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Apr 04. 2023

[시가 있는 에세이] 콩나물 같은 인생

콩나물 같은 인생

- by miya



내 안에 나를 가두고

웅크린 채

안전한 삶을 꿈꿨었지

몰랐어.

스치듯 지나간

잠깐의 만남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줄.

네 안에 잠겨

딱딱했던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어

타는 목마름으로

사랑을 갈구하며

고개를 들어

너와 입 맞출 때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껴




헝가리에서는 콩나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식품점이나 중국 마트에서 콩나물을 파는데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래서 한국에 들렀을 때 콩나물시루를 사가지고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3시간에서 4시간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하는데 잠자기 전 물 주기를 잊거나, 외출하느라 물 주는 시간을 놓치는 경우 콩나물이 못생기게 자랐다. 잔뿌리가 너무 많아지고 줄기가 휘어져서 자라 심미적으로 보기 좋지 않았다. 다듬기도 힘들고.

누군가 육아는 장비 빨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콩나물 기르기도 장비 빨이다. 내가 산 시루는 그야말로 밑에 구멍이 뚫린 검은색 플라스틱 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에 나오는 콩나물시루는 자동으로 시간마다 물을 뿌려주는 기능이 있다. 진작 그런 시루를 알았더라면, 시간 맞춰 물 줘야 하는데 물 주는 시간을 놓쳐서 집 밖에 약속 있어 나갔다가 발을 동동 구르진 않았을 텐데..​

사실 처음 콩나물을 키를 땐 물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걸 모르고 잘 자라려면 물에 푹 담가둬야 한다고 생각해서 콩을 썩혀 버리기도 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모르면 배워야 한다. 네이버에 '콩나물 기르기'를 검색해 보고, 처음에 콩을 불릴 때는 물에 좀 담가두지만 이후에는 위에서 물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스쳐 지나가는 물인데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는 콩나물이 신기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Many drops make a flood.)는 속담이 콩나물 키울 때 쓰기 좋은 속담임을 새삼 깨달았다.

5일에서 7일 정도 매일 물을 부어주면 그 스쳐가는 물로 키를 쑥 키워 바닥에 깔려 있던 콩들이 시루 위로 빼꼼 얼굴을 내민다.

잘 자란 콩나물은

나물도 무치고,

볶음도 하고,

국도 끓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기도.

한국에선 시장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본 중에 기본 식재료인데, 헝가리에선 귀한 몸이었던 콩나물.

물 주기 신경 쓰느라 손은 좀 많이 가지만

부지런히 물을 주는 만큼

이쁘게 자라주는 콩나물을 보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던 그때가 문득 기억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때때로 결핍을 통해

만족을 배운다.

부족함 중에 채워지는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있다.

물이 흥건히 채워진 용기 안에서는 오히려 썩어버리는 콩나물처럼, 모든 것이 넉넉한 환경이 마냥 완벽한 환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치듯 지나가는 그 찰나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며 누리는 삶.

물이 부어지는 그 시간을 갈망하며,

한 걸음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삶.

세상이라는 콩나물시루 안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갈망하며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믿음의 키가 자라 시루 밖으로

얼굴을 쑥 내밀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콩나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빨리빨리 vs 천천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