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료안지였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황홀한 금각 이후에 고요한 석정이 유명한 료안지라니. 무척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킨카쿠지 다음 료안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가까워서. 킨카쿠지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료안지에 갈 수 있습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적하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천천히 걷는데 길의 왼쪽에 대학을 하나 볼 수 있었습니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이었습니다. 대학생인 셋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가서 구경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암만봐도 민폐인 여행객 이상으로는 안 보일 것 같아 대학 내부 구경은 포기했습니다.
리쓰메이칸 대학을 얼마 지나지 않아 료안지가 나타났습니다. 료안지의 첫인상은 그리 크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명성에 비해서는 조금 작은 느낌이 들었지만, 묘신지(妙心寺)파의 말사인 료안지의 지위나 고요한 석정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가 맞지 않나 싶었습니다. 료안지에 들어가서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석정이 있는 방장이 아니라 연못인 교요지(鏡容池)가 있습니다. ‘거울과 얼굴을 비춰보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원앙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넓고 아름다운 연못입니다. 돌과 자갈밖에 없는 유명한 석정보다 친구들은 이곳이 더 좋았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교요지는 료안지가 지어지기 전인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료안지가 지어지기 전부터 이미 이 터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료안지의 터에는 에이칸 원년(983년)에 엔유(員融) 천황의 발원에 의해 건립된 엔유지(員融寺)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엔유 천황은 카잔(花山) 천황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말년을 엔유지에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번창했던 엔유지는 엔유 천황의 사망 후 사세가 기울어 후지와라노 사레요시(籐原實態)가 이곳을 물려받아 도쿠다이지(德大寺)라는 절과 별장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이렇게 절을 거쳐 별장으로 운영되던 엔유지의 옛 터는 관령(管領)을 지낸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의 손에 의해 1450년 료안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칸레이는 쇼군을 가장 측근에서 보좌하던 자리로 지위로는 쇼군의 바로 아래였습니다. 하지만, 종종 쇼군의 권력이 약해지면 천황의 섭정, 관백처럼 쇼군 이상의 실권을 가지고 나라를 좌지우지하기도 했습니다. 관령은 세습 직책이어서 권력이 강한 호소카와(細川), 시바(斯波), 하타케야마(畠山)의 세 가문만 돌아가면서 맡았습니다. 이 가문을 일본사에서 함께 엮어 ‘3관령’이라고 부릅니다.
료안지가 창건되고 17년이 지난 1467년 교토를 불바다로 만든 오닌의 난에 의해 료안지는 불에 탑니다. 차기 쇼군이 누가 될지를 두고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어 10년 동안 싸운 이 난에서 호소카와 가쓰모토는 동군의 대장이었습니다. 난은 동군과 서군의 대장이 차례로 죽으면서 끝났고, 재만 남은 료안지의 재건은 가쓰모토의 아들이 마사모토(政元)가 합니다. 1488년 방장 건물이 재건되었고, 이때 석정이 조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자 미상의 정원인 석정의 작정가가 당시 주지인 도쿠호 젠게쓰(特芳禪傑)라는 설이 있는 것입니다. 이때 다시 지어진 방장은 1797년 화재로 소실되어 세이겐인(西源院)의 방장 건물을 옮겨다 놓은 것이 지금 료안지의 방장입니다.
료안지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으니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했다는 료안지 방장의 남쪽 정원인 석정을 구경할 시간입니다. 동서 25미터, 남북 10미터로 무척 넓은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 정원은 가레산스이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양의 이끼나 나무는 없고, 대부분의 자갈과 모래,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척 큰 규모의 석정이면서도 작은 석정들보다 훨씬 단순미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돌과 자갈만으로 이루어진 이 정원은 자칫하면 딱딱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지만, 정원을 둘러싼 너와지붕의 토벽이 편안함을 더해줍니다. 유채를 섞어 반죽해 만든 이 토담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유채 기름이 배어나와 사시사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고정된 돌의 직사각형에 자연과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정원을 구조를 살펴봤으니 이제 정원을 바라보며 명상을 할 시간입니다. 패기 넘치고 혈기 넘치는 20대 초반의 친구들과 저에게 이 정원을 통해 무엇을 느끼기는 무리였습니다. 친구들은 아예 연못이 더 좋았다는 평을 남겼고, 저는 연못보다는 석정이 좋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석정 앞 긴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며 마음의 차분함과 가라앉음을 만끽할 안목과 인생의 길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 정원에 가득 표현되었다는 선이 무엇인지 이미지를 그려낼 무언가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당시보다는 지금이 조금 더 정원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느낄 수 있겠지만, 확실하게 무언가를 느끼고 올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근데 이쯤 되면 무언가 의문 안 드시나요? 제가 계속 선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선의 이미지는 정확히 잡히지 않을 겁니다. 료안지까지 왔으니 이제는 ‘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라고 선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제가 이해한 바대로 선을 짧게나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선의 정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수행법.’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행법이 아니니 선이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깨달음은 단순히 말하면 ‘해탈(解脫)’입니다. 나 자신을 버리고 세계의 본질적인 법칙에 녹아들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내가 세계에서 생각하고, 인식하며, 욕구하는 모든 것은 세계의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공(空)한 것일 뿐이라는 깨닫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에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산은 그저 산이고 물은 물일 뿐 그 이상의 생각은 내가 세계 그 자체를 대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주관적 인식이 들어간 주관적 세계의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선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세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료안지의 석정의 돌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붙이고 상징성을 붙이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석정의 돌은 돌이고 자갈은 자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죠. 석정을 바라보는 자신의 주관적 마음을 없애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마음의 안정, 평화, 고요 등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석정을 보고 난 감상을 이야기할 때 그런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하지만, 선의 개념만을 생각하며 료안지의 석정을 너무 어렵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석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맑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정원이 가지고 있다는 선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죠. 료안지의 팜플릿에 있는 이 말이 아마 감상에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일 겁니다.
“이 독자적인 정원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찾아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래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空想(공상)이 더욱 넓게 펼쳐지게 되겠죠,”
이제 석정에서 벗어나 방장을 돌아가 방장의 북쪽 정원을 볼 시간입니다. 북정(北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동전 모양의 쓰쿠바이(蹲踞, 신성한 장소의 입구에서 제공되는 세면대)입니다. 쓰쿠바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습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안다는 선의 정신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 말의 한자에 모두 사각형이 쓰임에 착안해 쓰쿠바이의 네모난 구멍을 가운데에 두고 나머지 획들을 주변에 배치한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북정을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 교요지의 반대편을 둘러보면 료안지의 답사는 끝입니다. 료안지는 무척 신기한 절입니다. 킨카쿠지가 처음 봤을 때도 그 화려함으로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그 화려한 이미지로 제게 기억되고 있는 반면에 료안지는 당시에는 이게 뭔가 싶었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아 료안지만 생각하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선을 표현했다는 그 무수한 사찰들의 정원들 중 제게 고요함으로 지금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는 절은 료안지, 단 하나입니다. 만약 료안지에 가신다면 석정 앞에 앉아 번뇌를 잊고 모든 복잡한 것들이 단순해지며 가라앉는 그 느낌을 받아보기를 바랍니다.
肘白き僧のかり寢や宵の春
흰 팔꿈치 괴고
승려가 졸고 있네
봄날 저녁
-요사 부손(与謝蕪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