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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림월 Oct 26. 2024

두꺼비집#1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일 것이다.'


윤은 저 낯선 문장에서 자신도 모르는 익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 익숙함이 자기의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섬뜩하고 차가운 덩어리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주라.. 그냥 일종의 고질병이라고 표현하면 안 됐을까? 저주는 너무 불쾌하잖아'라고 속으로 되뇌며 책을 덮었다. 책표지에는 하루 10분의 철학이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고 유명 철학가들의 저서에 쓰여있는 수려한 문장들만 발췌해서 엮어놓은 삼류 출판사의 책이었다. 표지는 싸구려 같았고 구성은 조악했다.

애꿎은 책머리들만 만지작 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책장에 책을 꽃아 넣었다. 윤은 출근을 하기 전에 가끔 시간이 남으면 자신이 일할 빌딩 근처에서 서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출근시간이 다 된 거 같아서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1시. '지금이 타이밍이다' 하고 서둘러 서점을 나왔다.


계절은 9월 중순이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낮에는 폭염경보를 알리는 재난 경고 메시지의 알림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도시의 아스팔트는 뜨거운 열기를 끊임없이 뿜어냈고, 그것이 무색하게 폭염과 어울리지 않는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은 여전히 소매가 짧은 여름옷을 입고 다녔다. 불투명한 계절의 바뀜을 알려주는 건 가을의 미소를 짓고 있는 투명한 하늘뿐이었다. 서울에서 이곳 창원으로 내려온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처음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대자연을 품고 있는 도시의 절묘한 밸런스와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움들로 인해 점점 이곳의 생활을 만족하기 시작했다. 윤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머릿속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나열했다.

어제는 사무실이 많은 삼익빌딩이었으니까 오늘은 술집들이 많은 연희빌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유흥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11시 10분. 아직 점심시간이 아니라서 거리는 한적했다. 윤이 사는 곳은 중앙동이었는데 번화가인 상남동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차를 갖고는 있었으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말고는 이곳에서 운전할 일은 거의 없었다. 창원이 계획도시라서 그런지 주변 도로나 인도는 정비가 잘 되어있었고 항상 깨끗한 편이었다. 길가에 가로수들도 많이 심어져 있어서 걸으면서 풍경을 보는 맛이 있는 그런 동네였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걸어 다녔다.

빌딩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제일 꼭대기층을 눌렀다.

정오가 가까워졌지만 건물 안은 아직 빛의 기운을 받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미지근한 습기로 가득한 복도의 공기는 어젯밤 이곳에서 술을 마셨던 사람들의 끈적거리는 욕망을 머금은 채 눅눅한 입김을 토해냈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불쾌했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크로스백에서 전단지 스티커를 꺼냈다.


윤은 상남동의 어느 호스트바에서 실장으로 불리며 술을 팔았다. 사장은 따로 있었고 그 사장이 들여온 양주를 가지고 윤이 손님들에게 팔면 양주의 원가, 안주 및 음료값, 맥주값, 노래방비를 포함한 입금가를 사장에게 입금하고 나머지 돈은 윤이 가져가는 형식이었다. 사장이 정해둔 입금가는 양주 한 병당 6만 원이었고 손님들에게는 450ml 양주 한 병당 15만 원을 받았다. 손님 한 팀이 대부분 2병 이상은 먹기 때문에 평균 하루 수입은 최소한 20만 원 정도였다. 매일같이 손님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수입은 일정치가 않았다. 하지만 수입이 안정하지 못하다고 생활이 불안정한 건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현역으로 뛰면서 모아둔 저축이 꽤 있었다.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치품을 사는 성격도 아니었다. 돈은 그냥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숫자로만 새겨져서 통장에 그대로 있었다.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거나 집을 살까도 고민했지만  그냥 지금 이대로의 생활이 좋았다. 오지도 않고 올지도 모를 미래를 걱정한다는 게 차라리 사치라고 생각했다. 현실에 충실할 뿐 보이지도 않는 앞날을 걱정하거나 기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윤은 무위를 싫어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창원으로 내려와서 모아둔 돈을 까먹지 않고 지금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하루도 빠짐없이 화장실에 전단지 스티커를 붙여서 가게 홍보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인스타그램이나 각종 SNS로 가게를 홍보하는 이들이 생겼는데, 따라 해보려 했지만 가게의 김사장이 만류했다.


