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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5화- 둘레길을 걷다가

시골살이 적응기 3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반 코스만.

우리 마을을 포함하여 이웃 몇 마을은 커다란 산들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산 허리를 따라 지리산 둘레길이 나있고 꽤 유명한 코스이다. 코스가 워낙 긴 편이라서 중간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친구와 나는 동네에 이렇게 좋은 둘레길을 두고 우리가 안 걸어 줄 순 없다 동의를 했다. 대신 반만 가는 걸로...

점심을 가볍게 먹고 물과 사과 두 개를 챙겨 나섰다. 동네 뒷길을 쭈욱 올라가면 둘레길을 만나게 된다. 비탈이 꽤 졌지만 쉬엄쉬엄 가보기로 했다.

지나는 길에 다랑이 논도 구경하고 새로 지었거나 짓고 있는 펜션들도 훑어보며 갔다. 그나마 집을 한 번 지어봤다고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훈수를 두었다.

둘레길과 만나기 얼마 안 남아서 길가에 집 한 채를 보았다. 황토집인데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살짝만 보고 가기로 했다.


때마침 주인장이 밖으로 나오셨다. 그 바람에 그 집을 짓게 된 배경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왕 오신 거 차 한잔 하면서 내부도 구경시켜 주겠다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하나하나 주인장의 뛰어난 안목과 정성스러운 관리가 돋보였다.

집 구경에 빠져있다 보니 시간이 꽤 흐른 줄도 몰랐다. 서둘러 감사 인사를 하고 우리는 원래대로 둘레길을 올랐다.

둘레길을 걸어 산 골짜기 끝에 이르렀다. 이 산 골짜기는 두 산이 만나는 곳 임과 동시에 고갯 마루를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둘레길이었다.

송골송골 맺힌 땀도 식힐 겸 간식도 먹을 겸 잠시 쉬기로 했다. 점심을 시원찮게 먹고 집 구경에 너무 열중한 탓도 있었다.

이왕 늦은 거 허기나 달래고 가자는 것이었다.

산 아래를 내려보니 장관이 펼쳐졌다. 다랑이 논이 물결처럼 펼쳐져 있었다. 멀리 뵈는 산맥들은 멀어질수록 흐려지며 층층을 이루고 있었다.

또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신나게 둘레길을 걸었다.


돌아 돌아 만나는 낯선 장소와 동네들은 신기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호젓한 둘레길을 걷다 보면 동네가 나왔다.

동네를 둘러 걷다 보면 또 산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계속 걷고 걸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좀 어둑어둑 해진다 하는 정도였던 햇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어둠이 주변을 삼켜 버렸다. 일 이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불빛을 사방으로 비춰 보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모두가 비슷해 보이고 괴기스러웠다.

문득 당황스러웠다.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길을 잃은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것이었다. 순간 온갖 상상이 스쳤다. 당황한 나에 비해 친구는 오히려 차분했다. 나도 정신을 가다듬었다.


119에 구조요청을 할 건 지 아님 다른 방법이 있을지를 생각했다. 119에 전화를 해도 우리가 있는 위치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일단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 보기로 했다.

더듬더듬 내려가다 보니 뭔가 철조망 같은 것이 만져졌다. 불빛을 비쳐보니 커다란 밭을 두른 펜스였다.

아! 이것만 붙잡고 내려가면 왠지 길을 찾을 것만 같았다. 조심조심 철조망을 붙잡고 삼십여 분을 내려간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쪽 아래에서 작은 불빛이 비치는 게 아닌가!

휴우~ 이제는 살았다.

불빛은 산 아래 마을 끝에 위치한 집에서 새어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착할 둘레길의 장소였다.

철조망이 쳐진 밭을 지나고 불빛이 비치던 집 옆으로 나왔다. 자동차가 다닐만한 큰 길이 나왔다. 큰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었고 이따금씩 개가 컹컹 짖는 소리만 들렸다.

마을길을 따라 펜션들이 즐비했다.


정신없이 내려와 버스정류장에 이르렀다. 버스정류장 옆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차 시간을 물었다. 막차는 이미 끊긴 시간이라 했다. 콜택시를 이용하라고 했다. 콜택시를 부르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탈 수 있었다.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몸이 노골노골 해왔다. 졸음이 쏟아졌다.

어쩌다 이렇게 늦었냐고 기사님이 물었다.

기사님 목소리는 마치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 같았다.

둘레길을 걷다가요... 길을 잃어서요... 이렇게...

내 목소리는 모기처럼 잦아들며 잠이 쏟아져 내렸던 거 같다.

#시골살이 #둘레길 #길 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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