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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an 04. 2022

20. 수상한 사우나

나만 조선시대 마인드야?

크리스마스 시즌 반짝이는 조명과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볼거리 많은 부다페스트,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문을 여는 상점이 별로 없어 헝가리 주변 나라나 부다페스트 근교에 있는 온천 호텔로 여행을 가는데 특별히 동갑내기 친구네 가족과 온천으로 유명한 헝가리의 소도시 사르바르에 있는 스피릿 터멀(치료 효과가 있는 온천의 경우 사용함) 호텔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스피릿 터멀 호텔은 5성 호텔이라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헝가리 사람들보다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체크인 후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내려갔는데 온천 옆에 사우나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아빠들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친구와 사우나에 들어가려고 보니 입구에 수영복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어 문의하니 수영복 재질이 합성이기 때문에 사우나 시설에서 착용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커다란 기저귀 천 하나씩을 나눠주고는 수영복을 벗고 들어가란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 초콜릿을 바르는 사우나와 꿀을 바르는 사우나가 궁금해서 이왕 온 거 한 번씩 체험해 보자고 기저귀 천을 원피스처럼 돌돌 둘러 감고는 사우나로 들어갔다. 어머나! 사우나에 들어가니 남녀가 함께하는 사우나다. 거기에 기저귀 천을 감고 온 사람은 오직 우리 둘뿐. 다들 서로가 벗은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건 우리 둘, 기저귀 천을 감고 들어온 우리가 오히려 신기해 보였는지 들어가는 칸마다 우리에게 시선이 꽂혔다.

초콜릿 방을 이용하러 들어가니 몸에 바르려면 기저귀 천을 벗으라는 관계자의 말에 일단 후퇴. 나머지 방들도 몸에 바르는 것들을 체험하려면 벗고 들어가야 해서 건식 사우나로 들어갔다.

 누군가 나무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더니 나무 국자로 떠서 벌겋게 달아오른 돌들 위에 휙 뿌린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물이 수증기로 바뀌니 사우나 내부 온도가 확 올라가는 느낌이다. 아로마 오일 때문인지 은은한 허브향이 몸을 감싸니 기분은 좋다.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친구와 서로 쳐다보며 동시에 말했다.

 “절대 아빠들이랑은 같이 오지 말자. 무조건 따로.”

 그 이후로 슬로베니아에서도, 크로아티아에서도 의도치 않게 남녀가 벗고 이용하는  사우나에 종종 가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처음보다는 좀 편안했으나 맨몸으로 들어가 즐기지는 못했다. 한국인 가족과 함께 가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처럼 자유인이 되어 편안하게 사우나를 즐겼을까? 아니면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적 사고방식에 묶여 여전히 이방인으로 그곳을 낯설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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