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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May 14. 2023

김치를 먹고 성장한 세균마왕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큰다. 키 빼고.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김치를 입에 넣다가 문득 예전에 했던 아동극이 하나 떠올랐다. 이젠 제목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대충 ‘김치공주와 세균마왕’이었던 거 같다. 제목만 들어도 김치를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 김치의 효능을 알려주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 식습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훈적인 공연임을 알 수 있다.


연출자는 나에게 타이틀 롤을 맡겼는데, 설마 공주인가 싶었지만 역시나 세균마왕이었다. 그래도 세균부하가 아니라 마왕이니 꽤 높은 신분이자 주연급 빌런을 맡은 셈이다. 많은 아동극이 주인공보단 빌런의 비중이 훨씬 많은데, 착하고 정의로운 모습만 보여주는 주인공보단 계속 사건을 터뜨리며 말썽을 부리는 빌런이 자주 나타나줘야 보는 아이들이나 부모들도 재밌게 관람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세균마왕은 분량도 많고 대사량도 상당했는데 제일 피곤했던 건 애드립이었다. 세균마왕이 등장하기 바로 전 장면이 김치공주가 요정들과 숲 속을 헤매는 장면이기에, 그다음에 세균마왕이 등장하면서 장소가 숲 속에서 세균들의 본거지로 바뀐다. 그럼 앞면은 숲 속이고 뒷면은 세균 본거지로 제작된 무대 세트를 180도 돌려야 하는데 그걸 누가 하겠는가. 당연히 배우들이 한다. 게다가 숲 속 요정이었던 배우들은 세균부하도 해야 하는 1인 2역들이기 때문에 세균부하 의상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배우들이 세트도 전환해야 하고 의상 체인지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꽤 시간이 필요하므로 세균마왕은 등장하자마자 대략 5분 정도 혼자 애드립을 치고 객석에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말도 걸면서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거다. 세트가 잘 안 돌아간다든지, 의상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돌발상황이 생기는 날엔 한 10분 정도 혼자 떠들었던 적도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아이들한테 주로 했던 애드립은,


'김치 먹지 마~~~!'

'햄버거랑 콜라 먹어라~~' (개인적으로 햄버거가 최애라 이 애드립을 하며 좀 슬펐다.)

'엄마 말 듣지 말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으라고~~!!'

'김치 먹지 마.. 열무김치 먹지 마.. 갓김치 먹지 마!!'


김치를 먹으면 안 되는 입장인 세균마왕은 지방공연 특성상 마주하게 되는 지역 특성도 고려해 전라도에 가면 갓김치도 운운해 주며 대충 저런 애드립으로 시간을 때우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면 세균마왕이 부하들을 데리고 한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세균에 감염된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면 김치요정이 짠! 나타나 만병통치약처럼 김치를 먹이며 치료를 하는데, 그렇게 아이의 몸속에 김치가 들어오면 부하들이 다급하게 외친다.


‘대왕님!! 김치가!! 김치가 들어왔습니다아아!!’

‘뭣이!’

‘김치에 든 마늘이!! 마늘이 들어옵니다아아아!!’

‘마늘!! 마늘을 먹으면 면역성이 좋아지고 감기에 걸리지 않으며 항암작용과 노화를 예방하고 간기능을 회복시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단 말이다!! 안 돼애애애애~~~~!!!’


뭐 그렇게 김치에 들어있는 마늘이나 파, 배추 등의 효능을 열거해 주다가,


‘이럴 수가.. 이렇게 골고루 먹다니….’


하면서 죽으면 된다.


아이들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동극에 잠깐 손을 댔던 건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돈 때문이었다. 아동극은 언제나 정기적으로 수요가 있고, 대부분 단체 관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연극보다 쩐이 된달까. 하지만 그렇게 별다른 직업의식 없이 행했던 공연 이후, 어쩐지 난 김치와 마늘을 꽤 열심히 먹게 되었고, 재밌게 본 아이들이 두고두고 공연을 추억하면서 쓴 댓글들을 보며 나도 모르는 책임감이 조금씩 내 등을 타고 올라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배우들은 그게 아동극이든 성인극이든 한 작품을 하고 나면, 그 작품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가 어딘지 달라져있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공연에 영향을 받듯이, 공연을 하는 배우들도 본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삶에 부대껴 첫 장면부터 자살시도를 하는 말기 암환자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공연을 하는 3개월 동안 난 내내 울었고, 내내 우울했고, 내내 따뜻했다. 매 순간 자살을 염두에 두며 사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기까지 무심한 세상 속에서 어떤 숨바꼭질을 하는지. 그 사람이 되고, 그 상황이 되고, 그 입장이 되어 몇 달을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나 자신이 그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져있는 것이다. 배우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연기도, 인생도.


이제는 글을 쓰며 성장하고 있는 나에게 연기에 내 몸과 마음과 삶을 쏟아부었던 그 시절은 중요한 밑천이자 베이스캠프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당시엔 붙잡고 늘어질 배역이 하나였는데, 지금은 맡은 배역이 좀 많아졌다는 것뿐이다. 이번에 쓰고 있는 대본에 주인공만 8명이라 난 때때로 지치기도 하고, 대충 타협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결국엔 그들의 밑바닥까지 손을 뻗어 매만져야 한다는 것을. 말기 암환자를 했을 때도 그랬고, 세균마왕을 했을 때도 그랬다. 그러니 지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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