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난임극복기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그날이 왔다. 시작 전 실컷 놀고 싶었던 이틀간을 집안에서 뒹굴거린 게 전부인 나에게 오늘 10시 알람은 너무나도 슬픈 교향곡처럼 들렸다. 냉장고에서 주사를 꺼내오고 간호사가 당부한 것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순서를 생각했다.
'300에 맞춰서 돌리고, 주삿바늘을 끼우고, 알코올솜으로 배를 닦고, 배 한쪽에 찌른다.'
단순한 이 과정을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손은 또 왜 이렇게 떨리는지 뱃살을 잡고 찌르는데 바늘구멍이 배 앞에서 들어갈 생각을 안 한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꾹 누른다. 나의 뱃살로 바늘이 사라졌고 약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따끔하네.'
다행히 큰 통증은 없었다. 나의 뱃살 덕분이리라. 뱃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그동안 구박했던 게 미안했다.
오늘 내가 맞은 주사는 과배란 주사 [고날-에프펜] 300ml. 이걸 3일 동안 맞고 다음 날 내원하면 난포가 얼마나 컸는지 보고 다시 주사를 처방한다고 한다. 스스로 주사를 놓다니. 뭔가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다.
'난포야, 쑥쑥 자라주렴.' 생전 처음으로 난포에게 말을 걸며 아픈 배를 토닥여본다.
이튿날 주사는 J가 마침 집에 있는 날이라 그에게 부탁했다. 주사를 넣는 방법을 설명하고 배를 내밀었더니 J가 당황을 한다.
"못하겠어. 어떻게 바늘로 찔러? 자기가 하면 안 될까?" 하며 주사기를 들고 어찌할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나와 만찬가지로 J도 모든 게 처음일 테니.
"내가 내 몸에 바늘을 꽂는 거 너무 힘들어. 어제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자기가 해줄 수 있을 때 해줘."라고 했더니 어제 혼자 주사를 넣었을 내가 안쓰러웠는지 말없이 알코올 솜으로 배를 문질렀다.
"들어간다."라는 말에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리고 있는데 주사를 맞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뭐지? 하며 눈을 떴더니 주사 바늘이 내 배를 향한 채 석고상처럼 굳어있었다.
"푸핫, 뭐 하는 거야? 크크크크"
"하고 있어. 하고 있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 안보였어? 가만있어봐. 움직이지 말고."
폭소를 터트린 나에게 본인은 진지하게 하고 있다며 가만있어보란다. 웃음을 참으며 다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바늘이 천천히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아주 천천히 주사기를 꽂고 천천히 주사액을 넣더니 아주 천천히 주사기를 뺐다. 슬로비디오처럼. 그런데 웬걸. 천천히 주사를 맞으니 더 아프고 느낌이 안 좋다. 주사를 맞는 아픔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천천히 넣으니까 더 아픈 느낌이야." 라며 울상을 짓자, "알았어. 다음에는 속도를 좀 더 올려볼게."라며 배를 쓰다듬어 준다.
"그래도 요 뱃살이 있어서 다행이네." J도 역시나 같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나도 어제 그 생각했는데. 요즘 뱃살 덕을 보고 있어." 하며 자랑스럽게 배를 두드렸다. 그 말에 대답하듯 '통통' 소리를 내는 내 배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