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는데, 왜 아직 여기일까
아마 얼마 전에 내가 쓴 전자책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전사 중대장 출신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일부러 숨기고 싶어서도 아니다.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괜히 지금의 나까지 함께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설명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분명 선명했는데, 현재의 나는 아직 흐릿하다.
그 간극을 말로 채우는 일이 생각보다 버겁다.
나는 2015년, 육군 대위로 전역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10년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내 인생은 계속해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추면 그대로 뒤처질 것 같았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앞으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역 이후 선택지는 분명 많았다.
장교든 부사관이든 일정 기간 이상 군 생활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는 길이 있다.
경찰, 소방관, 교도관, 경찰특공대, 경호나 보안 쪽, 혹은 군과 연관된 공무원 조직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적어도 미래가 갑자기 무너질 걱정은 없는 삶이다.
주변에서도 그런 선택을 권했다.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했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 말을 잘 들을 놈이 아니니깐.
나 역시 제안을 받았다.
보안팀장 스카웃 이야기가 있었고, 경호 쪽 제의도 있었다.
특전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청와대나 국정원 이야기도 흘러들어왔다.
국정원은 솔직히 말해서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능력만 놓고 보면 갈 수 없는 길은 아니었다.
적어도 남들 눈에는 ‘잘 풀린 전역’으로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때마다 나는 결코 후회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반면 내 마음 속에서는 조금은 다른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나는 공무원이 되기 싫었다.
누군가가 정해준 틀 안에서, 누군가가 만든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사는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열심히 하든 안하든, 성과를 내든 못내든 사고만 안 치면 똑같은 월급이 나오는 구조.
그 안에서 사람은 조금씩 닳아간다.
처음에는 버티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진다.
그 익숙함이 결국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뒤에서 요령 피우는 성격도 아니었고, 적당히 눈치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늘 일이 몰렸다.
중대장을 할 때나, 인사장교를 할 때도 휴일과 휴가는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인사가 만사라고 일을 해도해도 끝나지가 않았다. 무슨 놈의 군대가 행정적인 일이 이렇게 많은건지.
돌아보면, 그때부터 이미 스스로를 많이 갈아 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스템 안에서 오래 버티다 보니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월급날만 기다리는 루팡이 될 것 같았다.
퇴근 시간만 바라보고, 연차를 세고, 정년을 계산하며 사는 삶.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전역하기 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누가 돈을 줘서 먹고사는 일 말고,
내가 직접 벌어서 살아보자고.
불안하더라도, 적어도 선택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전역 후 나는 다양하고 많은 일을 했다.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미친놈 널뛰기 하는 수준으로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헤맨 만큼 내 땅이라고 많은 경험은 쌓였지만 마음에 남는 길은 별로 없다.
어떤 일은 돈이 안 됐고,
어떤 일은 돈은 됐지만 내가 마음에 안들었다.
지금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겠지.
어쩌면 끝까지 찾지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늘 조급했다.
무조건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무조건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
늦어지는 건 실패 같았고,
멈추는 건 패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늘 내 생각보다 한 박자씩 늦게 움직였다.
빨리 가려고 할수록 장애물은 더 많아졌고, 더 높아졌다.
꼭 중요한 순간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세게 발버둥 쳤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늪에 빠진 건 아닐까.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수렁속으로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느낌.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
뒤를 돌아보면 돌아갈 길은 이미 사라졌고,
앞을 보면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공백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과도 조금씩 멀어졌다.
그들이 나를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너무 싫어서, 솔직히 말하면 쪽팔려서
내가 먼저 거리를 두었다.
괜히 연락했다가 초라해 보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자리를 잡고 나면 다시 찾아가겠다는 말로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나는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딱히 죄를 짓고 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한동안은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숨어 지냈다.
사람을 피하고, 말을 줄이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속에 하나의 감정이 남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인생에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그리고 아직 증명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부채.
지워지지 않는 부채감이다.
요즘은 이곳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조금씩 숨이 트이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이지는 않게 된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외면하지는 않는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동안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 생각 때문이다.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마음 한구석이 계속 무거운 사람들.
열심히 살았는데도
자꾸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여러분, 기죽지말자! 그냥 부딪치면 된다.
인생 까짓거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