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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Jun 03. 2024

이루지 못한 꿈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 꿈은 중국 왕에게 스카우트되어 금으로 된 궁전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동화의 아버지’라는 이름까지 얻은 그가 농담으로 한 얘기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발현된 동화적 상상력인지 모르겠으나, 꿈은 이루기 어려운 크기와 모호한 형태로 시작하여 점차 닿을 수 있고 현실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가는 것 같다. 살아갈수록 꿈이라는 게 쪼그라든다는 얘기다. 꿈이라는 말이 희망이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보면 말이다.     


 그땐 왜 그랬을까? 커서 뭐가 될 거냐는 질문. 지금도 그런가? 어쨌든,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대통령이나 훌륭한 장군이 되겠다고 대답했었다. 같이 놀던 아이들 대부분이 대동단결하여.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만인의 추앙을 받을 때였고, 또 얼굴 한 번 본 적 없으나 우리면 출신 장군의 이름이 전설로 회자하고 있었으니 나름 영리한 대답이었고, 그렇게 대답하면 어른들이 좋아했으니.   

  

 몸이 자라는 만큼 대통령과 장군이라는 지위가 이루기 어려운 크기라는 걸 슬슬 깨닫게 되지만 청소년기가 되어도 꿈의 크기는 쉽게 줄지 않는다.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의미일 텐데, 이때까지도 무엇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과학자, 외교관, 법률가. 교수, 회사 대표, 그런 것 다 집어치우고 그냥 부자, 뭐든 될 것 같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를 때이고 모르는 것만큼 자신만만하니까. 그렇게 사춘기가 지나면 꿈은 슬그머니 현실로 향한다. 꿈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구체화한다는 거다.     


 사람의 성향을 문과와 이과로 나눈다는 게 억지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나눈다는 의미보다는 가까운 쪽을 찾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이제 꿈은 조금 더 구체적이 된다. 그렇게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 계열이 나누어지고, 전공하는 학과로 나누어지고, 이 업계 저 업계로 나누어지고, 이 회사 저 회사로 나누어지고, 나누어지고 나누어져서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사회는 많고 많은 계로 구분되어 있다. 스포츠계, 음악계, 미술계, 경제계, 금융계, 문학계, 교육계, 농업계, 어업계, 상업계, 공업계, 연예계, 노동계, 법조계, 정치계? 이건 판이든가? 노름판 같은. 어쨌든 자신의 성향과 자질과 적성에 따라 각 분야에서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하면, 마치 어릴 때 대통령을 꿈꾸듯 그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 중요한 사람, 괄목할 업적을 꿈꾼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뜻대로만 될 리 없고, 또 누구나 다 최고가 되고 중요하고 괄목받는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앞으로 나아간다. 힘을 낸다. 노력한다. 전진한다. 그러다 꺾이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바스러지기도 한다. 그렇게 꿈의 크기는 점점 그 부피를 줄여나가다 어느샌가 줄어든 크기만큼의 꿈을 자녀의 꿈으로 옮겨 담고는 거기서 기대와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이대로였으면 정도의 소박함으로 늙어간다.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다. 그렇다고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 실패한 것인가? 놉! 그럴 리가. 살아가면서 작아지는 꿈의 크기만큼 경험과 지혜는 쌓여갈 테고, 누구나 제 위치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관계를 남기고 작으나마 흔적을 남기니까. 그리고 그 작은 흔적과 관계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일 테고.     


 어쩌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아름다운 것일지 모른다. 이루어진 사랑은 생활이 되어버리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추억이 되듯이. 물론 모든 추억이 아름답진 않겠지만.


Erica Hopper - Paper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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