"화류계 장사는 일반 물장사랑 달라. 이거 몇 푼 더 벌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질투 많은 인간들이 국세청에 신고하고 그래. 그러면 가게로 세무조사 나온다니까. 다 털리는 거야. 요 앞에 쿨타임이라고 미연이 알지? 그 계집애 돈 좀 벌더니만 다미아니 목걸이 자랑하려고 사진 올렸다가 바로 신고당해서 싹 다 털렸어. 그래서 문 닫은 거야."


윤은 괜히 SNS로 홍보했다가 김사장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서 단념하고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서울에 살 때 가끔 클럽을 갈 때가 있었는데 자신의 명함을 건물 공동 화장실에 뿌려놓거나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거울 틈 사이로 끼워 넣고는 했다. 별 뜻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뜻밖에도 연락이 와서 손님으로 받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윤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스티커 홍보는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먹고살만한 수단으로는 충분했다. 그래서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땅거미를 기다리기보다 매일 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스티커를 붙였다.


한 층에 공동 화장실은 1개씩 있었다. 건물마다 각기 다르지만 남녀 공간이 따로따로 나누어져 있는 곳도 있었고 공용으로 크게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공간이 나누어져 있는 화장실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건물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릴만큼 고요했다. 윤은 여자 화장실 출입구 쪽에 서서 자신의 어깨 높이쯤 되는 위치에 전단지 스티커를 조심스레 붙였다. 그다음 안쪽으로 들어가 자신의 키만 한 두 개의 칸 문짝 겉과 안쪽에도 떨어지지 않게 꼼꼼하게 붙였다. 화장실 입구 쪽에서 세면대의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상 여자를 직접 마주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서 스티커만 신속하게 붙이고 나왔다.


24시간 여성전용클럽

주대 문의 010-XXXX-XXXX

외롭고 고독할 때 언제든 전화 주세요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가 인쇄된 스티커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바탕과 글자의 배색 때문인지 멀리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한눈에 띄었다. 화장실을 나오면서 스티커가 잘 떨어지지 않게 한번 더 손바닥으로 꾹 눌러주었다. 그런 식으로 10층부터 1층까지의 화장실을 돌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인쇄된 스티커를 음흉한 건물의 내장 속에 깊숙이 새겨 넣었다. 윤은 이 행위를 매일 같이 반복하며 자신이 살아내야 할 날들을 하루하루 채워나갔다.


"아 요즘은 손님이 너무 없다."


늦은 오후쯤 카페에서 만난 김사장은 또 핑곗거리를 찾는 모양이다. 김사장은 윤이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의 사장이다. 나이는 윤보다 5살 많은, 올해로 마흔이 된 체구가 좋은 남자인데 장사꾼으로서의 기질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상남동을 지나서 시청 쪽으로 가다 보면 호수공원이 하나 나오는데 이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호수공원을 마주 보고 있는 4층짜리 건물에 김사장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김사장이 직접 브랜딩까지 해서 오픈한 카페였다. 그 카페는 커피맛보다는 인테리어로 유명해졌다. 미드 센추리 모던의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전에 쿠엔틴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할리우드집의 인테리어를 유심히 보고는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했던 것인데, 오픈하고 얼마 뒤부터 미드 센추리 모던이라는 키워드가 입소문을 타고 유행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공간의 모든 오브제들을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로 꾸며놨기에 사람들이 SNS로 검색을 해서 찾아오고는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김사장의 카페는 힙해졌다. 3층과 4층을 통으로 임대한 그곳은 루프탑을 겸비한 넓은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어서 저녁 무렵부터는 카페에서 펍으로 바꾸어 심야까지 영업을 했다. 김사장은 돈 버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태생이 수완이 넘치는 사업가 체질이었다. 김사장은 정면에 호수가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창 앞 테이블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오후의 강렬한 햇빛이 비추며 김사장의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윤과 김사장은 3년 전 창원에서 만났다. 어느 날 지방으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 아이들의 숙소에 커다란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고로 인해 국민 전체가 애도의 시간을 가졌고 그 기간 동안 강남의 여러 술집들은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아야만 했다. 윤의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창원으로 무작정 내려온 윤은 상남동의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부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중 다행히도 첫 번째 방문한 가게가 김사장네 가게였는데, 당시만 해도 마담으로 불리는 실장이 7명 정도 되었고 창원에서는 규모가 꽤 큰 가게였다. 김사장은 윤의 거침이 없고 공격적인 태도에 매료되어 실장 타이틀을 달고 장사를 해보라고 수락했다. 윤은 처음 본 김사장의 풍모에서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어떤 기질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이곳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80 정도의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격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유도선출이었다. 작지 않은 키에 우람한 체구는 한눈에 봐도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가끔 자신의 체구와는 안 어울리는 분위기로 앓는 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윤은 그런 김사장을 보고 덩치에 안 맞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룸 일곱 개짜리 노래방에서 하루에 몇 백만 원 이상의 순수입을 가져가면서도 틈만 나면 막상 차 떼고 포 떼면 자신은 손에 쥐는 게 없다고 화류계 장사가 이게 맞는 거냐고 으레 되묻는 김사장은 늘 수중에 돈이 잡히질 않는다고 애들처럼 칭얼거렸다.

