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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Feb 10. 2024

피아노의 의인화, 쇼팽

쇼팽 에뛰드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있다. 유럽의 전직 조폭인 독일과,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깡패인 러시아 사이에서 온갖 수난을 겪은 것이 폴란드의 역사다. 이제 민주주의가 안정된 상황에서 폴란드가 가진 잠재력은 유럽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미래가 촉망되는 나라이지만, 예전에는 동서로 두들겨 맞으면서 바람 잘 날이 없는 슬픈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 1810년, 쇼팽이 태어났다. 늘 그랬듯 뻔한 천재 클리셰로 8살부터 폴로네이즈 작곡하고 그런 진부한 성장과정을 겪는다. 매번 음악가 소개할 때마다 천재라서 설명하는 것도 지겹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당시 언론은, 천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나타났다는 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만큼 쇼팽은 폴란드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다. 세계 최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고, 공연으로 번 돈은 몽땅 독립운동에 갔다 바쳤으니, 어찌 국민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피아노 콩쿠르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고, 수도 바르샤바의 공항 이름조차도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이다. 그만큼 쇼팽은 폴란드의 자랑이다.


 이 천재는 유독 피아노에서 더 재능을 드러냈는데, 바흐도 그렇고 이 천재들은 또 후대를 위해 연습문제를 남겨놓는 것 같다. 한 때 한국 청소년들의 화장품 입문 도우미였던 에뛰드 하우스의 에뛰드(etude)는 다름 아닌 '연습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쇼팽의 작품집 이름이다. 에뛰드 하우스는 화장을 연습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마케팅 타겟층을 공략하는 브랜드명부터 제대로였다는 것이다. 바흐도 그랬지만, 쇼팽이 만든 이 연습곡들은 그 목적이 분명함에도 엄청나게 아름답다. 쇼팽의 에뛰드는 Op.10에 12곡, Op.25에 12곡이 있고, 이후 작곡한 3개의 새로운 연습곡이 있는데, 이 중 Op.10 전집에 있는 12번 연습곡은, 왼손 아르페지오를 위한 연습곡이지만, 폴란드에서 러시아의 지배에 대항한 혁명이 일어났을 때의 심란한 감정을 담은 곡으로 '혁명(Revolutionary)'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곡이다. 들어보자.


[조성진 피아니스트(펄~럭)의 쇼팽 에뛰드 10-12 연주]

https://youtu.be/lr1RTyvDb4U?si=2qPVNz1FIaRdpZUQ


 잘 보면 왼손은 거의 죽어나는 수준의 연습곡인데, 치는 사람 말고는 이걸 연습곡으로 인식할 수가 없다. 동시대에 쇼팽과 절친했고, 또 다른 피아노의 신으로 추앙받는 프란츠 리스트와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리스트가 화려하고 강렬한 기교를 뽐내는 방향으로 작곡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쇼팽은 기교가 한 발 뒤로 물러나있다. 쇼팽의 음악을 많이 들어온 사람도, 쇼팽을 테크니컬 한 작곡가로 인식하지 않고, 눈물날만큼 아름다운 곡을 써낸 작곡가로 인식하는데, 치는 사람들은 토가 나올 지경인 게 쇼팽 곡들의 특징인 것이다.


 쇼팽에 대해서 어디 가서 있어 보이는 척 말하려면,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나 비엔나와 파리로 간 후로, 평생 동안 폴란드를 그리워했으나 가지 못했다는 것, 유언에 따라 쇼팽의 사망 후 심장이 누이에게 인도되어 이후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는 것 정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리스트와 절친이었으며, 리스트가 소개해준 '조르주 상드'라는 저명한 소설가가 쇼팽의 연인이었다는 것도 알면 있는 척하기 좋다.


 하지면 역시 무엇보다 에뛰드를 많이 들어보고 아는 것이 최고이지 않겠는가. 오늘은 설명보다는 쇼팽의 에뛰드 중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곡들을 링크하며 마친다. 보통 Op.10의 12번째 곡이면 10-12로 표현한다. 25-4 라면 Op.25(작품번호 25)의 4번째 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뛰드는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길지 않으니, 다 한 번씩은 꼭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10-1, 조성진]

https://youtu.be/9E82wwNc7r8?si=4W5R2bHGbgdoPXbR



[10-2, 부제: 발레리나, 드미트리 쉬시킨]

https://youtu.be/of_afnCe4IE?si=uoXFdxVXk_vtjjur



 [10-3, 부제: 이별, 랑랑 (개인적으로는 표현이 오버스러워서 좋아하진 않지만, 오디오는 좋으니..)]

https://youtu.be/8XiFGotsyjc?si=9eJ-2eRY6Hev3vjO



[10-4, 부제: 추격,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 꼭 봐야 하는 전설적인 영상

https://youtu.be/zPKZbR1gdhA?si=OvryG2sPlFejdYpy


[10-5, 부제: 흑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https://youtu.be/pHjwbH9YvY8?si=DAcjrZbRTY9V5Bza


[25-11, 부제: 겨울바람, 에브기니 키신]

https://youtu.be/vgxNfq2vaVw?si=Oa7qY1ynG6gZv-ye


[25-12. 부제: 대양, 마우리치오 폴리니] → 가장 좋아하는 연주인데 영상은 없는 듯

https://youtu.be/5M2PO4f5Y7k?si=DkCWRg2EjFe3jY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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