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이 삼킨 모던보이 이효석

평창 봉평

by baekja

대한민국에서 ‘메밀’하면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평창 봉평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수능 공부를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읽어봤을 만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바로 봉평이기 때문이죠. ≪메밀꽃 필 무렵≫에서 느껴지는 향토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누구나 메밀꽃 가득 핀 메밀밭을 걸어보는 상상을 하게 만들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中


이 구절을 읽어보고 어느 누가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한껏 기대에 부푼 채로 원주에서 장평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평창은 원주의 바로 옆이고 평창 IC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은 평창 터미널이 아니라 장평터미널입니다. 이 덕분에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원주에서 장평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장평에서 평창가는 버스가 별로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도착하니 웬걸 한 시간에 한 대씩은 거의 꼬박꼬박 있더군요. 참으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장평에서 봉평까지는 버스로 10분이 걸립니다. 다만, 종종 이곳저곳을 경유하여 가는 버스가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10분 거리가 40분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창역을 거쳐 가는 버스라 20분 정도 걸렸습니다(장평 터미널에서 평창역까지 10분이 채 안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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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장평터미널, 오른쪽: 봉평가는 버스 시간표


장평에서 봉평까지 가는 길은 낭만적인 시골길이 아니라 편안한 포장도로였습니다. 얼마나 잘 닦여 있는지 제가 다 놀랐습니다. 그렇게 좋은 포장도로를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치고는 꽤 발달한 곳이 나옵니다. 봉평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 정말 자그마한 향토적 느낌이 물씬 나는 시골 마을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발달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내려서 봉평장 쪽으로 향하니 이미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자 ‘아, 여기 어느 정도는 발달할 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20230916_115759.jpg 봉평면의 모습


이날 사람이 많은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메밀꽃 피는 시기의 토요일이었고, 효석문화제 기간이었습니다. 5일장을 유지하던 봉평장도 바뀐 세상과 관광객에 맞추어 주말장을 열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습니다. 장에서 파는 것은 다양했지만, 메밀의 고장(?)답게 메밀전병, 메밀막국수, 메밀닭강정, 메밀짬뽕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상설로 열리는 상가와 그 사이에 열린 주말장 구역을 벗어나자 길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5일장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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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구역부터는 본격적인 문화제 구역이었습니다. 각종 특산물부터 먹을거리를 팔고, 축제를 안내하는 안내 구역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제 부스들은 가산 공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가산(可山)은 이효석의 호로 이효석 작가의 상과 비석 또한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가산 공원에는 아예 효석문화제 행사장이라는 돌로 된 표지가 있어 이곳이 효석문화제를 위해 늘 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축제 안내소에서는 메밀꽃 모양의 핀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메밀꽃 모양이 무척 예뻤습니다. 핀을 가방에 꽂고 부스를 빠져나오자 시계가 확 트이며 흥정천과 남안교가 드러났습니다. 남안교 밑에는 징검다리가 있어 저는 그곳으로 흥정천을 건너갔습니다. 징검다리를 조심조심 건너며 즐거워하는 제가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아 무척 즐거워졌습니다.


