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꿈에서 사람들을 구한다
이륙과 착륙.
여행의 시작과 끝.
만남의 성사.
비행기를 타는 일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이다. '승무원'으로 일을 하며 수 없이 타는 비행기이지만, 나 역시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는 설렘은 낯선 곳으로의 이륙에서부터였다. 거대한 지구가 단번에 작은 공처럼 느껴지기도, 닿을 듯한 지구가 되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무지개와 같다던가 하는 기분들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비행기였다. 지구의 가장 표면에서 우리의 삶을 한눈에 보게 되는 설레는 공간. 그런 공간이 종종 내 꿈의 악몽으로 다가와 나를 서늘하게 만들 때가 있다.
승무원을 합격한 후에 약 두 달간 안전훈련을 받는다. 그 기간이 회사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는 있지만, 훈련의 내용은 모두 같다. '혹시나' 하는 상황들조차 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받으며 사명감을 느끼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나 비상착륙 훈련을 가장 엄격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실전에서 쓰고 싶지 않은 훈련이라는 마음이 나를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실제 상황과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불로인해 문이 막혔을 때, 10개의 문 중 단 3개만 열 수 있을 때 그리고 슬라이드 오작동으로 기내 안으로 터져 입구가 막혔을 때 등등. 모든 상황들을 염두하고 오랜 기간 훈련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의 구출작전이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고민들 때문일까. 나는 매일 출근 전 '혹시나'의 상황을 늘 생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나의 불안감이 사명감을 해치지 않도록, 늘 나의 위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주 꽤 오랜 기간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 그 악몽 속에서 내가 탄 비행기는 언제나 어디서든 추락을 한다. 정글로 바다로 사막으로 그게 어디가 되었든 나의 비행기는 어디론가 떨어진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구호를 외치고, 장비들을 챙기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아주 가끔 바다로 비상착륙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보트 안에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을 살린다. 비상식량을 배분하고, 아픈 사람들을 응급처치하고, 비가 오면 빗물이 들어오지 않게 보트에 구비된 방수 텐트를 친다. 그리고 종국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만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부터 사람들을 구출하기까지 그 긴 과정이 항상 똑같이 꿈에 나온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꿈이 과연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꿈에서도 훈련을 하고 있는 거였다. 비록 매일 밤 꿈에 나오는 장면들은 나를 무섭게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난 후에는 훈련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니 말이다.
최근까지 너무나 많은 비행기 사고가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비행을 가기 전과 비행을 다녀온 직후에 뉴스들을 보게 되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야 말았다. 당시 상황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상황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비행을 가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고 일어나 잠을 깨려 커피로 시작했을 크루들. 모두가 안전 비행을 외치며 기분 좋게 탑승했을 것이고, 설렘 가득 안은 승객들과 마주했을 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손가락이 타자기에 들러붙듯 붙어서 떼어지지가 않는다. 타자기의 소리가 왜 이리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을까. 그래서인지 요즘 비행을 할 때마다 불안함으로 우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많이 본다. 그들에게 최대한 웃음을 전한다.
얼마 전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어쩌면 '기적'이라고. 우리가 무사히 하루를 잘 마친 것 또한 기적인 거라고. 우리는 매일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그런 기적을 소망하며 다시 나는 이륙을 하러 간다. 그 이륙과 착륙에 함께할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하며.
'걱정 마세요. 저희가 지켜드립니다.'
'Safe F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