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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Feb 06. 2024

개성이 없어도 괜찮아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오늘은 바흐 이야기인척 하는, 그냥 내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특징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아무것도 잘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지간한 것들은 평균 이상으로 잘했다. 친구들한테는 이거 저거 잘하는 친구로 인식됐다. 그걸 항상 경계했던 어머니는, '열 재주 가진 놈이 밥 빌어먹더라'는 옛 표현과 함께, 뭐 하나라도 잘해야지 그렇게 이거 저거 어중간하게 잘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옛 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결국 나는 어떤 재주도 살리지 못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됐다. 어릴 때랑 비슷하게, 지금도 회사에서는 왜 회사를 다니냐, 재주가 많은 것 같은데 뭐라도 살려서 탈출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돈 벌 만큼은 아니에요 라는 대답을 하곤 한다.




 사춘기는 사회 속에서의 나를 인식하고 정의해 가는 과정이다. 나의 사춘기는 약간의 폭력성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건 외견상 그래 보였을 뿐이다. 물론 모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의 머릿속은 폭풍이 불고 있기에, 내가 뭐 더 큰 폭풍을 겪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폭풍의 어려운 점은, 나를 정의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과 함께 할 때 말투와 행동, 관심사나 대화의 주제가 달랐다. 나의 색깔 없이, 상대의 색에 맞춰지는 사람. 내가 사춘기 때 인식한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이 스스로를 온전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우울한 일이다. 나를 설명할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없는 나는 존재하는 게 맞는가 하는 불안과, 내가 타인에게 느꼈던 '개성'이라는 것을 나에게 찾아볼 수 없다면, 나는 과연 매력 있는 사람일까 하는 불안이 나를 항상 따라다녔다.

 



 음악 얘기를 해 보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하여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것 외에,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바흐의 곡을 내가 감상하기에 이미 내 귀는 후기 낭만파의 화려한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인벤션이든 푸가든 내게는 조금 밋밋했지만, 그래도 클래식 들으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다 보게 된 바흐의 프렐류드-푸가 앨범의 제목이 The Well-tempered Clavier라는 것을 발견했다. Temper는 이과 공부를 하던 나에겐 '담금질'이라는 뜻으로 읽혀서, 무슨 클래식 제목이 잘 담금질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 제목이 뭔지 찾아보게 됐다. 한국 말로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라 한다. 평균율이 뭐길래 잘 담금질됐다고 쓰는 걸까. 


 사실 평균율을 이야기하려면 수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근데 음악 들으면서 무슨 수학까지 알아야 하나, 수학은 쏙 빼고 이야기해 보자. 현악기나 관악기는 적당한 손 위치나 호흡을 통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건반악기, 일례로 피아노의 경우, 하나의 건반을 타건하게 될 때 유일한 하나의 음만 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건반이 어떤 음을 낼 수 있냐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곡의 한계가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지금이야 아무 생각 없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쓰고 있고, 피아노의 건반은 원래 다 정해져 있는 것 같지만, 이 또한 누군가가 처음에 정하지 않았겠는가. 바흐 이전에 많이 쓰는 건반과 음의 구성은 '순정률'이라는 기준으로 음계를 결정하고 건반악기를 이에 맞게 조율해서 썼다. '순정률'이란, 음계를 구성하는 각 음의 주파수가 깔끔하게 정수비로 떨어지는 음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건반악기는 한 음계가 흑건(검은건반)까지 포함해서 12개의 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2 건반 음계라고 볼 때, 각각의 건반의 음이 가진 주파수의 비율이 모두 정수로 떨어지는 것이 '순정률'인 것이다. 순정률은 피타고라스가 기틀을 닦았고, 우리가 피타고라스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숫자인 3:2 또는 4:3의 주파수 비율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3:2, 4:3 등의 자연 배율로 구성된 순정률은, 해당 음계 안에서 최고로 조화로운 음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바흐는 이 아름다운 순정률은 두고 왜 평균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도'를 기준으로 순정률을 따라 건반을 구성하게 되면, 기준음과의 정수비로 구성된 순정률로 조율된 건반악기의 연주는 매우 조화롭다. 하지만 여기서 '레'를 기준으로 하는 음계로 전조 된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악기에서의 '레'는 기존 '도'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건반이기 때문에, 이를 기준음으로 잡게 되면 나머지 건반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버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도-도#-레-레#-미-파-파#-솔-솔#-라-라#-시로 구성되는 12개의 건반이 있다고 해 보자. 순정률은 각 건반 사이의 음의 높이 차이가 일정하지 않다. 수학적으로 가장 조화로운 음의 위치를 잡아서 구성해 봤더니, 각각 건반 사이의 음 높이 차이는 제각각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도# = 레♭는 같은 음이라고 알고 있지만, 순정률에서는 도# ≠ 레♭가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도'를 기준으로 하는 '다장조'의 음악을 순정률로 튜닝된 피아노로 연주한다면 문제 되진 않지만, 전조가 되면서 '파'를 기준으로 잡는 '바장조'의 음악으로 변경된다면, 이 악기는 엉망진창으로 조율된 악기가 된다. 이러다 보니, 순정률로 피아노를 튜닝하게 되면, 이 피아노로는 전조가 없는 단순한 곡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된다.