하룻밤에 보통 직장인의 월급을 상회하는 정도의 순수입을 가져가는 김사장이 윤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는 가장 돈을 잘 버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김사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나름의 애를 썼다.


윤이 다른 실장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의 전단지를 매일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사장은 아이스티 두 개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은 얼음이 절반쯤 녹은 밍밍해진 아이스티를 빨대로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요새 다 그렇죠. 에이스도 이번에 문 닫았던데 이제 이 동네 장사는 형이 다 먹는 거 아니에요? 돈방석에 앉게 생겼구만 뭐."


김사장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 봐야 알지 또 새로운 가게 생겨서 술값 싸게 후려치고 마이킹 준다고 애들 빼가면 이 짓거리 못하는 거지."


김사장은 소파에서 천천히 등을 떼고 트레이닝복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이거. 이번달 고생했다."

김사장은 테이블 위에 하얀 봉투를 올려놓고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튼 이번달 애들도 출근 잘 안 하고 그랬는데 매상 올려준 거 고맙다. 고생한 거 같아서 좀 더 넣었어. 많이는 아니고."

윤은 봉투를 집어 가방 안에 넣고 김사장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 남아있는 아이스티를 단번에 마신 뒤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과 김사장은 서로를 호감으로 대했지만 둘의 관계는 비즈니스적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 늘 굵은 선 하나를 그어놓았는데, 남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고 선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묘하게 기척을 냈다.

윤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윤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김사장은 더 이상의 깊은 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동안 화류계에 있으면서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척력과도 비슷한 윤의 성격 때문에 상대는 쉽게 곁에 머무르지 못하고 잡히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 갔다. 관계는 평행선만 달릴 뿐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았고 결실이 있는 장소로 안내하지 못했다.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자주 당혹스러워했고, 남을 파악하는 것보다 자신을 파악하는 게 더 어려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 자기 자신 때문에 곤란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립감이 찾아와 한 동안 괴롭히고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윤은 고립감이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를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윤은 김사장과 헤어지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요새는 금융사 앱으로 이체하는 게 일상이 됐지만, 자신이 번 돈은 꼭 현금으로 받길 원했다.

돈의 촉감을 통해 사물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더러운 종이쪼가리에서 풍기는 타인의 손 냄새를 맡으며 이 세계에서 무언가 쟁취했다는 사실에 흡족해했다. 전리품과도 같은 현찰뭉치를 들고 은행으로 가서 손으로 직접 인출기에 넣어 계좌로 입금했다. 이런 행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자신의 체취를 남기고 그 흔적들을 새겨 넣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살아간다는 느낌. 윤은 오직 그 감각을 통해서만 자신을 찾아온 고립감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그 느낌을 절실하게 원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질식하지 않기 위해.


올해 35살인 윤은 여태껏 뚜렷한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스스로가 택하지 않았다.

조직에 속해있는 것을 답답해했고 날개를 가진 생물처럼 유유히 떠돌면서 자유롭고 싶어 했다.

