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운진항에서 배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 있습니다. 미리 허가를 받지 않으면 딱 2시간만 머물 수 있는 섬 가파도입니다. 바로 옆 마라도의 이름에 가려 오랜 시간 관광지로 각광받지 못했지만, 주민들의 노력으로 보리밭을 가꾸고 제주올레 10-1코스로 지정되어 이제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섬이죠. 관광지로 개발되어 조금은 번잡한 느낌을 주는 마라도와는 달리 주민들 자체가 개발을 반대하고, 섬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관광객의 수도 조절하여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가파도 여행을 하면서 소란스러운 때는 딱 2번 배를 타고 내릴 때입니다.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시간. 모두가 정신없이 내리고 정신없이 올라탑니다. 낚시를 하거나 이런저런 구경을 하러 오는 분도 많겠지만, 저와 제 친구는 올레길을 걸으러왔으니 바로 올레길을 걷습니다. 상동마을 할망당을 보고 사람들이 차츰차츰 없어질 때쯤 해안을 따라 다양한 기암괴석이 나타납니다. 가파도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큰 왕돌과 고냉이돌을 보다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코발트 블루빛 바다에서 마라도가 이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남단으로 유명한 자그마한 섬을 향해 한 번 씩 웃어주고 나니 풀숲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양이 친구에게 “치~~즈”를 외치며 사진 한 컷 찍어주고 야트막한 언덕 위쪽으로 올라갑니다.
가파도는 섬이 최고 높이가 20.5m밖에 되지 않아 그런지 언덕 오르는데 숨 하나 차지 않았지만, 높은 곳에 오르니 노력에 비해 보여주는 경관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가파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청보리밭입니다. 원래 보리를 키우지는 않았지만, 관광 자원으로 보리밭을 개발했죠. 거의 평지에 가까운 섬에서 보리가 드넓게 펼쳐진 밭과 바로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어우러진 장면은 환상적이라고 합니다. 저는 겨울에 가서 보리가 자라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보리밭에 자란 자그마한 풀들의 연두빛이 보리밭을 채워 보리가 다 자랐을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가파보건지소와 가파초등학교, 가파 전화국까지 지나면 정말 넓은 보리밭이 등장합니다. 그 너머로는 제주도가 보이죠. 제주도에 산이라 이름 붙은 오름은 총 7가지랍니다.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 군산, 고근산, 단산, 영주산이죠. 이중 영주산을 제외한 모든 산을 가파도에서 볼 수 있다고하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쨌든 가파도 앞으로 제주가 펼쳐지는 장중한 풍경을 앞에 두고 보리밭 사잇길을 친구와 함께 걸으니 무척 평화로워지고 마음의 답답함이 풀리면서 힐링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정말 여유롭다.”
친구가 이렇게 답변하더군요.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어떻게 여유롭냐. 숙소 가서 히터 틀어두고 유튜브 보는 게 여유지.”
바람이 정말 세서 꽤 추웠던 데다 딱히 친구의 말에 대해 대꾸할 게 없어서 당시에는 말을 더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건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제가 생각하는 여유가 무척 다르구나.
평화롭고 한적하지만, 바람은 세차게 부는 올레길을 다 돌고 가파치안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쉬엄쉬엄 걸었는데도 1시간, 빠르게 걷지 않고 가파도의 모든 것들을 다 담으며 천천히 걷는 데도 걷는데도 시간이 남아 무척 행복해졌습니다. 발길을 돌려 가파도 벽화거리를 지나 상동포구에 도착했는데도 30분 정도가 남았었습니다. 무척 여유롭더군요. 무엇을 더 봐야 한다든가 시간적으로 부족하든가 하는 압박감이 없었기에 느껴지는 여유로움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을 간직한 채 가파도를 나오는 배 안에서 고민해보았습니다. 다른 길들이 아닌 가파도에서 이런 ‘여유로움’이 느껴졌는지를.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올레길을 되돌아보는 글을 쓰는 지금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와 제 친구의 올레길 완주는 무척 목적지향적이었습니다. 전투적이었죠. 다만, 친구와 저의 목적에는 큰 차이가 있어 친구는 효율적으로 완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저는 효율과 비효율 따질 것 없이 올레길을 지나며 보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가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완주 자체가 목적인 친구는 하루 한 코스 완주를 끝내고 숙소에서 쉬는 시간이 여유였던 것이고 제게는 올레길을 지나며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갈 압박감이 없는 순간이 여유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센 바람에 대해서 친구는 완주를 방해하는 장애물에 가깝다고 생각한 반면, 저는 노력하지 않아도 제 감각에 담아지는 무언가이니 제 여유를 만끽하는 장애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여행길에서도 어떤 목적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여유’이고 무엇이 ‘쉼’인지가 달라집니다. 여행보다 더 다양한 인생에서는 어떠할까요? 삶에서 어떤 목적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굳이 목적을 정해두지 않아도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여유와 쉼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업으로 선택하면 무척 하기 싫어진다.’란 말이 있습니다. 삶이란 복잡하고 긴 여행에서 한 가지 ‘업’, 그러니까 ‘일’은 가장 많이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일이라는 것은 삶의 목적, 내 삶의 전반적인 형태를 만들겠죠. 이런 일을 통해 목적을 성취하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만, 사람은 신이나 기계가 아니기에 가끔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올레길의 절반쯤 왔던 가파도에서 저는 이미 똑같은 여행의 방식에 꽤 지쳐있었습니다. 가파도의 자연과 풍경을 통해 계속 추구해온 여행의 방식을 버린 순간 자연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제 자신이 여유를 찾았음을 느낀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 여러 의미로 정의될 수 있지만, 여러 의미 중 죽음 전까지 삶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는 말에 무척 동의합니다. 죽음이라는 끝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걸어가겠죠. 분명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길을 찾고 만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의미 있고 좋겠지만, 그런 일만 계속하다 보면 가끔은 나 자신도 모르게 지칠 겁니다. 만약 그 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잠시 길을 만들던 삽을 놓아두고, 길을 찾던 지도를 놓아두고 길옆의 풀과 꽃을 보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여유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종종 갖길 바라며 나태주 시인의 시 <사는 일> 일부로 글을 매듭짓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