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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말초 Jan 25. 2024

꺼지지 않는

재주넘기 세 번째 주제: 꺼지지 않는 마음

촛불같은 사람이 되겠다던 나의 말을 기억하니?


도서관 첫 출근 기념으로 같이 근무하는 사서분께서 커피를 사주셨어. 컵을 감싸고 있는 컵홀더가 크리스마스 디자인이더라. 어떤 것들은 날씨나 달력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직감하게 하는 것 같아. 가게마다 불 밝힌 트리, 거리에 늘어선 붕어빵집, 사람들이 두른 목도리. 나는 요즘 파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다녀. 겨울이 왔네. 내가 태어난 겨울이 오면,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져.


새로운 책을 사고 새로 나온 음악을 들어. 새로 산 펜으로 새로 먹은 마음을 적고 있어. 그러다가 깨달아. 새로 먹은 마음은 오래전에 이미- 먹은 마음. 처음의 마음. 꺼질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새로워지고 싶은 동시에 변치 않고 싶어서 분주해져.


얼마 전 성격 유형 검사를 했어. 나와 가까운 동사에 동그라미를 치는 중에 ‘반추하다’를 마주쳤어. 어떤 동사에는 갸웃거리며 희미한 동그라미를 쳤지만, 이것만큼은 고민도 없었어. 껴안고 싶은 문장이었어.


*반추: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다.


반추적인 삶을 사는 반추적인 인간이라 해도 모자랄 만큼, 매 순간과 시절을 곱씹고 음미하며 살아왔어. 문수랑 연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현이를 만나고 ‘곱씹는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라는 말을 들었어. 뭐만 하면 자꾸 곱씹어 보는 탓에 잘게 부서진 문장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다시 한데 모아 퍼즐처럼 제 짝을 맞추지. 완성된 그림은 결국, 꺼지지 않고 심지에 붙은 가느다란 촛불 모양이었어.


‘오말초’의 ‘초’가 촛불이라는 것을 기억하니?


키가 작아서일까. 글씨가 작아서일까. 예전부터 작지만, 따뜻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어. 작은 것과 따뜻하고 반짝이는 것 중에 어떤 것에 더 방점을 찍고픈지는 모르겠어. 그냥 저 문장이 마음에 들 뿐이야. 아주 밝은 가로등 빛이 아닌, 촛불 빛을 원했지.


입김으로 후- 촛불을 불어본 적이 있니? 아주 금방 꺼지잖아. 물도 소화기도 필요 없잖아. 복잡한 전선의 연결도, 스위치도 무용지물이잖아. 쉽게 꺼지잖아. 그래서일까, 나도 자주 뭉그러지는 것 같아. 하지만... 반대로 촛불을 붙여본 적이 있니? 불만 있으면 되잖아. 기름도, 복잡한 전선의 연결도, 스위치도 무용지물이잖아. 쉽게 켜지잖아. 그래서일까, 나는 자꾸 일어나게 돼.


다른 것은 필요 없는 나에게, 불을 붙여줘서 고마워. 뭉그러질 때마다, 다 괜찮으니 아프지만 말라고 해줘서 고마워. 아프지만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네가 알려준 또 다른 사랑이야. 참 애달프고 용감한 사랑이지. 너는 언제나 성냥을 잔뜩 가지고 다시 불을 붙여줄 준비를 하고 있어. 늘 내 옆에서. 네가 밝혀준 그 불이 오래오래 꺼지지 않길 바라. 이리저리 흔들려도 꺼지지만은 않길.


어둠 속에 촛불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처량하지. 겨우 입김 같은 바람에도 무너질 거면서 꾸역꾸역 타는 모습을 보면 처량해 처량해 처량해. 그 처량함을 사랑해. 처량한 것은 두렵지 않아, 처량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지. 처량하게 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촛농이 아름답게 굳어가길. 꺼지지 않는 마음으로 소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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