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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 우도

by baekja

올레길을 조금이라도 같이 걸었던 친구는 총 3명입니다. 친구 A는 처음부터 몇 코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친구 B는 16코스부터 20코스와 추자도, 우도를 친구 D는 17코스부터 20코스와 추자도, 우도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체력과 관심사의 차이로 모두 같이 걸은 코스는 1-1인 우도 코스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중간에 저만 친구들과 헤어졌다가 종점 부근에서 다시 만나 같이 완주를 했습니다. 쨌든 처음과 끝을 같이 한 유일한 코스라 기억에 무척 남습니다.


우도를 가기로 한 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무척 인상적이었죠. 배는 당연히 떴고 성산에서 10시 25분경 출발한 배는 10시 40분 경 우리를 우도 천진항에 내려주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배에서 내린 사람이 바글바글한 천진항을 벗어나 바로 올레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항구에서 빌려주는 세 바퀴 오토바이가 자꾸 저희 옆을 지나가 무척 부산스러웠지만, 조금 항구에서 멀어지니 넓은 길을 네 명이서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 한적해졌습니다.


20210127_103446.jpg 배 위에서 바라본 우도


천진리 마을회관을 지나자 돌담밭을 사이에 두고 지미봉이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졌습니다. 날씨도 좋고 길에 사람도 지나가지 않아서 신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죠.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이가 없는지 확인한 후 바로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어찌나 재밌고 두근거리던지요. 잃어버린 동심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드러눕는 저를 보고 제정신이 아니라면서 깔깔 웃고는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습니다. 이때 찍은 사진이 올레길에서 찍은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InkedKakaoTalk_20211123_200155975_07_LI.jpg 지미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친구가 만들어준 편집본


홍조단괴 해빈에 도착하기 직전에 민가 사이에서 개 두 마리가 튀어나와 도망가 길래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개들 뒤로 아이 두 명이 쫓아와 헐떡이지만 예의바르게 개들이 어디 갔는지 물었습니다. 친절하게 개들의 위치를 알려주자 열심히 뛰어가 개들을 잡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습니다. 우리도 어렸을 땐 저렇게 귀여웠을 거라고 말하며 개를 잡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았습니다.


20210127_111137.jpg 급하게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


아름다운 홍조단괴 해빈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신기한 고양이와 함께 지미봉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해빈을 빠져나왔습니다. 길을 가는데 친구 D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에 보내고 잠시 쉬는데 우도해녀식당이 보였습니다. 제주도 와서 해물칼국수 한 번 먹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친구가 돌아온 뒤 다 같이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보말과 전복 등을 넣은 해물칼국수는 무척 맛있었고, 칼국수를 다 먹고 먹은 국물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니 무척 배가 불렀습니다. 근데 다 먹고 나니 배가 조금 이상하더군요. 별 일 없겠지 생각하고 그냥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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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맛있는 해물칼국수 오른쪽은 새침한 고양이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할 즈음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바로 화장실을 썼습니다. 보말이 제 위장과 잘 맞지 않았는지 네 명 중 저만 크게 배탈이 나서 30분 동안 변기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은 후에야 화장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카페에서 기르는 라쿤이 무척 귀여워서 기분은 좋았지만, 배가 아파 찜찜했습니다.


Inked20210127_132628_LI.jpg 귀여운 라쿤


카페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무척 아파 와서 하고수동 해수욕장 공용 화장실에 갔습니다. 한 30분쯤 앉아 있으니 친구들이 살아 있냐고 카톡을 보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웃겼습니다. 잠시 변기에서 빠져나와 앞으로도 좀 더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먼저 가라고 친구들을 보냈습니다. 친구들은 제 가방을 들고 가주었고, 저는 한 시간 더 변기에 앉아 있은 후에야 변기를 빠져나와 남은 올레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InkedKakaoTalk_20211123_200155975_02_LI.jpg 배는 아프지만, 사진은 참을 수 없지


친구들과 저는 천진항 근처의 농로사거리 근처에서 합류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당시 얼마 남지 않은 오후 4시 30분 배를 뛰기 위해 다같이 뛰었던 순간은 마치 청춘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나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배는 아프고 숨은 헐떡이는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마 멀리서 저와 제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거친 스케치로 남기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210127_162348.jpg 친구들과 만나 천진항 가는 길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다 같이 함께했던 20코스 초반부, 저와 긴 시간을 같이 걸으며 제주올레 완주를 눈앞에 둔 친구 A가 물었습니다.


“어떤 코스가 가장 좋았어?”

저는 잠시 고민하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코스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달랐지만, 모두 함께했던 우도 1-1코스가 가장 좋았어.”


그렇게 답하고 우도 여행을 혼자 기억 속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환상적인 풍경 아래서 누구나 동의할 만한 즐거운 추억들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배탈이 나서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어야 했던 상황은 솔직히 누구나 썩 좋은 추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배가 아픈 저를 대신해서 짐을 들어주고, 제가 합류할 때 농로에서 저를 웃으며 저를 기다려주며, 다 같이 성산포행 배를 향해 힘차게 뛰었던 순간을 생각한다면 배가 아팠던 것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KakaoTalk_20211123_200155975_08.jpg 우도를 다 구경하고 성산포에서 내린 후 친구 D가 찍어준 친구 B와 저, 친구 A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 그건 서로 다른 목적과 삶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똑같은 하나의 길을 걸어감을 의미합니다. 그간 걸어온 길이 똑같을 수 없기에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불편함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배탈이 난 것처럼 자신이 길에서 미끄러질 때 옆에 있는 누군가가 위로해주고, 일어서는 것을 도와준다면 그 갈등과 불편함마저 사르르 녹아내리리라 생각합니다. 혼자 길을 걷는 동안 볼 수 없던 것들을 같이 걸으면서 볼 수도 있겠죠. 서로 다른 가치관은 갈등이 아닌 다양함을 빚어내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풍경을 보여줄 겁니다.


친구들은 제 여행을 답사라고 표현합니다. 비석의 글귀 하나, 표지판의 설명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읽어야 하는 제 여행의 성향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여행도 분명히 즐겁고 행복했지만, 제가 가장 좋았던 코스로 1-1코스를 골랐던 이유는 제가 늘 경험해왔던 여행을 벗어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여행하며 겪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여행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새롭고 훨씬 즐겁게 변할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알기 쉽지 않은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었던 2021년 1월 27일 우도에서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InkedKakaoTalk_20211123_200155975_12_LI.jpg 20코스 시작점 김녕서포구에서 찍은 단체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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