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실전이다 납쪽아
요근래 멘탈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를 향한 우리반 금쪽이의 교권침해 사안을 인지한 날은 10월 31일이었고, 정신을 좀 차려보고 스스로를 토닥여보니 11월 15일 오늘이다.
10월 31일,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이동수업에 보낸 뒤 숨돌리기를 하는 참이었다. 부장님이 우리반 교실에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무슨 일인지를 묻는 내게 부장님은 인스타그램 대화 캡처본을 보여주었다. 우리반 금쪽이가(금쪽이라 하기엔 분노가 안풀려 납쪽이로 수정하겠다.) 아니 납쪽이가 우리반 여자애와 나눈 대화였다. 대화 내용을 읽어보니 내 이름을 반말로 부르며 쌍욕을 하고, 담임교사인 나를 비하하는 날이 선 말들이 적혀있었다. 여자아이는 납쪽이의 말에 당황스러운지 네가 잘못했으니 선생님이 혼낸 것이 아니겠냐며 대답하고 있었다. 뭐라 말하는 부장님의 말도 잘 들리지 않고,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2년전 6학년 똥쪽이 아이들을 대거 만나며 참담한 꼴을 많이도 봤다. 우리 지역 전체에 유명한 아이들이었다. 그때는 경력이 너무 짧고 교권에 대한 인식이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맨몸으로 버텼다. 그 억울함이 사무쳐 아직도 내게 맺혀있는데 그때 경험이 내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권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이다.
곧장 교무실로 달려가 교감 선생님께 사안을 알리고 교권침해교원 보호휴가를 요구했다. 이는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교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교원에게 내릴 수 있는 5일간의 휴가다. 이후 교권침해로 인한 피해가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교원에게는 6일간의 공무상병가를 학교장 판단으로 허락할 수 있다.
교감 선생님은 혼자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나를 데리고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 교감선생님은 내가 이야기 하기도 전에 사안에 대해서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 전날 공개수업이 있던 나를 배려해 부장님이 내게는 말을 하지 않고 관리자분들과 미리 상의를 한 모양이었다. 이런 사안이 발생했음을 알았다면 다음날 출근한 나를 불러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장선생님은 학년끼리 이야기해서 결정해라 라는 태도여서 조금 아쉬웠다. 나는 학생의 무례한 말에 의해서 명백히 상처를 입었다. 그렇지만 학년 내, 학교 안 나의 업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상처를 입고 누워있는 동안 내 업무가 누구에게 가야한다고 생각을 하면 나는 쉽게 쉴 수 없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보통 많은 교사들이 교권침해 사안을 겪어도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끙끙 앓게 된다. 조금 다행인 것은 올해부터 교권보호위원회의 개최주체가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바뀌어 교보위를 열어도 학교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조금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는 나의 말에 교장선생님은 교권보호위원회가 학부모의 동의 없이도 열릴 수 있는지 물었다. 답답한 질문이었다. 학교 안에서 교권침해는 학생, 학부모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 교권침해을 가한 이에게 허락을 구해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 수 있냐는 질문이라니.. 또 내게 납쪽이를 앉혀놓고 차분히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물어보라고 했다. 말을 듣고 어이를 잃은 내가 “왜 제 욕을 했는지 물어보라는 말씀이신가요?” 하고 묻자 그건 좀 모양이 이상하겠다며 말씀을 수정하셨다.
관리자와의 대화를 통해 일주일 휴가를 얻고, 교보위 개최 의사를 밝혔다. 교보위 개최 의사를 밝힌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증거 수집이다. 이때 증거들은 학생을 상담하면서 남겼던 기록, 한 해의 생활 특이점을 기록해놓은 행동발달 특성 누가기록, 녹음, 주변 학생들의 목격 진술서 등이 있다. 특히 같은 반 학생들의 목격 진술은 큰 효력을 갖는다. 이는 학교에서 내가 존경하고 믿는 교무부장님께서 맡아서 해주셨다. 만약 학교에 믿을만한, 그런 선생님이 하나도 없다면 교보위 개최는 더욱 힘든 일이 된다. 슬프지만 학교 내 현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