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선.
김장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희미한 선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는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에 모든 희미한 존재를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을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지난 5월의 남도 여행에서 열흘 만에 돌아온 김장우는 처음으로 자신이 찍어온 야생화 사진 몇 장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거기,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애달파하는 그의 집착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거 실풀꽃이야. 실처럼 가늘고 눈처럼 흰 꽃이 하늘을 향해 총총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 이런 몸을 하고 바위틈에서 자란다면 믿겠니?”
실풀꽃. 한 줌 입김에도 꽃잎들은 눈가루 날리듯 떨어지고 말 듯하다. 그 넓고 넓은 산속에서 이런 희미한 꽃을 찾아내는 사람.
김장우는 사진을 봉투 안에 정성스럽게 담아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곤 괜히 민망해서 시선을 이리저리 황망하게 돌렸다. 김장우와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선명해진다. 그는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나는 가끔 그것들을 못 견뎌한다.
- 모순, 양귀자 p. 101-104에서 발췌
책방에 갈 때마다 괜히 시집 코너 앞을 서성인다. 흥미롭거나 아름다운 제목의 시집을 든다. 시집의 대표 제목이 된 시를 찾아 읽는다. 그렇게 읽은 시 한 편만 좋아도, 아니 단 한 줄만 아름다워도. 시집을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모은 시집이 하나, 둘, 여럿이다.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진진’이 ‘장우’를 묘사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보려고 이 책을 펼쳤구나.
희미한 선을 긋는 사람을 닮고 싶다. 언젠가 문수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주현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꼿꼿한 것 같아. 문수의 말대로 그들의 올곧음에 매료되는 순간이 많다. 다만, 진정으로 아름다워 닮고 싶은 사람은 희미한 선을 제때 휙휙 그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정작 자신은 그은 줄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을 따라 선을 긋는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나는 진하고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고 만다. 선을 황급히 지운다. 지우개가 지나가고 가루만 남은 자리에는 그들과 다른 희미한 선이 남아있다. 본래 원했던 희미한 선이 아닌, 희끄무레한 선. 한국어는 참 재밌다. 희미한 것과 희끄무레한 것은 분명 같지만, 분명 다르다.
고향에서 지내는 요즘은, 나와 같은 굵기와 길이로 같은 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가족과 함께 산다. 가족임에도 서로 다른 길이와 굵기의 선을 나타낼 때가 훨씬 많지만, 결국 그들의 공책과 나의 공책을 맞대보면 닮은 선이 수두룩하다. 가족은 한 장면에서 서로가 어떤 선을 그릴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가족이 아닌데도 그 선을 빨리 알아차리게 되는 사이가 있다. 그런 사람과는 연인이 되거나 친구가 된다. (때로는 가족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 진진은 장우의 희미한 선을 아름다워하는 동시에 못 견뎌한다. 어떤 아름다움은 못 견디게 아름다운 법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모순이다. 그 모순 속에서 서로의 선을 바라보며 어떤 모양인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끊임없이 말한다. 못 견디게 아름다운 사랑이다.
장우가 산에서 찍어온 야생화의 이름을 곱씹어 본다. 실풀꽃, 흰 젖제비꽃, 큰 들별꽃...... 하얗고 여린 꽃잎 사진을 본다. 내일은 책방에 가서 괜히 식물도감 앞을 서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