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팀으로 헝가리에 간 남편에게 갑자기 헝가리에서 근무하라는 발령이 났고, 임신 중 유산기가 심했던 나는 짐을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시부모님께 아파트 정리를 부탁드리고 친정에서 머무르며 출산을 준비했다.
출산 예정일에 맞춰 들어온 남편이 한국에 있는 동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예정일 전 매일 열 바퀴씩 공원을 돌고,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다리만 퉁퉁 붓고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일도 또 걸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 너무 힘들어.”
엉엉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유도 분만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진통 끝에 아이를 출산했다.
탯줄을 자르고 이틀 후 남편은 다시 헝가리로 떠났고,몸조리와 아이 예방 접종을 끝낼 때까지 6개월간 친정에서 지내다 아이와 둘이 헬싱키를 경유 해 헝가리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경유지인 헬싱키 입국장.
여권과 입국 신청서를 받아 든 직원이 물었다.
“헝가리에 왜 가는 겁니까?”
“남편을 만나러 가요.”
“어디서 머무를 예정이죠?”
“남편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집에 함께 머무를 겁니다.”
“왜 리턴 티켓이 없죠? 당신은 비자도 없는데?”
“헝가리에서 가족 비자를 발급받을 예정입니다.”
“남편 네임 카드 가지고 있나요?”
“아니요. 대신 남편 회사 전화번호는 있어요.”
“음......”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던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전화를 안 받네요. 잠깐 따라와야 할 것 같아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관광으로만 다녔지 비자 문제로 입국 심사가 거절될 수도 있다는 건 전혀 예상 못 한 일. 그러니 리턴 티켓이나 네임 카드를 챙기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어디로 따라가야 하지?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도무지 방법이 없어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국제 미아가 되게 생겼어요. 유창한 영어 실력이 아니라, 말도 잘 안 통하고, 등에 업힌 아이는 울고, 남편은 전화도 안 받고, 저 어떻게 해요? 지금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좀 여기 통과해서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일단 헝가리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아기 띠에 안겨 울고 있는 아이를 토닥이며 기도하던 그때, 문을 열고 나오려던 직원이 갑자기 멈추더니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기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 한 번 더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
“가세요.”
고민하던 그가 여권에 도장을 꽝꽝 찍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사대를 지나가며 고민 끝에 도장을 찍어준 직원에게, 위기의 순간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