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보살펴야 해요 나는 나의 보호자입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맨처음 생각난 곳은 2년 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욕설을 들었을 때 방문했던 에이 정신건강의학과였다. 2년만에 방문한 내게 간호사는 진단서는 6개월 이상 진료를 받아야 줄 수 있다고 묻지도 않은 사실을 알려줬다. 2년 전 이 병원에서 세 차례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요구했지만 정신과에서는 최소 한 달 이상 진료를 받지 않으면 쉽사리 진단서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진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특히 에이 정신건강의학과는 진단서를 작성해주는 데 더욱 신중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당장 내면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진단서를 주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병원의 원장님은 나의 테스트지 결과를 보고 혹시 자살 충동이 드냐고 물었다. 내년 나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예식장 날짜까지 잡았다. 그런 내가 자살을 생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전파를 이용해 받아본 자율신경계 검사 결과 역시 좋지 않다고 했다. 자율 신경 내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균형이 깨져있고 이것이 심각해지만 공황장애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웠다. 테스트 결과에서 두 신경의 균형은 내가 봐도 어긋나있었다. 지금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만 조금 놀란거지 일주일만 쉬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진료 결과를 들으니 오히려 내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안정제와 수면제를 받은 뒤 병원을 빠져나갔다. 병원비로 7만원 가량이 나갔다. 담임 수당은 정신과 진료비로 다 쓴다는 인디스쿨의 글이 생각나 자조가 새어나왔다.
교권침해교원 보호휴가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5년간 학교 근무를 하며 줄곧 가져온 담임교사로써의 책임감이 나를 내리 눌렀다. 내가 없으면 내 반은 누가 맡을까? 보결을 넣느라 교무부장님이 너무 고생하실텐데. 우리반 수업을 맡느라 고생하실 선생님들께 죄송해서 어쩌지? 이런 저런 잡념들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히려 철쪽이 때문에 느낀 스트레스보다 사람들이 나를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반으로 돌아가 철쪽이를 볼 수 있을까? 를 생각해보면 심장이 크게 요동치고 죄여왔다. 나를 보면 눈웃음을 치곤 했던, 나에게 좀 많이 혼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반 아이라고 예뻐했던 그 아이가 뒤에서 나를 썅년이니 뭐니 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나를 괴롭게 했나보다. 나를 대신해서 고생하고 계실 선생님들께 너무나 죄송하다, 학교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할 자신도 없었다. 평온하게 교직생활을 했던 2024년의 내가, 졸업식 2달을 앞두고 철쪽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었을 욕설 몇 마디로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대체 한 해간 무엇을 한 것일까?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갑작스러운 숨막힘과 구역감, 미칠듯이 뛰는 심장을 느꼈다. 잠시 기절을 한 것 같다. 다행이 몇 분 안에 정신을 차리고 택시에서 내려 주변 카페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길거리에 쓰러질 것 같았다. 20분~30분 정도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니 정신이 돌아왔다. 태어나서 수술을 해본 적 없어 내 자신이 건강 체질이라고 자신했다. 병에 걸린 적도 거의 없고 당연히 기절할 뻔한 적도 한번도 없다.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현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 정말 문제가 생긴걸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공황장애의 발작에 해당하는 증상인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이게 신체로 드러난다고 한다. 스트레스의 신체화가 나타나면 이는 겪고있는 스트레스가 정말 크다는 반증이다.
교감 선생님은 1달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가 있어야 기간제 공고를 낼 수 있다며, 그래야 뭐라도 진행될 수 있다며 재차 내게 진단서를 요구하셨다. 부담이 마음에 계속해서 쌓였다. 병원들을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한의원에서는 내게 홧병이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중년여성의 갱년기같은 증세가 일찍 올 수 있다고 했다. 손발엣 ㅓ땀이 나고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렇지만 평소 아픈 곳이 있지도 않은 내가 진단서를 쉽게 얻을 수는 없었다. 늪에 갇힌 것 같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