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다. 파주가 나와서 좋았다. 자라온 지역에서 맺은 이야기들, 끝맺지 못 한 이야기들. 주연이 보던 사전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처럼 맺어졌지만 매듭짓지 못한 인연들. 아마도 영원히 짓지 못할 매듭을 품고 '가까스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 가끔은 분홍빛 찬경의 얼굴이 떠오르고 민웅의 다정한 말투가 들리고, 송이의 뜨개가 그려진다. 주안과 주연은 내게도 하주가 된다. 그리고 수미. 그들은 나의 친구들 같기도 하다. 함께 탄 버스는 파주의 어디를 달렸을까. 내가 아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은 그 길을 지났을까. 귀 사이로 하늘이 보이던 아이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그들이 다시 만나서 다행이고 다시 헤어진대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갑자기?라는 생각이 드는 전개가 아쉬웠다. 이렇게 맺어질 이야기라면 그토록 긴 이야기는 왜 필요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공의 말이 떠오른다. "어차피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로 유치하고 지지부진한 일기를 썼던 것뿐이다." 그렇구나. 지지부진한 일기를 썼던 것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