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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열 Jun 15. 2024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잠

 나는 태만한 사람인가? 게을러터진 사람인가? 베짱이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주어진 시간을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알뜰히 살아내는 사람인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가끔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알뜰히 살아낸다고 스스로 판단해 버리는데, 그게 정신 건강에 좋기도 하거니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잠자리가 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알뜰히 사는데 왜 잠자는 시간이 좋을까? 휴식의 즐거움? 내일을 위한 준비? 아니면 잠마저 알뜰해서? 아무려나, 좋은 이유는 이런 거다.      


 여름날의 잠자리는 가볍다. 그래서 잠도 가볍다. 매트리스 위에 인견이나 삼베로 만든 깔개 한 장이면 족하다. 뭐라도 덮고 자는 게 좋다는데 무얼 덮기엔 지구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져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벼운 차림의 잠자리를 택하는데, 그래서 인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가벼움이 여름밤의 잠이다.

 이 가벼움은 가벼운 농담처럼 가벼워서 유쾌할 때도 있지만 반복이 잦아지면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게 유쾌와 짜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잠결에 열어두었던 창문을 슬그머니 닫게 되는 날이 찾아온다. 가을이 왔다는 거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가 깔끔하고 질서 정연하게 변한다. 도톰한 깔개가 매트리스에 착 달라붙어 매끈하게 자리 잡고 적당한 두께의 이불이 그 위에 깔끔하게 펼쳐진다. 그 정연함 속을 비집고 들어가 천정을 향해 정연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면 잠마저 정연해지는 것 같다. 가끔은 그 정연함을 흩트리는 게 꺼려질 때도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살짝은 병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가을밤의 잠은 반듯함이 주는 착한 즐거움이 함께한다. 은혜롭다고 해야 하나? 자비롭다고 해야 하나?    

 

 겨울의 이불은 두툼하고 폭신하고 포근하고 따뜻하다. 정장을 하고 그 위에 코트까지 입은 듯한 느낌이다. 그 이불속에는 따뜻함이 주는 안정감과 안락함과 편안함이 있다. 그래서 겨울의 잠은 깊고 달다.  

   

 겨울에 느끼는 따뜻함은…… 참 좋다.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의 따뜻함을 머금고 있는 아랫목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한 연탄불의 따뜻함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 일을 하는 아니, 열 내는 일을 하는 보일러의 따뜻함도, 순식간에 따뜻함을 전하는 전기장판의 재빠른 열기도, 사락사락 순환하는 온수 보일러의 따뜻함도, 그 느낌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그 따뜻함은 좋고 좋아서, 좋은 만큼의 행복함을 준다. 그래서 겨울밤에 잠자리를 찾아들 때는 언제나 행복하고, 그 잠자리에서의 잠은 깊고, 깊은 만큼 다디달다.     


 노랗게 말라버린 잔디 사이로 파란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딱딱한 나뭇가지에 새잎이 매달리는 봄이 온다.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웅크리고 있던 침대도 기지개를 켠다. 두꺼운 이불을 벗어낸다는 거다. 그렇게 가벼워진 봄밤의 잠은 봄날의 나른함처럼 천연덕스럽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잠이다. 그리고 그 천연덕스러움은 너무나 짧고 싱겁게 여름의 가벼움에 천연덕스럽고 가볍게 자리를 내어주곤 서둘러 물러나 버린다. 그리고 가끔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처럼 낮잠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언제였었나? 낮잠에 빠졌다가 눈을 떴는데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흐릿함이 싫었을까? 죽어라 낮잠을 피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피한다고 다 피할 수는 없었으니 어쩌다 마주친 낮잠에 굴복할 때가 있는데, 그 짧은 잠은 짧은 만큼 강렬하고, 지극히 혼곤하고, 지극히 몽롱하다. 물론 지금이야 밤낮은 구분할 수는 있지만.     


 수면시간이 다르니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것이 잠이다. 언제까지나 들 때의 행복함과, 깰 때의 개운함과 설렘이 있는 잠을 자고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알뜰하게 살아내는 삶과 함께 그렇게.    

 

 그리고, 또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잠은 삶과 함께 계속되고 반복될 테지!


Erica Hopper - Paper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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