20230916_120915.jpg 흥정천과 징검다리


흥정천을 건너가자 본격적으로 관광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등산복을 입으신 중년분들이 끝도 없이 보였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향토색이 강한 축제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있는 축제다 보니 젊은 층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예 메밀꽃밭에서는 트로트를 틀어 놓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메밀밭의 분위기를 생각한 저는 이미 문학 작품 속의 분위기를 느끼는 건 망했다 싶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일단은 축제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메밀꽃밭에는 이곳저곳 포토존을 만들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는 이효석문학선양회에서 이효석 작품들을 엮어 책으로 팔고 있었는데 책에 통합 입장권까지 얹어주더군요. 가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무척 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사고 메밀꽃밭으로 들어가자 메밀꽃이 땅을 수놓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긴 녹색 줄기 위 소금을 뿌린 듯한 하얀 꽃들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메밀꽃 필 무렵에 이곳을 방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제가 끝난 뒤 평일에 방문할 수 있었다면 조용히 아름다운 꽃밭을 즐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뭐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이 지역경제에는 좋겠지만요. 아름다운 메밀꽃밭을 걸어서 도는 방법도 있지만, 나귀를 타고 한 바퀴를 돌거나 경운기가 이끄는 열차에 올라타 한 바퀴를 도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정말 말만 들어도 시골 내음 가득한 축제입니다. 무척 향토적인 축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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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밭에서 사진 몇 장을 건지고 ≪메밀꽃 필 무렵≫의 물레방아를 구현해 놓은 곳을 구경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내용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물레방아가 어떤 곳인지 아시겠지만, 음 뭐랄까 내용이 제법 적나라해서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즐겁다며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죠. 당연히 아이들은 근처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른들의 축제인가 싶었습니다. 하하하. 물레방아 옆에는 이효석 문학관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길이 있었고, 저는 그 길에 올랐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조그마한 산길이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가던 중 왼쪽에서 나타난 해바라기밭이었습니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고개를 전부 숙이고 있더군요. 해바라기 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효석 문학관 입구에 도착해서 통합권을 내밀고 이효석 문학비를 본 뒤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붉은 벽돌과 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이 인상적인 이효석 문학관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이효석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문학관 옆에 있는 퀴즈 코너에 가서 퀴즈부터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를 통해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였으며 모카커피를 아주 사랑했으며,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빵과 버터가 들어간 음식이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메밀꽃 필 무렵≫과 효석문화제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서양의 것들을 아주 사랑했던 작가와는 거리가 먼 한국의 향토적 분위기가 짙은 것들이 이효석 문학관 주변을 감싸고 있죠.


20230916_124723.jpg 이효석 문학관


사실 이전에 전공 수업을 들으며, ≪메밀꽃 필 무렵≫이 자극하는 고향의 향수는 사실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봉평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자신이 보았던 정경을 그려낸 것이지만, 그것에서 향수를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자신 기억 속의 배경 중 하나를 꺼내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넣은 것이죠.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와 고향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자연이었을 뿐입니다.


이를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이효석문학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효석 문학관 내에는 이효석이 살아있던 시기에 쓰인 각종 문학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효석의 삶을 잘 알 수 있게 전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효석의 삶을 전부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향토성 짙은 시골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봉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서울로 유학을 갔고, 생의 대부분을 평양에서 보냈습니다. 도시를 무척 사랑하는 모던보이였죠. 이효석 문학의 시작은 좌익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정식 회원은 아니었으나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동반자작가였던 그는 처음에는 좌익과 관련된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학에서 사상이 주류가 되는 것에 지쳐 심미주의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심미주의는 자연과 성(性) 그리고 사랑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해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엮여서 맺어지는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와의 사랑 이야기는 그가 추구한 미(美)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그가 살아온 삶만 추적해보아도 그가 좌익보다는 모더니즘과 심미주의 쪽에 가까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버터와 잼을 바른 빵에 우유와 수프를 아침으로 먹는 것을 선호했고, 퍼콜레이터로 커피를 끓여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집에서는 늘 쇼팽, 모차르트, 슈베르트를 틀어놓았고, 유럽 여배우들의 사진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 사진 옆에는 야마하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프랑스 영화로 대중적인 영화보다는 예술성이 높은 영화를 선호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꽃도 메밀꽃이 아니라 장미, 글라디올러스, 맨드라미였습니다. 그는 러시아로 여행을 다녀왔고, 늘 유럽으로 여행가기를 꿈꿨습니다. 몸은 늘 조선이라는 고향에 있었지만, 실향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이상향이었고, 적어도 그것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가 크리스마스에 꾸며 놓은 자신의 방이 그나마 그런 이상향에 가장 가깝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학관의 한쪽에는 메밀에 대해 소개하는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제법 큰데 메밀의 효능이나 메밀로 만드는 전세계 음식, 메밀의 생태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밀의 파종 시기는 1년에 두 번으로 봄에 한 번, 초가을에 한 번입니다. 수확을 파종한 후 1달 이내로 하기 때문에 파종한 후 꽃이 무척 빨리 피는 편입니다. 제가 본 메밀은 초가을에 파종한 것이겠죠. 짧은 시간만 볼 수 있는 꽃을 잔뜩 봤으니 참 운이 좋다 하겠습니다.


문학관 앞의 이효석 동상을 촬영하고 내려와 5분 정도 걸어 효석달빛언덕으로 향했습니다. 효석 달빛언덕에는 예쁜 정원 사이사이에 복원한 이효석 생가와 근대문학체험관, 이효석이 평양에서 살던 집을 재현해 둔 푸른집 등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근대문학체험관이었습니다. 이효석 문학관이 조금 오래되어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면 근대문학체험관은 최근에 지어져 조금 재밌게 이효석의 문학관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순수예술을 추구했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아 구인회를 창설한 그가 생각한 소설은 이랬습니다.


