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많다. 유리나 계란처럼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어질 수 있으며, 나라 간이나 이웃 간의 평화 역시 서로의 이익에 따라 쉽게 깨지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도 그 중 하나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고요하다. 그러한 고요하고 평화롭던 마음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출렁이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서서히 바람이 불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불가에서는 고요한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 평화가 깨어진다고 한다. 이는 마치 작은 돌 하나가 잔잔한 호수에 떨어져 물결을 일으키는 모습과 같다.
고요한 마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그러나 살면서 마주치는 세상의 유혹과 주변과의 갈등은 우리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아 가곤 한다. 불교에서는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고뇌와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기독교에서는 문을 잠그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선물하셨다. 명상은 마음의 수양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처럼 "마음의 평화"라는 과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심신 수련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인다. 산에는 산길, 들에는 들길, 숲에는 숲길, 물에는 물길, 제주에는 올레길, 큰길, 작은길, 골목길 등 우리의 주위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삶 속에도 여러 길이 등장한다. 처음 가는 새로운 길, 여러 번 가서 잘 아는 길, 목적지로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던 기억에 남는 경험의 길도 있으며,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심초사(勞心焦思) 애쓰는 마음의 길도 있다.
길의 한자어는 도로(道路)이다. 도(道)는 우리의 전통문화의 유산이며, 조상들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깊은 산에서 도를 닦는 수도(修道)의 의미를 존중하였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닦는 도(道)의 길은 우리의 마음을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하늘의 도(道)로 인도해 주는 마음의 길이다.
이러한 마음의 길은 복잡한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의 평화는 물론 가정의 평화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마음 수양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물체에는 무게의 중심(重心)이 있다. 우리의 몸에도 무게의 중심`이 있다. 그 중심이 어디인지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힘의 원천지로 단전을 중요시했다. 마음에 무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도 중심(中心)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음의 중심은 신앙의 가르침일 수도 있고, 삶의 목표일 수도 있으며, 무언가를 하고 싶은 열정일 수도 있다. 마음의 중심이 살아 있는 중심이 되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이를 계발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마음의 중심은 우리에게 삶의 힘을 주며, 특히 삶이 힘들 때나 의미를 찾을 때 큰 도움이 된다.
마음의 중심은 모든 생각의 근원점이다. 생각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으며, 그 없던 지점에서부터 생각이 시작된다. 이 생각의 근원점은 생각의 "없음"이 "있음"으로 변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음의 근원점, 혹은 중심점은 "생각이 없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심점에서 순간순간 가지각색의 생각이 생겨나며, 그 생각이 커져 걱정과 근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생각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 즉 마음의 중심점인 “생각이 없는 지점”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부질없는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게 된다. 비워진 마음은 지혜로 채워질 수 있다.
마음의 중심 이동
마음의 중심(中心)은 물체의 무게 중심(重心)과는 다르다.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가 바다 위에서 무게 중심과 부력 중심을 조화롭게 조절하듯이, 마음의 중심도 주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이동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원으로 본다면, 마음의 중심은 그림 1과 같다. 그림 2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 마음의 중심이 두 사람 간의 공통된 부분으로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림 3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마음의 중심이 여러 사람 간의 공통된 부분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그림 4에서처럼 마음의 중심이 각자의 중심점에 고착되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나 인간관계에서 분리된다. 따라서 가족관계나 인간관계 속에서는 마음의 중심이 지혜롭게 가족이나 공동체의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형성된 나무의 결은 그 나무의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은 그 결을 보고 나무를 선택하고, 나무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는 예민한 귀를 가진 연주자는 악기의 결을 보고 그 소리를 예상한다. 나무로 제작된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훌륭한 운동선수 또한 나무의 결을 보고 기구를 고른다. 말없이 꿋꿋이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은 그 결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러한 나무의 결은 날씨와 환경 등 자연의 법칙에 따라 형성된다.
우리의 마음에도 결이 있다면, 그 결은 주변 환경과 사회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가는 인생사가 그 결에 새겨지고, 이는 그 사람의 삶을 증언하는 흔적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결은 불안하고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편안하고 고운 마음의 결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와 함께 마음을 닦고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길
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차선을 따라 움직인다. 만약 도로에 차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오래가지 않아 차량들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산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길이 있다. 자동차는 찻길을, 배는 뱃길을, 비행기는 항로를 따라가고, 우주선도 지구를 벗어나 달이나 다른 행성으로 향할 때 반드시 일정한 궤도를 따라야 한다.
마음속에도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들은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서로 얽히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생각의 길이 분명하면 그 궤도에 머무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제 궤도를 지키는 생각은 다른 생각과 충돌하지 않으며, 결국 하나의 길을 이루어 현재의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게 된다.
