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 가기 전 초보 주부였던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김치만 맛있으면 되는 김치찌개와 맛있는 된장만 있으면 어느 정도 맛이 나오는 된장찌개 정도. 가장 기본이라는 콩나물 국도 몇 번이나 망치고, 미역국도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요리 생초보였다.
헝가리에서는 한국 식당이 가까이에 없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한국 식당 음식값이 비싼 편이라 매번 가서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요리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나를 구해 준 것이 <진짜 기본 레시피> 요리책이다.
첫 시작은 책에 나온 소시지 야채볶음이다.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 음식 한 가지씩 만들어 뷔페 식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데 다들 어려운 종목들을 고르셔서 아이들 먹을 만한 소시지 볶음을 맡았다.
비엔나소시지에 예쁜 칼집을 내고, 당근도 어설픈 꽃 모양으로 잘라 모양을 내고 50인분의 소시지 야채 볶음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사실 소시지만 맛있으면 되는 요리니.
이후 행사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메뉴에 도전했다.
유람선을 빌려 돌잔치를 하는 친구를 위해 낙지볶음(냉동낙지가 너무 비싸 야채가 대부분이지만) 50인분을 만들기도 하고, 교회 창립 예배 때는 매운 등갈비 찜을 준비했다. 봄소풍 때는 다른 집사님 한 분과 골뱅이무침 50인분을 만들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칭찬해주셨다.
배추김치, 양배추 김치,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백김치, 열무김치 같은 김치들도 다 담가먹고, 족을 삶아 냉채족발까지 만들었으니 거의 장금이급으로 성장한 샘이다.
우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들, 한식 먹기 힘든 유학생들, 헝가리에 온 지 얼마 안 된 초보 가족들, 아이 키우느라 힘든 엄마들을 자주 집으로 초대했다.
초대라는 말이 사실 거창하지, 정성이 담긴 따뜻한 밥 한 끼 준비해서 나누고, 어려운 점은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시간들을 통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먹였던 것 같다. 손이 느려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더 행복했던 시간들.
처음 헝가리에 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나를 불러 먹이고 챙겨주셨던 집사님들에게 배운 대로, 그저 먹이고 챙겨주는 일을 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지고, 가정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 요리 솜씨도 점점 좋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 돌아오니,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모이는 것이 힘들어지긴 했지만)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일이 거의 없다. 워낙에 갈만한 식당들도 많고, 집에서 복작이며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니 서로 부담스러워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묵을 집에서 쑤어 먹을 필요도 없고, 치킨이나 족발도 배달시키면 금세 집으로 가져다주는 편한 나라. 그래서, 부끄럽지만 내 요리 실력은 다시 10년 전으로 회귀한 느낌이다.
며칠 전 소꼬리와 사골을 한 팩씩 구입해 꼬리곰탕을 끓였다. 헝가리에서 자주 해주던 음식이라 아이가 워낙에 좋아하기도 하고, 날이 추워지니 뜨끈한 국물이 최고라 하루 종일 불을 조절해가며 사골을 우려냈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그 음식에 포함되어 있어, 먹는 사람은 그 정성을 맛보는 것이니까. 그 대상이 가족이든 이웃이든.
확진자가 점점 많아지니 이제 밖에 나가 식사하기가 또 어려워진 상황. 고이 접어 모셔둔 앞치마를 꺼내고, <진짜 기본 레시피> 책도 다시 꺼내 가족을 위한 맛있는 요리들을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