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관통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처럼 부다페스트의 중심에는 두나(다뉴브)라는 큰 강이 흐른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로 나뉜다. 우리로 치면 강남과 강북 같은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두나 강 서편의 부더(buda)와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 지구는 유서 깊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마차시 성당, 겔레르트 언덕과 같은 곳들은 헝가리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장소다. 그리고 대부분 개인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집집마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어딜 가든 녹음이 푸르르다.
페스트 지구는 중세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 강변을 끼고 새로운 아파트들이 많이 생겨났고, 중심가에는 높은 빌딩과 쇼핑몰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야경의 한 축을 차지하는 아름다운 건물 국회의사당이 페스트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제학교들이 부다에 위치하고 있어서 특히 학령기의 아이를 둔 집들은 대부분 부다에 집을 구한다. 뭐 그런 정보에 크게 관심이 없던 우리 남편은 회사 가기 편한 페스트에 첫 집을 구했다.
우리의 첫 집은 Népfürdő utca에 있는 아파트 1층.
헝가리는 우리가 흔히 1층이라고 부르는 곳을 0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2층인 셈이다.
첫 집에 대한 기억은 '햇볕의 부재'다. 아파트 건물 자체가 일자가 아닌 디귿자의 조금 독특한 형태라 우리 집이 위치한 곳은 완전한 북향이었다. 한국 사람에게 집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남향 또는 남향을 끼고 있는 집을 고를 것이다. 북향을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을까?
해가 유난히 뜨거운 여름, 상대적으로 시원하다는 장점 외에 별다른 장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그곳에서 아침마다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로 반짝이는 햇볕이 가득 비치는 걸 보면서 왠지 모를 부러움에 잠겨야 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건강한 모유수유아 선발대회(우리 시절로 치면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3등을 차지할 만큼 우량하고 건강했던 아이가 북향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수시로 감기가 걸리고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햇볕을 못 봐서 애가 아픈 거 같아."
"햇볕이 그렇게 영향이 있나? 그럼 밖에 자주 데리고 나가서 좀 놀아."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면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들을 보고 울음을 터뜨려 아침마다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슈퍼에 다녀오며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를 돌아오는 게 매일의 일상. 문을 열고 다시 북향집에 들어가면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쓸쓸한 어두움.
추운 겨울 성냥팔이 소녀가 바라보던 창문 속 그 집. 유난히 따뜻해 보이는 그 집의 온기는 단지 물리적인 따뜻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햇살이 쏟아지는 맞은편 아파트의 베란다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건, 어쩌면 아침마다 친정집 거실을 가득 채우던 따스한 햇볕, 엄마가 끓여주신 구수한 된장찌개, 그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