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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당신을 닮습니다

삶이 드러나는 공간에 대한 애정

by 손스침


작년 이맘때쯤 결혼과 동시에 이사 온 집이

점점 우리를 닮아가고 있다.


나는 건축을, 신랑은 목조형을 전공했으니

어쩐지 '멋~진..'집일 것 같은

선입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집은 조금 이상한 편이다.


아담한 우리 집 거실엔 TV도, 소파도 없다.

대신 신랑이 직접 만든 가구와 작품들,

그리고 내가 만든 작은 오브제들이

서로 비집고 들어와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있다.


둘이 사는 집인데, 의자만 해도

열 개는 족히 되는 것 같다.

그럴듯하게 말하면 수장고이고,

러프하게 말하면 창고에 가깝다.


책장이 부족해서 바닥에 무심히 쌓아둔 책들,

읽다가 말다가 멈칫멈칫 펼쳐놓은 흔적,

겨울을 미처 보내지 못한 난로,

그 옆엔 불현듯 더워지는 날씨를 대비하는 선풍기,

벽에 기대어 놓은 캠핑의자.

소형 작품을 찍기 위해 늘 대기 중인

조명과 삼각대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 풍경은

그야말로 어수선하다.


당분간 어른들을 초대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쩐지 잔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나도 법적 어른인데,

자꾸만 어른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우리 집 거실이 참 좋다.



-

친구들이 찾아오면,

이곳이 너를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꾸미거나 감추지 않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라고.


그럴 때마다 슬며시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꼬리는 살짝 내려간다.

나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서툴렀는데

억지로 드러내지 않아도,

내 공간이 먼저 나를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다.


세상엔 새삼 멋진 공간들이 많다.

화려한 조명이나 트렌디한 가구로 꾸며진

감각이 묻어나는 공간을 보며

때론 마음이 설레기도, 현혹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쩐지 폼나고 뽐내는 공간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현혹에 익숙해진 시대라서일까.

오히려 삶의 흔적을 밀어내지 않고

잔잔히 품고 있는 공간에 마음이 간다.




-

얼마 전 엄마 집에 다녀왔다.

의자에 꼼꼼히 신겨준 양말이

벗겨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예전 같으면 "정말 멋없고 이상한 우리 엄마..."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어설픔마저

정겹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정돈되지 않았지만 다정했던 엄마집의

온기가 아직 내게 남아있다.


엄마집 의자.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그맣게.




어쩌면

정리된 것보다 쌓여가는 것이,

완성된 것보다 덜 다듬어진 것이,

화려한 것보다 손때 묻은 것이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각자의 공간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닮아간다.


화려하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배어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도 우리의, 그리고 당신의 공간은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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