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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드는 삶이 주는 안정감

감정의 균형을 찾는 일

by 손스침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고,

내 하루는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삶과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있음을 문득문득 실감하곤 한다.


컴퓨터와 각종 프로그램이 도구의 전부일 때에는

전원을 끄면 내가 애쓴 흔적도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부피가 커질 대로 커진 작업공간에 들어서면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보인다.


작은 살림으로 시작한 작업대는

점점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보태다 보니

이제는 정말 포화상태이다.

그러니 나는 자유로움의 표상,

노마드와는 영영 이별인 셈이다.


그 대신 매일매일의 흔적이

크고 작은 물리적 형태로 남겨진다.

애써 기록하거나 기억하지 않아도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 좋다.


직접 눈에 보이고 만져진다는 게

이렇게 내게 힘이 되는지 몰랐다.





나는 주로 움직이는 조형물을 만든다.

살랑살랑 움직이며 허공에 궤적을 그리는 모습이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다.


이런 움직이는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밸런스 포인트'를 찾는 게 중요하다.

무게중심과 비슷한 개념이다.


작은 조각들을 선 끝에 달고

조각이 매달린 선재를 손가락 위에 올려두며

균형이 되는 포인트를 짚어낸다.


그 지점에 또 선을 달고, 조각을 달고

다시 포인트를 찾아내는 행위의 연속이다.


밸런스 포인트는 상당히 섬세해서

단 몇 미리만 어긋나도

때때로 균형이 틀어진다.


그럴 땐, 선 끝에 매달린 조각의 무게를

수없이 조정하게 된다.

왼쪽이 조금 무거우면 오른쪽을 덜어내거나,

한 조각이 아래로 쏠리면

위쪽의 선을 조금 더 휘게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때로는

모든 조각이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보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선이 잔뜩 기울어졌을 때의 긴장감이

오히려 조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작은 조율을 쌓아 나가면서

아름다운 선형을 우연처럼 발견할 때도 있다.





바람이나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면

조각과 선들이 한껏 휘청인다.

그러다가 결국은 균형을 찾고

선 끝에 매달린 조각들이 모두 잔잔해진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그토록 흔들렸던 걸까,

그 모습을 고요히 관찰하며

나 자신도 중심을 되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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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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