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흐가 아니닝게

우리는 작품이 아니라 서사를 산다

by 풍운의 되새김질

진짜 비디오 판독을 지나 현미경으로 봐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고흐와 완전히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고 치자. 붓질의 각도, 색의 밀도, 물감을 올리는 순서와 압력까지 모두 동일하다. 전문가를 불러다 놓고 나란히 비교해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할 만큼 완벽한 복제다. 그런데도 고흐의 그림은 수백억에 팔리고, 내 그림은 10원에도 팔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다.
이게 바로 유명인과 무명인의 차이이고, 동시에 우리가 자주 헷갈리는 소유권과 저작권의 차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고, 결과물이 같으면 가치는 같아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가치는 결과물 하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시간을 거쳐 왔는가, 그 이름이 어떤 맥락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가 함께 묶여 가격이 된다.

고흐의 그림이 비싼 이유는 단순히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그림 뒤에는 고흐라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함께 붙어 있다. 생전에는 거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으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다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모자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화가라는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고흐를 소비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림만 사는 게 아니라, 고흐라는 이름에 축적된 시간을 함께 사는 것이다.

반대로 내 그림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아무도 내가 얼마나 오래 이 그림을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고, 몇 번을 실패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왜 이 색을 선택했는지, 왜 이 구도를 고집했는지 관심도 없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맥락이 없으면 가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건 불공평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직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분노한다. “이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똑같이 잘 그렸는데 왜 가격이 다르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빠진 전제가 하나 있다. 우리는 과연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세계에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은 실력 위에 신뢰가 쌓이고, 신뢰 위에 이름이 만들어지며, 그 이름이 다시 가치를 증폭시키는 구조로 돌아간다. 고흐 역시 하루아침에 고흐가 된 게 아니다. 다만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그 구조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다시 보았고, 그제야 하나의 이름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유명인과 무명인의 차이로만 볼 수 없다. 그림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그 그림이 만들어낸 의미와 시간, 맥락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기술적으로는 똑같은 그림일지라도, 저작권이란 결국 ‘누가 처음 이 이야기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건 예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콘텐츠나 사업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아이디어는 넘쳐나고, 유사한 결과물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등장한 이름, 혹은 그 분야를 대표하게 된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나며 가치가 된다.

그래서 무명은 종종 억울해진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이만큼 잘하는데”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아직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 신뢰가 축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차이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누적의 문제에 가깝다.

고흐의 그림이 수백억에 팔리는 건, 그 그림이 유일해서가 아니다. 고흐라는 이름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똑같이 그릴 수는 있어도, 똑같은 시간을 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좌절로 끝나기보다는 방향을 바꾸게 만든다. 내가 고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질문은 달라진다. “왜 내 그림은 안 팔릴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이야기를 쌓고 있는가”로 바뀐다. 지금 내가 남기고 있는 건 결과물인가, 아니면 이름인가.

결과물은 흉내 낼 수 있다. 기술도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서사는 흉내 낼 수 없다. 서사는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얼마나 오래 지속하고 있는가, 얼마나 꾸준히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있는가.

나는 고흐가 아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도 고흐는 아니다. 하지만 각자 자기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무언가는 있다. 수백억짜리 그림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그 결과물을 보았을 때 “아, 이건 그 사람이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 순간, 결과물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치는, 아주 천천히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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