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로 가는 문, 그리고 창경궁으로 오는 문

홍화문(弘化門), 옥천교(玉川橋)

by baekja

향나무를 보고 빠져나오면 다시 회화나무들이 보입니다. 창덕궁의 다음 여행지인 창경궁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다시 후원의 입구로 향해야 합니다. 금천교를 건너고, 진선문과 숙장문(肅章門)을 지난 다음, 후원 입구에 다시 도착하면 그 오른쪽에 문이 하나 있습니다. 창경궁으로 향하는 문이죠. 그곳을 지나 창경궁으로 들어섭니다. 창경궁으로 들어오면 통명전과 양화당이 보입니다. 하지만, 궁궐 관람은 여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정문부터 시작해야죠.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면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으로 향합니다.


20220629_132936.jpg


홍화문 북쪽행각에 난 문인 광덕문(光德門)을 지나 홍화문과 명정문(明政門) 사이의 금천(禁川) 구역이 드러납니다. 금천 구역에서 눈을 살짝 돌려 홍화문의 바깥쪽을 보면 서울대학교 암병원이 바로 보입니다. 대학로로 유명한 혜화 지역이죠. 친구 한 명이 이 근처를 살아 종종 이 근처를 방문할 일이 있습니다. 삼청동 쪽에서 미술 전시회를 보고 친구네를 갈 때면 돈화문으로 들어와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들을 보며 홍화문으로 나갈 때가 꽤 있었습니다. 만 24세가 넘은 지금은 무료가 아닌지라 힘든 방법이지만, 만 24세 이전까지는 그런 방식으로 삼청동에서 혜화로 넘어가고는 했습니다. 시끄럽고 번잡한 도시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과거로 돌아간 듯 천천히 고궁을 거닐다 다시 현대의 도시에 도착하면 시간을 건너뛰며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홍화문 앞에 바로 서울대학교 암병원이 있다 보니 홍화문 앞의 공간은 무척 협소합니다. 홍화문의 월대는 1909년 창경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땅 속에 묻힌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홍화문의 전면부를 보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대학교 암병원 앞에서 보아야합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암병원 옥상정원에서는 창경궁의 전체 구조를 볼 수 있죠. 한 번 올라가 창경궁의 야경을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현대의 조명과 고풍스러운 과거의 궁궐이 조화를 이룬 창경궁의 야경은 묘한 느낌을 주죠.


20220629_133405.jpg


가만히 이렇게 홍화문을 쳐다보고 있으면 방향감각이 좋으신 분들은 뭔가 어색함을 느낄 법도 합니다. 왜냐하면 창경궁은 이례적으로 정문과 정전이 전부 동쪽을 보고 있는 동향 궁궐이기 때문이죠. 응봉의 지세에 맞추어 그렇게 지은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창경궁은 세종이 즉위년(1418)에 상왕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지은 데서 시작합니다. 이 수강궁은 오래 쓰이지 않았으나 이후 성종 때 대비가 3명이 되면서 이들을 모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성종 15년(1484) 수강궁 터에 창경궁을 준공합니다. 이후로도 대비들이 종종 머물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광해군 8년(1616)에 와서 창경궁의 전각이 중건되었고,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내전과 전각이 많이 불에 타 인조 11년(1633)에 다시 중건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대비들과 후궁들이 머물며 계속 소실과 중건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창경궁은 계속 명맥을 유지하죠. 조선시대 때 창경궁을 이토록 유지해야 했던 이유는 효종 6년(1655)의 실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이 듣건대, 예전에 우리 성종 대왕(成宗大王)이 창경궁(昌慶宮)을 수강궁(壽康宮)의 터에 세워 정희(貞熹)·인수(仁粹)·안순(安順) 세 대비(大妃)를 여기에 모시고, 명절이나 또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는 때에는 문안한 뒤 이어서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뭇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다 하니, 대개 창경궁은 대비를 위해서 세운 것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1백 60여 년이 되었습니다. (…)

(…)예로부터 태후가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대내(大內)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조(東朝)라고 말하였습니다. 창경궁이 동쪽에 있는 것도 또한 이런 까닭입니다. (…)”


대동법으로 유명한 김육이 효종에게 올린 상소입니다. 대비를 모시는 곳이기에 꼭 동쪽에 있어야 하고 이에 맞추어 지세를 따라 짓다 보니 궁궐이 동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경궁이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한 시대 법궁의 지위를 지녔다면 절대 동향으로 지을 수 없었겠지만, 그 쓰임새가 대비들을 모시는 곳이다 보니 동향으로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성대한 경사’가 있는 창경궁을 본격적으로 관람할 차례입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홍화문이죠. 홍화문은 그 형태를 그대로 갖춘 가장 오래된 궁궐의 정문입니다. 중건된 것은 광해군 8년(1616)으로 돈화문의 광해군 3년(1611)보다는 느리지만, 돈화문은 영조 20년(1744)년에 개수를 하여 그대로 가장 오래된 것은 홍화문입니다. 빛바랜 단청에서부터 오랜 시간 그대로 버텨온 세월을 가늠할 수 있죠. 홍화문의 빛바랜 단청에 담긴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홍화문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조화를 넓힌다.’ 혹은 ‘덕화를 넓힌다.’는 뜻을 가진 홍화문은 임금들의 덕이 백성들과 맞닿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영조 25년(1749) 영조와 사도세자는 백성들이 힘겹게 사는 모습을 살펴보고 홍화문 누각에 올라 백성들에게 직접 깔을 나누어주는 사미(賜米) 행사를 벌였습니다. 노인이 쌀 담을 자루도 마련하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해 나타나자 쌀 가마니를 주고 사람을 시켜 쌀을 지고 가도록 하기도 했죠. 정조는 정조 19년(1795)에 똑같이 임문휼민(臨門恤民, 문에 임하여 백성을 구휼) 행사를 벌여 쌀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 광경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중 <홍화문사미도(弘化門賜米圖)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홍화문 안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먼저 북쪽을 보면 행각과 함께 자그마한 문이 있습니다. 광덕문이라 불리는 저 문은 정전인 명정전에서 왕들이 춘당대로 향할 때 사용하던 문이었습니다. 광덕문 옆에는 물품보관소가 있고, 옆에는 평상이 하나가 있습니다. 평상에는 늘 어르신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거나 한숨 낮잠을 주무시고 계시죠. 날이 좋으면 고양이들이 평상 밑에 들어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20220629_133639.jpg


평상이 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금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궁궐이라면 꼭 갖추고 있는 금천은 창경궁에서도 빠지지 않죠. 모든 금천에 나무들이 심겨져 봄이 되면 아름답지만, 저는 창경궁의 금천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금천이 있는 구역이 넓은 경복궁이나 창덕궁보다 좁아 매화, 앵두, 오얏 등이 만발하는 봄이면 꽃들이 아예 금천을 뒤덮어 버리기 때문이죠. 좁기에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함과 아늑함, 그리고 그를 가득 메우는 꽃들의 화려함은 창경궁의 봄을 무척이나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래서 창경궁의 금천교에는 옥천교(玉川橋)라는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20220629_133650.jpg


봄은 아니어서 화려하지는 않으나 무성한 푸른 잎들을 보며 창경궁의 금천에서 편안함을 좀 느끼고 나면 이제 나른함이 몰려옵니다. 그 나른함이 몸을 지배하기 전에 슬슬 창경궁의 곳곳을 여행하야겠지요. 시작은 금천 너머 바로 보이는 명정문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