마음을 끝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라 가정해 본다면, 우주처럼 사방을 품은 둥근 공간일지도 모른다. 우주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듯, 마음의 원점도 쉽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마음속에 남은 기억이 때때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기억은 직선적으로 흘러가기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감싸며 순환하는 궤도에 가까운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의 평화
우리 주변에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많다. 유리나 계란처럼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어질 수 있으며, 나라 간이나 이웃 간의 평화 역시 서로의 이익에 따라 쉽게 깨지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도 그 중 하나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고요하다. 그러한 고요하고 평화롭던 마음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출렁이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서서히 바람이 불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불가에서는 고요한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 평화가 깨어진다고 한다. 이는 마치 작은 돌 하나가 잔잔한 호수에 떨어져 물결을 일으키는 모습과 같다.
고요한 마음은 우리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그러나 살면서 마주치는 세상의 유혹과 주변과의 갈등은 우리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아 가곤 한다. 불교에서는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고뇌와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고, 기독교에서는 문을 잠그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선물하셨다. 명상은 마음의 수양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처럼 "마음의 평화"라는 과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심신 수련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빛
어릴 때 따라 부르던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어효선 작사, 한용희 작곡)이 떠오른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이 노래는 순수한 마음의 빛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새벽 7시 20분,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이 개발한 '웹' 천체 망원경이 지구에서 약 160만 킬로미터(100만 마일) 떨어진 '라그랑지(Lagrange)' 지점으로 발사되었다. 이 망원경은 빅뱅(우주 태초의 대폭발) 당시 발생한 빛을 관측하며 우주의 기원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우주의 역사가 150억 년, 지구의 역사가 약 40억 년으로 추정되는데, 150억 년 전의 빛을 지금도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주의 신비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처럼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마음에 빛이 있다면, 그 빛 또한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몸은 시간의 제약을 따르지만,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는 시간이나 공간의 틀에 구속받지 않는다. 이 시공간을 넘어서는 영원성을 지닌 우리의 마음은 인간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어린아이의 깨끗한 마음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통해 빛을 발하며, 그 빛은 영원한 마음으로 성장해 나간다.
지금은 사라져 가지만 우리의 옛 마음 속에는 자식을 떠나 보낸 어머니가 한 밤중에 마당에 나와 밥상 앞에 물 한 그릇 떠놓고 두 손 모아 달님에게 자식의 안녕을 비는 모습이 남아 있다. 세상이 변하여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기도 하다. 부모는 하늘을 믿고, 하늘은 어려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달래 준다. 이러한 믿음의 관계는 우리가 어려울 때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믿는 마음은 종교의 기본이기도 하다. 믿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참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믿는 마음, 참는 마음,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등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따뜻한 마음은 아무리 어려운 인간관계라도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는 가족관계, 특히 자녀관계가 아닐까 한다. 자녀관계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촌수로 볼 때, 부부는 무촌, 부모와 자식은 1촌, 형제와 자매는 2촌의 관계이다. 부부의 무촌은 한 몸 한 마음을 뜻하지만, 남남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1촌 관계는 피로 맺어진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대표적인 마음은 참는 마음이다. 부모의 마음은 자신들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은 참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으로부터 존경이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식이 잘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빠지면 자신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매사에 감사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며, 자녀에게 감사하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마음의 상태를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마음이 아프다, 상하다, 들뜨다, 흔들리다, 가라앉다, 좋다, 나쁘다 등의 표현이 있다. 또한 마음의 상태는 우리의 몸, 특히 얼굴이나 음성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말하기도 전에 그 사람의 표정이나 음성을 통해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울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처님의 큰 마음을 배우려 하고, 다른 사람들과 모두 한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움직이는 마음
"마음대로 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될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짜증 나고 귀찮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이 말을 던지곤 한다. "마음대로"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마음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실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기쁜 일, 슬픈 일 등 여러 가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다양한 감정들이 얽히고 움직이면서 우리의 마음이 어디론가 흘러간다면, 그 흐름이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허공에 가득 찬 공기는 낮은 기압 쪽으로 움직여 바람을 일으키고, 산에서 흐르는 물은 낮은 곳을 향해 물길을 따라 흘러 강을 이룬다. 지구는 태양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이처럼 아무 제약이 없어 보이는 자연과 우주에도 저마다 주어진 섭리를 따라 움직이는 길이 존재한다.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움직이고,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어 따뜻한 정이 흐르게 된다. 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마음은 지치고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따라 움직일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며 온갖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둥그런 원 그리기
지구는 우리의 집이다. 광활한 바다와 육지로 덮인 지구는 둥근 공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품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 끝없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작은 점 같은 지구는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우주 자체도 끝없이 펼쳐진, 경계가 없는 거대한 공과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이 둥근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통해 태양 주위를 돌며 그려내는 궤적 속에서 펼쳐진다. 지구의 자전이 그리는 원의 중심은 변하지 않고 지구 깊은 내부에 있으며, 공전의 중심은 지구 바깥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일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시대는 곡선의 시대였던 것 같다. 집도 거리도 길도, 산과 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따라 곡선을 이루며 형성되었다. 반면, 현대는 직선의 시대다. 빌딩도 거리도 길도 직선으로 설계되고 세워진다. 조상들의 사고방식이 곡선형이었다면, 나와 너의 경계가 흐릿하고,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사고방식은 직선형이다. 나와 너의 경계가 뚜렷하고,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다. 사리에 밝고, 좋고 나쁨이 분명하며, 맞고 틀림도 확실하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 속에는 분명 원의 모습이 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을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마음의 원형은 폭풍이 이는 바다의 깊은 곳처럼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다. 우리가 이 마음의 원형을 찾아 둥근 원을 그리며 그 중심에 머무르는 순간, 그것이 곧 행복한 마음의 순간이다.