윤은 주변상황을 통해 어느 집단이건 자신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윤의 시선으로는 조직에서 이탈한 자는 살갗이 벗겨진 피부처럼 한없이 연약한 존재로 비추어졌기에 차라리 자립의 길을 택하는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이 세계에서 깊은 고독을 맞이할 때도 있었고, 발목에 커다란 납덩이가 묶인 채 암담한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다. 윤이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는 그가 때때로 자기혐오에 빠져 그 누구도 영원히 구원할 수 없는 시시한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과거가 지나가고 미래가 다가올수록 시시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점점 불안해졌다.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두려움에서 두 발자국씩 멀어지기 위해 윤은 살아간다는 느낌을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불쾌할 정도로 끈적한 습기를 머금은 비가 내리는 밤 12시. 열대야로 메마른 도시가 물에 젖은 종이인형처럼 흐느적대던 그 날밤. 어떤 여자가 화장실에서 윤의 전단지 스티커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주대문의를 했고 여자 둘이서 30분 내에 도착할 거라고 말하고는 무작정 전화를 끊었다.

윤은 평상시처럼 웨이터에게 신규 손님 두 명짜리 룸을 세팅해 놓으라고 말했다. 가게의 구조는 ㄱ자 모양이었는데 20미터의 직선으로 되어있는 넓은 복도에 룸이 네 개가 있었고,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룸이 세 개가 있었다. 윤은 가게에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는 항상 가장 깨끗한 룸을 주었는데,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서 제일 끝에 위치한 룸이었다.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이 앉아서 술을 마시기에는 너무 좁지 않고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의 크기였다. 그곳은 조명도 소파도 다른 룸에 비해서 관리가 잘 되어있었는데, 그 이유는 윤이 직접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김사장에게 따로 부탁해서 자신의 취향으로 꾸민 그 룸은 윤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다른 실장들에 비해 많은 매출을 올려주는 윤에게 김사장이 주는 선물 같은 거였다. 테이블부터 소파, 조명, 그 위치 구조들을 윤은 자기 손으로 직접 꾸몄다. 그리고 그곳을 두꺼비집이라고 불렀다. 더 깊고 아늑하게 만들기 위해 손으로 모래흙을 조금씩 파내어 손등 위에 흙을 덮는 두꺼비집. 윤은 그 룸을 애정했다.


40분쯤 뒤에 손님 두 명이 올라왔다. 두 명의 여자가 너무나 조용히 가게로 들어오는 바람에 카운터 앞에 서 있던 윤과 웨이터는 인기척을 못 느낄 정도였다. 그녀들은 마치 낯선 장소에 몰래 칩입한 사람 같았다. 윤은 이 사람들 신발 바닥에 소음기가 달린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두 여자는 얼굴이 약간 붉게 달아오른 게 만취상태로 보이지는 않았고 어딘가에서 기분 좋게 1차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자기 관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었다. 명품 가방에 옷차림도 깔끔해 보이고, 교양 있어 보이는 게 매너도 좋아 보였다. 그런데 시선에 이물감이 들어서 허리 아래쪽을 보니 옆에 5~6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한 여자의 손을 붙잡고 멀뚱하게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울었던 기색은 없었으나 약간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자아이의 얼굴도 깨끗했고 차림새 또한 깔끔했다. 특히나 신고 있던 하얀색 캔버스화가 비현실적으로 하얗게 보였다. 아이의 얼굴은 손을 잡고 있는 여자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었고 그런 까닭으로 그녀가 아이의 엄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전화했던 사람이에요."


여자가 윤을 쳐다보며 말했다.

윤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습니다라고 말하고 카운터에 놓인 자신의 명함을 아이의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명함을 받아 명품가방에 무심하게 집어넣었다. 그녀들은 웨이터의 에스코트를 받아 룸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복도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서 룸에 들어갔고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란 복도에는 그녀들의 야단스러운 구두 굽소리만 허공에 남아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손님은 처음이었다. 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이해하고 싶어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윤은 룸으로 들어가 가게 시스템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고 웨이터를 통해 테이블에 양주 두 병을 세팅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7명의 선수들을 보여주고는 초이스를 부탁했다.

