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멋과 맛

by 실상과 허상

바쁘게 살다 보면, 이따금씩 알 수 없는 허전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밀려오는 삶의 공허함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등의 질문들이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만일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질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멋있는 삶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삶의 활력소로 승화시킨다.

멋있는 삶은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보물을 찾으며 가꾸는 삶이다. 그 삶은 주관적이며,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상대방의 시선도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멋있는 삶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음식이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맛을 아는 사람은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에 소중함을 알며, 본인의 소중한 것도 함께 나누는 깊은 마음을 가진다.


이 세상의 단맛 쓴맛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는 삶의 흐름을 수동적인 자세로 바라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백 년도 못 되는 우리의 삶이 비록 우주의 역사 150억 년, 지구 40억 년, 인류 12만 년에 비해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이 주는 의미는 시간의 길이나 삶의 흐름보다는, 우주 만물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려는 삶의 깊이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쓴맛도 있고, 단맛도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성공과 좌절, 기쁨과 슬픔 등을 맛보게 된다. 분복에 따라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삶을 개발하기도 하며, 기쁘게 살아가기도 하고, 힘들게 살아가기도 한다.

이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우리의 조상들의 가르침이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우주 만물의 흐름에 따르는 태극의 음과 양의 조화로 설명한다. 실로 몸과 마음의 신비로운 구조와 조화, 우주의 별만큼 많은 두뇌의 세포, 숙연해지는 자연의 조화 등은 이 세상의 만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주 만물의 흐름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이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담은 멋이 아닐까 한다.


바뀌는 세상

멀리 떨어져 있는 밤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두 손 모아 소원을 빌던 할머니의 이야기, 고부 갈등으로 말 못 하던 며느리의 하소연, 어린 시절 들었던 달님 이야기, 토끼가 방아를 찧고 이태백이 노닐던 달의 전설 등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달에,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첫발을 디딘다.

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했던 기억들을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그 빈자리는 새로운 사실들로 채워진다. 예를 들어, 지구가 광대한 우주 공간에 덩그러니 홀로 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구와 달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이 작용해 달이 지구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사실 등이 있다.

이 세상은 변했지만,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지구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우리의 삶도 바뀌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변함없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의 본질이야말로 진실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삶의 driving force

주위에 80세 정도 되신 분이 한 분 있었다. 그는 거의 매일 젊은 사람처럼 열심히 뛰었다. 옆에서 뛰는 것을 보고 걱정도 되어 무리가 없는지 조용히 물어본 적이 있다.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기저기 몸에 힘든 부위는 있지만, 젊었을 때부터 뛰었기에 괜찮다는 대답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는 어렸을 때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힘든 생활을 했고, 곧은 성격 탓에 여러 사람과 부딪침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얼굴에 지친 모습이 보였다. 늘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던 분이라 그 변화가 쉽게 눈에 띄었다. 주위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로 인해 마음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분의 driving force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뛰는 힘이 여기까지 인도했고, 그 힘이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상당한 위로를 받은 듯했다.

삶의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그 길이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산을 넘고 또 다른 산을 마주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일 수도 있다. 산 정상에 올라 멀리 내려다보는 기쁨은 잠시뿐, 다시 새로운 산을 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 길을 가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푸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칠 때 힘을 주는 driving force가 있다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삶의 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아갈 수 있다.


목적과 목표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예를 들어, 금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는 운동선수가 해외로 현지 훈련을 떠날 때, 공항에서 여행 목적과 목적지를 기재하게 된다. 이 경우, 여행 목적은 현지 훈련으로서 이 운동선수의 여행 이유를 의미한다. 한편, 어느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새로운 상품을 수출하려고 할 때, 목표액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계획한다. 이 경우, 신상품의 수출 목표는 이윤 창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목적은 주관적인 이유나 가치를, 목표는 객관적이고 방향성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목적과 목표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땅속의 뿌리가 줄기와 잎사귀에 물과 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주고, 줄기와 잎을 보면 그 나무의 뿌리 상태를 알 수 있듯이, 뿌리 깊은 목적은 풍요로운 목표의 열매를 맺게 하고, 건실한 목표는 마음속에 숨겨진 목적의 불을 밝혀준다.

이와 같이 목적과 목표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삶의 목적은 "왜 사는지?"와 같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주관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삶의 목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삶의 목적은 건실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며, 삶의 목표는 삶의 목적을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는 실질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동기부여

어린아이에게 화장실 훈련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부모가 겪는 과제이다. 부모님들은 아기 변기를 이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아이에게 화장실 훈련을 시킨다.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사탕을 이용하여 훈련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 경우, 사탕은 부모님들이 어린 아이들이 화장실 사용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동기부여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동기부여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향학열을 높이기 위해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며, 예술가들은 전시회나 발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인다. 회사에서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보너스 제도를 운영하여 직원들의 성과를 유도한다.

일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배울 때, 마음이 가지 않거나 열정이 부족하면 싫증이 나고 쉽게 짜증이 날 수 있다. 반면, 마음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며 재미를 붙이고 정성을 들이면, 주변의 격려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이는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원동력이 된다.


최선을 다하는 삶

삶의 목표는 삶에 멋과 맛을 더해준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곧 멋진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이며, 그 순간은 또 다른 새로운 목표를 향해 출발해야 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삶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은 삶에 멋과 맛을 더해주는 길이다. 비록 "성인의 삶"은 아닐지 몰라도, "후회 없는 삶",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오늘에 충실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Live life to the fullest"가 이와 같은 삶의 태도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한자에 비춰진 성인

어떤 이들이 성인일까? 교과서에서는 성인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는 거리가 먼 훌륭한 사람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인에 대한 의미를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통해 설명한다. 성인의 한자는 聖人이다. 첫 번째 글자인 성(聖)의 한자는 귀(耳)와 입(口), 그리고 다스림(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성인은 귀(耳)와 입(口)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양의 성인 공자님도 6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가 순해졌다고 전해진다. 공자님은 『논어』의 위정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30세에 뜻이 서고, 40세에 흔들림이 없으며, 50세에 하늘의 뜻을 깨닫고, 60세에 귀가 순해지며, 70세에는 마음먹은 대로 행하여도 거리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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