 바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균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조화는 모르겠고, 12개의 건반 사이 음의 높이 차이를 일정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저승에서 통곡할 이 조율 방법은, 건반악기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조화는 포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건반의 상대적 음 높이차가 일정해지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전조의 가능성을 취할 수 있는 튜닝 방식이다. 모든 건반의 주파수를 지수형태로 표현했을 때 지수가 등차수열을 이루면서 도# = 레♭, 즉 다른 이름이지만 같은 음이 성립 가능해진다.




 평균율을 제정한 바흐는, 이 평균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후학들에게 알리기 위해 평균율 교재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다. 바흐 정도의 거성이, 교재로 만들었다 한들 예술성이 부족할리 없기에, 많은 연주자들이 레코딩하기도 한 훌륭한 곡집이다. 그럼에도 바흐 본인이 작곡 의도를 이렇게 못 박아 버리기도 했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전주곡과 푸가는 젊은 음악학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또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자들에게는 ‘여가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기준을 만들었으면 사용 설명서 또한 배포하는 것이 인지상정. 바흐의 이 평균율 피아노 사용 설명서는 클래식 음악계의 구약성서로 불리며, 이후 신약성서가 된 베토벤의 소나타와 함께 고전파, 낭만파로 폭발해 가는 클래식 음악의 시발점이 된다. 어쩌면 몰개성적 구성이라 볼 수 있는, 단순화된 등간격의 음계로 이루어진 건반악기가, 작곡가들에게는 하얀 도화지 같은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매 순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이 놀랍다고 할 정도로 다른 말투와 성격, 화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각기 다른 화젯거리로 대화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각기 다른 취미 생활을 공유한다.


 뭐든지 사람들과 재밌게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잘하고, 돈 벌 만큼은 아니다. 공부는 잘했지만, 의대를 간 건 아니다. 법과 경제 공부를 했지만, 고시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요리를 하지만, 음식점을 낼 만큼 하진 못하고, 영화와 책 등을 리뷰를 하지만, 평론가가 될 정도는 아니다. 건강과 생명과학을 공부하지만 의사가 아니다. 웹 개발도,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 및 편집도, 외국어도, 파워 리프팅도, 달리기도, 뭐 하나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모두와 이야기할 수 있다. 내 생활을 조금 더 재밌게 하는 정도는 된다. 하나만 잘했다면 오히려 몰랐을 세상을 매일 만나고 있다. 곧 마흔이 되는 나이에도, 여전히 내가 만나는 세상은 점점 커지고, 하고 싶은 것은 점점 많아져간다. 


 이제 오랜 시간 나를 불안하게 했던 몰개성에 대한 불안은 없다. 나는 스스로를 평균율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음계에 최적화되어, 최고로 조화로운 음을 내진 못하지만,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라고 생각한다. 어디든 맞출 수 있고 어디든 녹아들어 갈 수 있는 게 개성이라고 말한다. 한 분야의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분야라도 술자리에서 재밌는 안주거리 썰은 얼마든지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은 된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나는 매우 큰 도화지다.





 

바흐의 곡들은 수학적으로 안정된 평균율과 대위법으로 인해, 심신의 안정을 준다. 노동요로, 혹은 생활 배경음악으로도 아주 훌륭하게 들어맞는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모두 연주한 글렌 굴드의 레코딩을 링크하면서 글을 마친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글렌 굴드]

https://youtu.be/1CVlBSgj0bk?si=qjdGeT6w997v94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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