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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May 23. 2024

내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어디서 배웠을까?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긴 제목의 책이 있다. ‘무엇이든 나눠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해라. 남을 때리지 마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너 스스로 치워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엔 손을 씻어라.’ 등의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내용의 책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의 이 책이 1,700만 부나 팔린 인기 도서인 이유가 뭘까?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 삶에서 중요한 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는 거? 기본이 중요하다는 거? ……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고.     


 유치원이라는 곳이 없었던 세대는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어떻게 배웠을까? 당연히 집이겠지. 가정이라 불리는 곳의,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불리는 가정교육.     


 아버지께서는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당신이 보기엔 어른과 마주쳐도 멀뚱 거리는 아들의 모습이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저분이 나를 알까? 인사를 받지 않으면 어쩌지? 뭐 그런 생각들로 종종 인사를 생략하곤 했으니.

 교육은 반복이다. 그 반복에 세뇌된 것일까? 그나마 사람을 알은 채 할 줄 알고 무사히 사회생활을 영위했으니 말이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귀찮은 게 왜 그리 싫은지 아무렇게나 입고 돌아다녔는데, 그러면 안 된단다. 자리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한단다. 어렸을 땐 도대체 뭔 말씀? 싶었는데, 성인이 되는 나이가 되자 정장을 한 벌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 어려운 살림에. 그때부터 조금 생각이 달라졌을까? 귀찮음을 무릅쓰고 의관을 정제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천만다행한 일은 정장을 하고 근무하는 직업을 얻었다는 거.     


 ‘산 다음에는 돈이다.’ 어머니께서 살림이 쪼들릴 때마다 노래처럼 하시던 말이다. 돈의 중요성을 그렇게 표현하셨을 터인데, 어릴 땐 그렇게도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러나 내겐 꼭 필요한 말이었으니 이유는 이렇다.

 돈에 대한 개념이라는 게 없더란다. 지폐를 한 장을 누구에게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시켰더니, 그걸 손가락 끝으로 쥐고 팔랑팔랑 흔들면서 가더란다. 장난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야! 그거 이리 줘” 했더니 그냥 주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가더란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있으면 써버리고 없으면 궁하게 살고, 전혀 계획적이지 못했으니. 이렇게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노래처럼 들었던 그 말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자본주의 본질을 꿰고 있는 심오한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나?  

   

 어머니의 또 다른 명언도 있다. ‘당하면 못 당할 일 없다.’라는 말. 포기가 지나치게 빠르고, 힘든 걸 싫어해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의지의 한국인’은 될 수 없는 타입인데, 그렇다고 역경이라는 게 나만 피해 가는 게 아니었다. 구구단과 국민교육헌장에서 시작하여 훈민정음, 기미독립선언문을 거쳐 전투 수칙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모르고 뭔가를 달달 외워야 했던 소소한 역경부터, 이런저런 난관과 이런저런 실패와, 불의에 가까운 이를 여의는 등의 큰 역경까지 당하면 당하는 대로 다 헤쳐 나왔으니, 이 또한 어릴 때 수없이 들었던 이 말에 체화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 알아야 할 것 들은 유치원에 다녔건 아니었건 간에, 유치원에 다닐 나이쯤에 다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어린아이들이 가정을 벗어나 처음 마주하는 곳이 유치원이 아니라, 첫돌이 지나자마자 가게 되는 어린이집이란다. 가정교육이라는 게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 텐데, 그 옛날 밥상머리 교육의 부재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대신하여 잘하고 있으려나? 그렇겠지, 그래야 하고, 그렇게 믿어야 하고, 그렇게 믿고 싶고.  

   

 이런 건 할아버지가 되니 드는 괜한 기우일 테지. 그런 걸 거야.


에곤실레-어린 조카와 함께 있는 쉴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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