연못 같은 마음
괴로운 마음이나 미운 마음은 어려운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마치 풀밭에 자라는 잡초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의 마음을 괴롭힌다. 마음을 달래고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아무 방법도 없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무엇인가 방법을 찾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좋고 나쁜 기억, 힘들고 괴로운 감정들이 모여 있다. 이는 마치 주변의 작은 시냇물들이 모여 형성되는 작은 연못과 같다. 주위에서 흘러 들어오는 깨끗한 물, 더러운 물 등 다양한 물들이 모여들어 연못을 이루고, 때로는 그 연못이 진흙탕 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 진흙탕 물 속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고, 그 연꽃의 아름다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큰 마음을, 공자님은 어진 마음을,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전수한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이웃을 배려하며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듣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빈 마음
나이가 들면서 키가 자라고 몸은 커지지만, 마음은 저절로 커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고 책에서 지식을 얻어도 마음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그릇을 비우면 비울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듯이, 마음도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빈 마음이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듯이, 텅 빈 마음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아무 욕심도 거리낌도 없이 텅 비어 있는 마음은 큰 빈 그릇과 같아서,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선한 것뿐만 아니라 악한 것도, 천사의 말뿐만 아니라 마귀의 말도 모두 받아 담는다.
경제 원칙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쫓아낸다는 의미다. 같은 이치로 볼 때,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눌러버리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을 눌러버리며, 마귀의 말이 천사의 말을 눌러버린다. 마귀의 말은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흔드는 유혹의 말이고, 천사의 말은 감사하며 배려하는 마음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마귀의 말과 천사의 말이 항상 엇갈리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수양은 좋은 것이 나쁜 것을 이기고, 선한 것이 악한 것을 이기며, 천사의 말이 마귀의 말을 이기도록 도와준다.
밝은 마음
낮과 밤은 매일 변함없이 찾아온다. 낮에 보이던 사물들은 밤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 보이는 하늘의 별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사물들이 해의 빛이 있거나 없거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자연의 현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있다. 밝은 면만 가진 사람이나 어두운 면만 가진 사람은 없다. 낮과 밤의 이치처럼,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동일한 면일 수도 있다. 단지 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듣는 마음은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 이런 밝은 마음은 우리가 부지런히 마음을 닦을 때 빛나며,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빛을 잃고 어두움에 가려지게 된다.
텅 빈 마음
마음은 형태가 없지만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힘을 그릴 수 없듯이 마음도 직접 그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때로 마음을 하트(heart), 구름, 또는 둥그런 원의 모양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빈 마음을 둥그런 원으로 이해하면, 원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테두리조차 없는 한없이 큰 둥그런 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빈 마음에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테두리가 생기고 크기가 줄어들면서, 온갖 생각, 기억, 걱정, 번뇌가 테두리 없이 둥그런 원 속에 쌓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빈 마음은 고통의 색, 슬픔의 색, 기쁨의 색 등으로 물들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마음에 테두리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생각, 걱정, 번뇌 등을 테두리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더 편안해질 수 있다.
"세상만사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정신도 산만해지고,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마음을 다시 잡으려 하지만, 한 번 흐트러진 마음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달콤한 말을 해주기도 하고, 사탕을 사주기도 하며, 때로는 야단을 치기도 하고, 그냥 울게 내버려 두기도 한다. 싸움터에서 쓰러진 전우를 위해서는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진혼곡을 사용한다.
마음가짐은 내면의 다짐이며, 믿음의 자세이다. 흐트러진 마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다만 강한 믿음을 가진 마음은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마음에 와 닿는 노래나 기도문, 혹은 깊은 호흡법 등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