“소설의 목표는 다만 진실의 전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표현을 수단으로 궁극에 있어서는 미의식을 환기시켜 시의 경지에 도달함이 소설의 최고 표지요. 이상인 것이다.”

≪현대적 단편소설의 상모≫ 中


은유가 가득한 시의 경지가 목표였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 그가 표현했던 아름다운 자연은 미를 표현하는 은유였겠지요.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자연들을 유려한 문장력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들에는 벼가 익을 대로 익어서 숙였고, 욱신한 들깨 향기가 살에까지 배어들고 오랍뜰에는 마른 옥수수 이삭과 익은 고추송이와 콩꼬투리가 지천으로 널려진다.”

≪영서의 기억≫ 中


그저 가을이면 볼 수 있는 평범한 들판을 이렇게까지 표현하다니. 그의 표현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아름다운 표현에서 이곳에서 미의식까지 환기하는 것이 그가 추구했던 목표겠지요. 그의 문학을 평가하기에는 제 지식이 너무 얕으나 적어도 그가 추구했던 이러한 목표는 달성했다 생각합니다. 이후에는 당시 경성, 평양의 모습과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학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영상물을 보여주면서 근대문학체험관은 끝납니다. 이효석 작가의 하루를 재구성한 영상물과 ≪메밀꽃 필 무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을 영상관에서 틀어주고 있었는데 이효석 작가의 하루를 재구성한 것이 무척이나 감성적이어서 이효석 작가의 삶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30916_144154.jpg 근대문학체험관


근대문학체험관을 다 보고 끝으로 나오면 자갈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늑한 길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푸른집으로 이끕니다. 붉은 벽돌로 벽을 만들고 붉은 벽돌 기와로 지붕을 만든 푸른집은 붉은집으로 불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벽면을 따라 집을 완전히 감싸 안은 담쟁이덩굴이 이 집을 푸른집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푸른집 내부는 무척 예뻤는데 온갖 근대를 상징하는 기물로 가득했습니다. 축음기, 서양식 다기, 전화기, 매트릭스가 있는 침대 등.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모던함을 추구했던 모더니스트였단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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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집의 전경과 내부 모습들


아담하니 예쁜 푸른집을 벗어나면 뒤에 달 모형과 함께 포토존이 있습니다. 밤에 사진 찍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려오는데 문화제 기간이라 근대문학체험관 옥상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메밀꽃이 핀 달빛언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버스킹이라, 무척 즐거울 것 같아 듣기로 했습니다. 젊은 층이 많은 축제였으면 사람이 금방 모였겠지만, 그렇지는 않아 처음 관객은 저와 노부부, 이렇게 세 명이었습니다. 소프라노분이 디즈니의 노래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솔레미오 등을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만난 축제 프로그램 중 가장 ‘모던’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마 이효석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 프로그램을 가장 만족해하며 즐기고 있었겠죠. 저 또한 무척 만족해하며 메밀꽃과 음악이 어우러진 그 순간을 맘껏 즐겼습니다. 마무리는 재즈가수분이 해주셨는데 폰서트와 고양이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봉평면과 효석문화제와의 분위기와는 가장 멀지만, 이효석 작가의 분위기와는 가장 잘 맞는 노래를 듣고 나자 여행이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효석의 생가를 복원해놓은 곳을 짧게 구경하고, 큰길을 따라 문화제의 분위기를 느끼며 다시 흥정천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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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트로트가 들렸고, 메밀묵 무침에 막걸리 한 잔 걸치신 어르신들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세련되고 우아한 모던의 분위기는 전부 사라졌고, 흥겹고 정겨운 시골의 분위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모던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채워보려 한 노점 트럭에서 메밀라떼를 사 먹었습니다. 메밀라떼에서 메밀향은 잘 모르겠고, 커피향만 느껴졌습니다. 커피의 강한 향이 메밀향을 삼킨 것이죠. 그러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화제는 효석문화제라기보다는 ≪메밀꽃 필 무렵≫문화제에 가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이효석 작가의 분위기와 효석문화제의 분위기가 맞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이 작가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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