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 영재였다가, 성장하면서 천천히 평범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한다. 아내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매 순간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에는, 긴 인생에서 며칠 차이 나지 않는 정도만 앞서도 주변의 놀라움을 사고, 몇 종목 없는 경쟁에서 앞서면 뛰어나 보이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 잘하지 못하는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내가 원래 잘했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느 순간 뒤처져 있는 것이 되고, 항상 칭찬만 받던 어린아이가 핀잔과 무시를 일상으로 받는 어른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는, 동굴에 숨어서 바깥으로 나가기 무서워하는 사람이 된다.
사실 알고 보니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고, 진짜 영재들은 그러한 슬픔 없이 한 없이 나아갈 것 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최고의 순간을 보고, 나의 최악의 순간과 비교하며 자책한다. 하지만 한 걸음만 떨어져서 봐도, 우리 모두는 같은 호모 사피엔스이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산과 골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먼지 같은 개체일 뿐이다. 저 사람이라고 빛나기만 할까, 나라고 어둠 속에서 스러져가기만 할까,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동굴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찬란했던 어린 시절의 칭찬 세례와 무조건적이었던 사랑만 기억하며, 그만큼의 칭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이제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천재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근현대 클래식 음악계의 천재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4살부터 스스로 원해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17살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 작품번호 1번을 작곡했다. 클래식을 명명할 때 '작품번호', Op라는 것은 그 작곡가의 정식 작품 중 몇 번째 작품인지를 뜻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작품번호 1번이다. 즉, 라흐마니노프의 첫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이 잘 나가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는, 24살에 이르러 무려 교향곡을 작곡해 낸다. 하지만 영광의 길을 걸을 것 같던 그에게 이 교향곡은 큰 시련을 준다. 평단의 엄청난 악평을 받으며 라흐마니노프에게 처절한 패배를 안긴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공연되지 못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자서전을 보면, 그 시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는 나의 꿈은 무너졌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3, 4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우리가 과거를 비교 삼아 현재를 비하하는 것은, 왠지 더 높게 날았던 기억이 상대적으로 지금의 비참함을 더 부각하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처럼 과거에 찬란하게 높게 날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비참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 때 잘했잖아", "그것도 못 한 사람도 있어" 등의 위로는 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실패 없이 훨훨 날다가 추락한 사람에게, 한 때 높이 날았다는 사실은 그 갭을 더 명확하게 할 뿐이다.
그렇게 우울증에 시달리며 멍하니 살아가던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이라는 정신의학자를 만나게 된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을 만나봤지만 차도가 없던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었던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 끝에 둘은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우울증인 사람에게 수면패턴과 식습관 조절은 필수적이다. 여기에 더해, 니콜라이 달은 자기 암시기법을 사용했다. 정신의학적으로 약간의 최면상태에 들게 한 뒤에, 어떠한 말을 계속해서 되뇌게 하는 요법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에게는 "당신은 곧 새로운 협주곡을 작곡할 것이고, 그 협주곡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라는 암시를 반복해서 되뇌게 했다.
이를 통해 다시 작곡을 시작하면서, 점차 나아가던 라흐마니노프의 눈에 들어온 한 신문기사가 있었다. 유명한 선배 정신분석학자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능가하기 위해, 저명한 라흐마니노프의 우울증을 치료하여 자신의 기법을 증명하고자 하는 니콜라이 달에 대한 기사였다.
니콜라이 달의 자신의 치료에 대한 순수성을 믿고 있던 라흐마니노프는, 이 기사를 보여주며 니콜라이 달에게 "당신은 왜 나를 치료하려 합니까?"라고 화를 냈다. 선배 프로이트에 대한 열등감과, 라흐마니노프의 일갈이 섞여 모멸감을 느낀 니콜라이 달은, 자신의 치료 동기를 순순히 인정하고 돌아서려 했으나, 또다시 동굴에서 나오는 것에 실패한 라흐마니노프의 절망을 마주하며, 똑같은 질문을 라흐마니노프에게 되묻게 된다.
"당신은 왜 음악을 작곡하려 합니까?"
라흐마니노프는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와 라흐마니노프의 누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술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고, 누나는 건강이 악화되어 몸져눕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천재성은 일찍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음악원을 가지 않는다면 누나의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을 알았지만, 차마 이를 포기하지 못했다. 대신 라흐마니노프는 누나에게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려 했다. 하지만 누나는 곧 죽었고, 라흐마니노프에게 음악의 동기는 칭찬만 남게 되었다.
