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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을 하며 배운 것들

조금씩 다가가는 관계처럼

by 손스침

불과 금속은 오래된 사이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은 불을 만나면 조금 달라진다. 불에 달구면 금속은 부드러워지고, 열을 머금은 금속을 탕탕 두드리면 금속은 더욱 강해진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금속은 원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불과 금속 사이에는 늘 긴장이 있다. 땜은 그 미묘한 경계에서, 두 재료를 하나로 이어준다. 땜은 두 금속을 직접 녹여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니라, 두 금속 사이에 은땜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흘려 넣는 일이다. 스며들 듯 사이로 번져 들어가며, 아주 얇고 강한 연결을 만든다. 그래서 겉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엔 뜨거운 결정이 숨어 있다.


땜질에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표면을 깨끗이 닦는 일이다. 표면에 기름기나 산화막이 남아 있으면, 열이 잘 전달되지 않고 땜도 제대로 붙지 않는다. 아무리 온도조절을 잘해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과정이 굉장히 지난해진다. 그래서 땜질은 붙이기 전에 닦는 일부터 시작된다.


넓은 판에서 일부를 땜할 때는 바로 땜 부위부터 달구지 않는다. 먼 곳부터 천천히, 조금씩 열을 보내서 판 전체를 달궈 나가야 한다. 한 번에 한 지점만 뜨겁게 하면 잘 붙지 않으며 의도치 않게 뒤틀리기도 한다.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가야 원하는 지점에서 잘 붙는다.


그 과정은 마치 사람 사이의 거리와도 닮아 있다. 가까이 가고 싶지만 조심스럽게, 서두르면 다치고, 멈추면 식어버리는 거리. 그 거리를 서서히 좁혀간다.


땜은 의외로 제멋대로다. 작업자가 생각한 틈으로 흘러들지 않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작은 틈새로 땜이 스르륵 빨려 들어가는 순간 만큼은 마치 서로가 서로를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이다. 땜은 언제든 다시 녹여 분리할 수 있지만 늘 처음보다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한 번 굳은 결합은 더 단단해지고, 다시 풀기 위해선 더 많은 열과 더 깊은 집중이 필요해진다. 그건 마치, 한 번 가까워진 사이가 다시 멀어질 때의 감정처럼 복잡하다.


흘러내린 땜 자국은 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종종 그대로 남긴다. 그건 실패라기보다, 집중했던 시간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작업을 하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는 누구와도 쉽게 이어질 수 없다. 서로에게 열을 보내고, 적당한 온도를 찾고, 타이밍을 맞추지 않으면 결국 어긋난다. 땜은 금속을 붙이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걸 알려주는 일인 것 같다.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서두르지 않고, 타이밍을 기다리기. 그리고 뜻하지 않은 실패 앞에서 그 흔적마저도 일부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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