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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피트 위 승무원 고민상담소

세계 각 국의 승무원들의 고민이 모인 곳으로 초대합니다

by 이가은
"꿈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꿈을 결국 이루어내기 때문이예요."

<오늘의 상담 손님>

- Julia (헤어지자는 통보 후)

- Reem (내 꿈을 포기해야 할까?)


서비스가 끝난 후 갤리에서 쉬는 동안에 우리는 고민 상담 같은 담소들을 나눈다. 세계 어딜 가든 고민의 깊이와 틀은 비슷한 거 같다. 결혼, 연애, 출산, 퇴사 등의 고민들이 다수로 이루어진 고민들에는 타국에서 일하는 삶에 대한 외로움이 많이 섞여있는 탓에 감히 헤아리지 못하는 감정들도 많다. 때로는 들어주기만 해도 그것이 해결책이 될 때도 있다. 16시간의 비행을 가게 될 때면 휴게시간을 가진 크루들을 제외하고 남은 소수의 크루들과 함께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래서인지 장거리 비행이 싫다가도 이런 고민 상담의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다른 친구들이 찾아줄 때가 있다. 그들이 깨닫지 못한 본인의 속마음을 내가 일깨워줄 때가 있다.

그런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40000ft 상공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고민을.


줄리아(Julia)의 이야기다. 식사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식사를 마다하고 물만 벌컥벌컥 마셔대는 줄리아에게 물었다.

" 배가 고프지 않아?"

줄리아는 웃으며 배는 고프지만 입맛이 없다고 했다. 아주 가끔 비행이 너무 고되면 속이 메스꺼운 탓에 입맛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은 수월했던 비행이었던 터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친구의 사생활을 나의 호기심으로 들추는 건 실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조용히 그 친구를 챙겨만 주었다.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따뜻한 다정을 건네주기만 했다. 그렇게 앉아서 쉬고 있을 때쯤에 그 친구가 나에게 와 꾹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너 반지가 있네, 결혼한 거야? 어려 보이는데..."

"음 아니, 한국에서는 약혼이나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연애를 시작하면 반지를 나눠 끼는 게 문화야. 연애 증표 같은 거랄까?"

"정말? 신기하다. 나는 약혼이나 결혼 반지인줄 알았어."

"결혼 약속을 한 사이긴 한데, 연애 반지가 더 맞는 거 같아 (웃음). 너는 남자친구 있어?"

"음.. 있었지. 비행 전에 헤어지자고 하더라. 어제 비행기에 막 올라탔는데 헤어지자고 했어. 비행기가 뜨면 10시간은 넘게 연락을 못할걸 알면서 그러더라. 아무것도 집중이 안되었어."

"정말 나쁘다. 그건 배려가 없는 거야."

"나도 알아. 근데 아직도 좋아해서 너무 슬퍼. 장거리는 정말 힘든 것 같아. 더군다나 나라와 나라의 거리 차는 보고 싶다고 보러 갈 수도 없잖아. 사실 이 사람이랑 헤어지고 나면 내가 연애를 여기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이 직업이 여러 나라를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내 사람을 찾기는 힘들잖아. 우리가 보는 사람들은 전부 우리 일생에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만남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니까. 지금 내 이야기를 듣는 너도 이번 비행이 끝나면 평생 만나지 못하는 거잖아. 운이 좋으면 또 같은 비행에서 볼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건 거의 불가능이니까."

"맞아. 마음을 나눈 친구가 되었다고 해도 이 비행이 끝나면 평생 볼 수 없는 게 현실이지. 서로 스케줄이 맞기도 힘들어서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얼굴 보기 힘든 게 우리 일이지. 음.. 다음 휴가 때 그 친구와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연애든 친구든 헤어짐을 정하는 건 한쪽이 될 수는 있지만 상대방에게 별다른 말 없이 통보하는 건 그동안 쌓아왔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해. 꼭 얼굴 보고 이야기해 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아직도 너무 답답해. 당장이라도 전화하고 싶은데 비행기에서 우리는 전화를 쓸 수도 없잖아."


