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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선 Aug 27. 2022

1화- 아픈 도시를 떠나다

20년 가족으로 살아온 친구가 떠났다

처음에는 차마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너무 아픈 이는 아프다 소리조차 낼 수 없듯이..


20년을 가족으로 살아온 친구 A와 헤어졌다


친구와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만났다. 정반대의 성격에 매력을 느꼈다. 친구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오빠 집에서 불편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똑똑하고 유능했지만 돈이 없어 더 공부하고 싶은 맘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나는 예상과는 달리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회의감마저 드는 상황이었다.

결론은 함께 살면서 친구는 박사과정에 가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고 나는 공부를 접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자그마한 영어교습소였다.

은 적성에도 맞았고 나름 운영이 잘 되는 편이었다. 생활비와 친구 학비를 하고 저축도 할 수 있었다. 친구는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간혹 학부형도 아닌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 이후의 모든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나였다. 학비 생활비 기타 모든 것을... 공사장 청소를 비롯해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 꺼진 자취방을 들어설 때마다 외로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다. 삶의 무게감이었을까? 친구와 함께하는 삶은 그런 외로움을 채워줬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우린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워낙 예민하고 약골이었던 친구가 박사논문 쓰기 두 달 전쯤 난치병을 얻게 되었다. 결국 박사과정은 중도 하차를 해야 했다.

이후부터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 이 병을 고치기 위한 지난한 역경이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20년을....


물어물어 전문 병원도 가보고 용하다는 한의원도 찾아갔다. 별 효과가 없었다. 들이부은 약물 탓에 위장장애가 일기 일쑤이고 병세가 깊어갔다.

어느 날엔가는 아침에 일어나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규했다. 전신 염증성으로 나타나는 증세가 포도막까지 침범한 것이다.


친구는 점점 마음마저 병들어갔다.

간혹 컨디션이 좋을 때는 활기찼지만 우울과 좌절의 기운이 대부분이었다.

죽고 싶다고 까지 했다.

극도로 예민해져 가는 친구와의 삶은 살얼음을 걷는 듯했다. 힘들어 혼자 운 적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아픈 친구를 외면할 수 없었고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컸다.

양방과 한방을 비롯해서 좋다는 것은 다해 보려 했다. 그래도 호전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만병의 근원이 마음이라는 생각과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에 이런저런 수행단체들을 찾았다. 수년을 찾고 다녀보던 끝에, 몸 치료와 마음 치유를 개인과외처럼 밀착해서 해 줄 분을 만났다. 친구는 그분을 스승으로 따랐고 점차로 호전되어갔다. 몸과 마음 모두...

지방에 계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주말마다 왕복 7시간 운전을 해야 했다. 1년여를 그렇게 다니다 그분이 계신 지방에 를 얻기로 했다.


이 후로 친구는 지방에 내려와 있고 나는 서울에서 계속 일을 했다. 주말이면 내려오기를 반복하던 끝에 아예 시골에 집을 짓자는 쪽으로 매듭을 졌다.

나도 서서히 서울 삶을 정리하고 내려가는 것을 계획했다.


발품을 팔아 땅을 구하고 집 짓기를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다. 전직 건축 경험이 많으셨던 그분의 도움이 컸다. 일체의 비용은 내가 부담을 했다.

집 명의는 친구에게 해주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짜 가족이라고...


그러나 산 아래 집을 짓는 과정에서 태풍을 두 번이나 맞는 바람에 적지 않은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믿기 힘든 자연재해를 연거 맞은 후, 아픈 친구는 시골집에서 치료하며 지내고 나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가까운 도시로 나가 몇 년 간만 더 일하기로 했다. 가까운 도시에 집을 얻고 다시 학원일을 시작했다. 시골집과 도시를 서로 오가며 3~4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도시로의 친구의 왕래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주말에 시골로 내려가면 내가 왠지 손님이 된 듯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친구와 그분은 어느덧 팀이 되어 있었.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그분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친구처럼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였다. 내 집이 점점 수행터가 되어갔고 결국에는 좁은 공간이 되어갔다.

장소 이전 얘기가 나왔고 이전할 땅을 제공하겠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직장인 학원에 붙잡혀 있던 나는 이런저런 소식을  뒤늦게 듣게 되곤 했다.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우연히 다른 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처음 들인 돈에서 1억 정도 이상의 오른 가격으로 팔렸다는...

확인하는 과정에서 친구와 말타툼이 오고 갔다. 처음 내가 들인 돈을 주겠으니 그 집이 내 것이라는 것에서 손을 떼라는 억지 요구를 했다.


억지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액수를 던져주고 친구는 스승으로 모시는 그 분과 함께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진정한 가족으로 생각했던 삶과 믿음이 무참히 밟힌 채로...

20년을 함께 살아온 삶을 뒤로한 채...

그동안 고마웠다는 짧은 문자와 함께...

친구는 떠나가 버렸다.


나는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돈은 둘째치고 20년을 보내온 세월이 일순간에 부정당하고 무너져 내리는 경험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누군가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말만이 맴돌았다.

'검은 머리 지닌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라는 , 그 말만이...


심장이 난도질당한 듯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함께해 온 공간도 시간도 무의미했다.


떠오르는 추억들과 고통들이 알알히 박혀 있는 그곳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과 마음을 불태웠던 지치고 아픈 도시를 나는 그렇게 떠나왔다

#도시 #친구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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