음악원의 대부분의 교수들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일부 교수들은 지나치게 많은 기교로 넘쳐나는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지적했다. 이후 앞서 언급한 그의 교향곡은 "나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알아요! 칭찬해 주세요!"라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다는 혹평을 듣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톨스토이에게도 "가치 없는 음악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라흐마니노프는 무너져갔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정신적 지주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이, 동성애자가 음악계를 더럽힌다며 비소로 독살한 것이라는 설이 제기되면서, 사촌 여동생과 결혼을 러시아 정교회에서 반대하고 있던 라흐마니노프의 우울증은 가속화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생각했다. 누나에게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려 했었던 그 마음을, 순수하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그때의 동기를 떠올렸다. 테크니컬 한 기교를 통해 찬사를 얻으며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잊었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다시 그 순수한 동기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서로의 열등감과 아픔을 공유하고, 신뢰를 회복한 니콜라이 달과 라흐마니노프는 치료를 계속하고, 결국 그 아픔의 시간 끝에 라흐마니노프 최고의 역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완성된다.
작품 이야기를 해 보자. 이 곡은 KBS FM에서 집계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으로 선정된 바가 있을 정도로, 곡의 이름이나 작곡가는 모를지언정, 안 들어보기는 힘든 곡이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말 많이 차용되고 편곡되어 삽입되는 등, 비발디의 사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등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악장은 러시아 특유의 음울함으로 시작을 한다.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피아노가 주인공인 듯 아닌 듯하면서 오케스트라와 멜로디 라인을 기가 막히게 섞어서 내는 것이, 라흐마니노프가 왜 천재 소리를 듣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악장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많이 듣는 곡인데, 2023년 내 스트리밍 어플이 알려준 내가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곡도 이 곡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겪을 때의 우울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면서도, 이게 바로 천재성이 우울증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2악장은 서정적인 오케스트라로 시작하지만, 자꾸 우울함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때마다 피아노가 그러한 우울함을 막아서고, 나중에 가서는 현악기들이 피아노와 함께 같이 우울함에 막아서는 느낌을 준다. 서정성 측면에서 정말 아름다운 악장이며, 라흐마니노프가 치료를 받는 시기의 느낌을 준다.
3악장은 C 단조로 시작하여 분위기 자체는 우울하지만, 전반적인 힘이 달라진다. 두 개의 멜로디 주제가 반복하여 나타나면서, 점차 분위기를 끌어올리게 되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이 우울을 딛고 결국 다시 선다는 것을 나타내는듯한 강렬한 승리와 환희가 느껴지는 C 장조로 마무리된다. 마치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도 하듯이, 이 곡의 초연은 엄청난 찬사를 받고, 이후 재기에 성공한 라흐마니노프의 화려한 음악적 커리어가 계속된다.
누구나 동굴에 숨어들 때가 있다. 한 때 찬란했던 사람이라면 더 심할 것이다. 대부분 얼른 동굴에서 나오라고 소리치고 재촉하겠지만, 나 스스로 나오지 못했다면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 뻔하다. 충분히 오래 있자.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자책해도 된다. 그러다 보면, 왜 동굴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내가 놓친 건 무엇이었는지, 내가 원래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릴 적 피아노를 누르면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 즐거웠던 기억, 스케치북에 색칠을 하며 여러 색감이 하얀 도화지를 채워가는 것에 기뻐했던 기억이 시작이었다는 것. 어릴 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 순수했던 열정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다시 동굴을 나갈 원동력을 찾게 될 것이다. 동굴 속에 있지만, 실은 아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곡을 듣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송시비의 클래식 음악야화]에서 발췌한,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겪을 때, 톨스토이가 보낸 편지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한다.
“젊은이여, 그대는 내 생애가 순조롭기만 했다고 생각합니까? 고난도 없었다고, 망설이거나 자신감을 잃은 순간도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에게는 누구나 곤란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자, 고개를 드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십시오.“
이 곡의 연주는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게 최고라고 생각하여 링크한다. (펄~럭)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조성진 피아니스트]
https://youtu.be/YviN1tuXbzc?si=a78Yyr9cdz369V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