삶의 기간은 사람마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인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人命在天)"라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이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