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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16. 2021

2. 첫인상을 바꾸는 황금빛 밤

 헬싱키에서 2시간 반 정도 비행기를 타고 지금은 헝가리 대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리스트의 이름을 따 <페렌츠 리스트 국제공항>으로 바뀐 <페리헤기 공항>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몇 칸 되지 않는 변기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화장지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쾨쾨한 냄새와 지저분한 변기. 도무지 이용하고 싶지 않은 곳. 그냥 참고 밖으로 나와 출국장으로 향했다.

 

 "고생했지?"

 달려와 안아주는 남편에게 헬싱키에서의 힘들었던 감정을 토해내며 말했다.

 "나 국제 미아 될 뻔했어. 입국 심사 직원이 전화 여러 번 했는데 왜 안 받았어?"

 "업체 미팅 중이라 못 받았어. 그런데 거기서 전화는 왜?"

 "리턴 티켓은 없지, 관광 아니고 남편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불법 체류할까 싶어서 도장도 안 찍어주려고 그러더라고. 그러게 왜 편도로 끊었어? 왕복 오픈티켓 끊어서 나중에 연장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원망 섞인 말에 남편은 연신 미안하다며 짐을 받아 들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며 창밖을 바라본다.

 칙칙한 건물, 여기저기 부서져 떨어져 나간 방치된 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어랑은 좀 다른 모양의 글자들이 적힌 오래된 간판들도 보이고, 고흐 그림에서 자주 보던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다.


'우울한 일요일

내 시간은 헛되이 떠도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그림자들

헤일수 없이 수많은 하얀 꽃들과 함께 내가 머무네

검은 슬픔의 벤치가 당신을 가져갈 때까지

결코 그대를 깨우지 않으리…'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헝가리.

'글루미'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우울한 느낌이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너무 다른 것 같아.”

 “여긴 외곽이라 그래. 시내로 좀 나가면 다를 거야.”

 ‘달라 봤자지 뭐. 공항 화장실도 그렇고, 칙칙하고 우울한 건물들도 그렇고. 에휴.’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나도 눈을 감았다.


 한참을 달려 국회의사당에 다다를 때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눈 뜨고 야경 좀 봐봐! 부다페스트 야경이 유럽의 3대 야경 중에 하나야.”

 가이드라도 된 마냥 신나서 얘기하는 남편 목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와!”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두운 강변을 수놓는 노랗고 따뜻한 불빛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안녕! 아까 네가 본모습이 부다페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진짜는 바로 지금. 이 밤에 너와 만나는 나야.”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검푸른 하늘을 황금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노을과 함께 반짝반짝 빛을 내는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나도 부다페스트에 다시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이곳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일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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