비행기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휴대전화를 소지 조차 할 수 없는 게 회사의 규정인데, 소지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에 있는 누군가와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바쁜 기내에서 그럴 시간도 없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 전, 나의 안전을 기도하는 것 보다도 내 가족 그리고 내 사람들의 안전을 기도하곤 한다. 장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나면 휴대폰을 킨 후 연락들을 확인한다. 마치 트라우마 같은 불안함을 안고 연락들을 확인한다. 혹여나 누군가 다쳤다는 연락이 오거나 가까운 사람이 위독하다는 메시지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타국에 도착한 내가 받게 되는 그런 메시지는 나를 기화시켜 버릴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고 증발하듯 사라져 버릴 것이다. 애인의 결별 메시지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헤어지자는 한마디, 남자친구의 몇 시간째 연락 두절 그리고 간절한 부탁들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직전에 받게 되면 우리 스스로는 망가져버린다. 마치 대답을 하지 못하도록, 반격하지 못하도록 틈을 보고 보낸 메시지 같을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림(Reem)의 이야기다. 림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과 살고 있었고 타국에서 승무원 생활을 한지는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너는 이 회사에 오래 다닐 생각이야? 사무장이라던가 끝까지 올라갈 계획 같은 게 있어?"

"음.. 글쎄. 아니라고 말할 수도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아. 나도 내 앞날을 잘 모르겠거든. 마음이 수 없이 바뀌는 요즘이야. 너는?"

"나는 오래 하고 싶어. 사무장까지 가고 싶어. 그런데 오래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오래 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우리 부모님이 나를 늦게 낳으셔서 연세가 꽤나 있으셔. 내가 비행을 가게 되면 나와 연락을 할 수 없으니 그것도 걱정인데, 혹여나 다치거나 아프실 때 내가 10시간을 넘게 그 사실을 연락받지 못한 채 있어야 하는 게 괴로워.

그리고 부모님의 남은 날들에 내가 함께 하고 싶은데, 타국에 살면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 휴가에 가서 뵙는다고 해도 볼 수 있는 날들이 1년에 한 달도 안 되는걸."

"그렇지. 나도 그래. 우리 강아지가 11살이 되었는데 나는 벌써 타국 생활이 7년째거든. 그런데 어느 날 너무 나의 시간들이 후회되더라고. 내 새끼 같은 우리 강아지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의 일생에 겨우 몇 번 얼굴을 보러 갔다는 사실이 꽤나 괴로웠어. 그 아이의 기다림에 너무 미안했어."

"나는 정말 이 직업을 사랑하고, 여전히 좋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고 전 세계를 탐험하듯 멋지게 살고 싶어. 그런데 이런 갈등이 내 꿈을 포기하게 만들어. 물론 부모님의 바람은 내가 앞으로도 내 꿈을 펼치며 멋지게 사는 것일 테지만, 결국은 함께하지 못한다는 나의 후회 앞에서 무너질 거란 걸 잘 알고 있어."

"그럼 이 직업 말고 또는 이 회사 말고 너를 기쁘게 하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나는 네가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어. 세계를 탐험하는 데에는 이 직업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많거든. 세상을 넓게 보면 생각보다 네가 사랑하게 될 직업들이 많을 거야. 한 가지를 얻는다고 해서 한 가지를 포기할 필요 있어? 나는 두 가지를 다 얻는 방법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너의 꿈도 펼칠 수 있는 기회들 말이야."

"그래. 우울해만 하지 말고 잘 찾아봐야겠다."

"한 걸음 내딛기 위해 발을 뻗어야 하잖아. 신기하게도 그 한 발을 뻗고 나면 두 번째 발을 뻗는 건 너무나 쉬워져.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결국 넌 힘차게 뛰고 있을 거고 종국에 너만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거야."


모두가 꿈을 이루었다고, 선망한다고 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꿈을 꾼다. 이 직업이 우리의 생에 종착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소중한 우리 모두가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꿈을 생각하고 말하며 살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보고 싶은 게 많다고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꿈이 되어버린다. 빛이 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그 꿈이 직업이 될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따뜻한 저녁 요리해서 먹기.

- 여름에 강원도로 2박 3일 나를 위한 여행 떠나기.

- 다가올 부모님 생신에 해안가 따라서 바다 구경시켜 드리기.


이런 것들 또한 꿈이다. 꿈은 선망하고 생각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친구의 고민을 들었을 때 '나의 꿈'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모든 독자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꿈은 형태가 어떤 것이든 진귀합니다. 그리니 소중하게 다뤄주세요. 그리고 그 꿈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모든 이야기 속 이름은 고민을 했던 사람과는 다른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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