그녀들은 처음에 약간 수줍어하는 듯했지만 결국 자신들과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외모가 자기 취향인) 선수 두 명을 자신들의 옆자리에 앉혔다. 테이블이 메이드가 되고 짝이 맞은 그들은 술잔을 부딪히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같이 온 아이도 (자신의 엄마일지 모르는) 여자 옆에 조용히 앉아 낯선 남자들의 생김새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맥주잔에 담긴 콜라를 마셨다. 룸에 모자란 게 없는지 확인한 윤은 조심스럽게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어른들 사이에 남겨진 아이가 걱정됐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단념했다. 테이블이 마칠 동안 매월 결산해야 할 장부를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남녀가 서로에게 잘 녹아드는 물질처럼 용해된다는 게 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뜻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 그것이 깊은 관계를 맺는 것과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장부를 절반쯤 정리했을 때 룸에서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리며 소란이 벌어졌다.

"너 혼자 가! 네 아빠가 보고 싶으면 네가 알아서 가란 말이야!"

떠들썩한 소동으로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복도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윤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반쯤 열린 문 틈새로 여자가 술에 취해 아이에게 소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울먹거렸지만 그것이 소리로 맺히는 일은 없었다.

윤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윤의 집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사계절 내내 건설현장을 돌아다녔지만 그에게만 일이 없었던 것인지 매일마다 집안에서 술만 마셨다. 어머니는 동네 시장 어느 한 구석에서 매대 하나만을 놓고 과일장사를 했지만 신고를 당하거나 진상들을 만나는 바람에 얼굴에는 항상 짜증이 나있었다. 가난을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빈곤은 음습한 늪처럼 그 자리에 항상 고여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늪에서 빠져나오는 걸 포기했고 이것이 당연한 수순인 듯이 체념의 길로 들어섰다. 윤은 자신의 부모가 힘들 거라는 걸 어린 나이에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본성이라는 건 티를 내고 싶지 않아도 티가나는 법이었다. 가난한 집에서는 유독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갈등과 불화가 존재했다. 애착과 사랑을 품고 있어야 할 집에서는 따듯한 온기가 아닌 사늘한 폭력의 냄새가 감돌았다.


어머니는 윤이 무언가를 부탁하면 항상

"니 아비한테 말해. 이 꼴 보기 싫은 녀석아."라고 윽박을 질러댔고,

하는 수 없이 아버지에게 뭔가를 부탁하면

"니 어미한테 말해. 귀찮게 하지 말고." 라면서 보잘것없는 존재를 대하듯이 말했다.

윤은 자신이 하찮으면서 변변치 않게 여겨졌고 자기가 미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가족에게 벌어지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현재의 곤궁함에서 벗어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구제받을 곳이 없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윤은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꼈고, 연약한 자신이 보호받을 곳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방향감각을 잃은 채 헤매기 시작했다.

윤은 자신의 유전자에도 새겨져 있을 어긋난 인간성을 깨닫고 나서부터 자주 자기혐오에 잠겨버렸고, 그때마다 거스를 수 없는 참담한 운명의 손이 크게 입을 벌린 심연 속으로 자꾸만 등을 떠밀었다. 윤은 그 심연 속 거대한 공동洞에 발을 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이 날 윤은 손님들을 내쫓고 싶었지만, 이곳은 자신의 일터이고 일터에서는 생산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김사장의 영업방침이 떠올라서 단념하고 타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다행히도 테이블은 마쳤고 윤은 룸에 들어가 계산을 모두 마치고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를 띄우며 손님들을 배웅했다. 그녀들은 그런 윤을 보고 또 놀러 오겠다며 깔깔거리면서 헤프게 웃었다. 선정적이고 천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침울한 표정의 아이가 잰걸음으로 그녀들을 쫓았다.

웨이터와 함께 룸에 들어가 빈 술병들을 정리할 때 피부의 안쪽이 거칠어지면서 까슬까슬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윤은 그것이 자괴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뼈와 근육과 신경들 사이사이에 찌꺼기 같은 것들이 쌓이고 그것들이 썩어서 냄새나는 오물들이 몸속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다. 그 오물들이 언제까지 자신의 몸속에서 악취를 풍겨댈지 윤은 짐작도 안 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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