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날의 비행에서 만난 누군가들에 대해
"What is the passenger profile for this flight? I mean, where are they from"
(이번 비행 승객 프로파일이 어떻게 돼요? 제 말은, 어디서 왔는지 말이에요)
"from everywhere"
(모든 곳에서요)
브리핑을 시작하면 늘 공유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승객 프로파일, 일명 이번 비행에 탑승할 승객들의 특징에 대해서 공유하는 것이다. 유난히 술을 많이 드시는 비행 혹은 아이들이나 가족단위가 많은 비행 등등에 대하여 공유를 한다. 이러한 사전 브리핑에서 비행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를 해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들이 많은 비행이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분들의 수가 많다면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대기를 하고 있는다, 영어를 잘 못하는 승객분들이 많이 타는 비행 편에서는, 목적지에 따라 많이 쓰는 언어를 공부하곤 한다. 승객 프로파일의 공유는 비행의 필수 준비물 같은 것이랄까. 영화나 드라마의 예고편처럼 오늘 비행을 미리 예측하고 나만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놓는다.
승객 프로파일을 공유할 때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어떤 날의 비행기에 탑승하는 대부분의 승객분들의 성향이 거의 비슷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지구의 같은 한 점으로부터 반대편의 같은 한 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비행 편에 탑승했던 승객분들은 전부 지구의 다른 점들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나를 놀랍게 했다. 태어난 나라도, 함께했던 주변사람들도, 나고 자란 곳의 계절과 소리들까지. 모든 것이 다른 여러 점들로부터 왔지만 그들이 만나면 마치 '같은 한 점'의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어떤 날은 탑승의 시작부터 공기가 싸늘할 때가 있다. 그 어떤 딜레이도 없었고 기종도 신기종이었기에 더없이 쾌적한 공간이었다. 하나의 목적지로 향하는 하나의 비행기가 서 있는 게이트로 오는 길들이 분명히 달랐음에도 그들이 만든 공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Good morning, how's your day?'라고 던진 상냥함에 그저 무표정으로 지나가기만 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누군가의 컴플레인을 시작으로 비행기가 랜딩 할 때까지 모든 승무원들이 컴플레인만 받다 끝난 비행이 있었다. 그 이유는 '좌석이 좁다' 혹은 '제공하는 물컵이 작다' 등이 다수였다. 마치 모두가 작전이라도 짠 듯이 전쟁을 선포한 기분이 드는 비행이었다. 그 전쟁에서의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떤 날 어떤 비행의 어떤 승객분들이 있었다. 조심스레 건넨 나의 다정함에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초콜릿을 건네셨다. 화장실 문을 열지 못해 서성이는 아이의 문을 열어줬을 때, 그것을 바라보았던 부모님은 비행이 끝나기까지 감사인사를 전했다. 한 가지 메뉴가 전부 소진되었을 때, 앞 열에 앉은 승객분들에게 건넨 메뉴 설명들을 유심히 들은 뒷열의 모든 승객분들은 "남은 거 먹어도 돼요."라며 웃어주었다. 400명의 탑승객들은 전부 '어딘가'에서 왔다. 그들은 전부 '지구의 여러 점'으로부터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내가 살던 고향에 있는 우리 집으로부터 온듯한 사랑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의 온기는 한동안 추운 내 몸속까지 맴돌았다. 사람으로부터 지쳐간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에도 난 결국 사람으로부터 온기를 얻었다. 상처가 흩뿌려진 마음들을 다시 붙여 나 조차도 나를 의심하는 순간, 지구의 어딘가에서 온 '어떤 사람'의 다정함이 나를 재생시켰다.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공간에서는 매일 다른 비행기를, 사람들을 마주한다. 매달 7번의 비행. 매번 400명의 사람들. 이륙과 착륙을 합하면 비행 한 번에 800명 남짓. 한 달만 해도 난 벌써 2800명에게 간단한 인사말과 감사를 전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면 난 사실 모른다. 생김새로 판단할 수도 없다. 부모님은 일본인이지만 국적은 독일인일 수도 있는 거다. 승객 프로파일로부터 배운 건 '난 그 누구도 나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떤 날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가져온 싸늘한 공기에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상처받은 사실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 비행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들 또한 이유 없이 함부로 나를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형체 없는 무기들을 겨눌 수는 없다.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부터 조각나버린 사랑의 기력은 사람으로부터 재생된다는 것.
그래서 난 사람들을 좋아한다.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부탁드릴게요' '정말 감사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어딘가 깊숙이 감춰놓은 상처들에 재생능력을 건네주는 하루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비행을 간다.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