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작년 불국사를 방문할 때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한 곳의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동리·목월 문학관. ‘저런 게 다 있었네.’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남으면 방문하려 했지만, 가지 못했고 이번 여행에서야 가게 되었습니다. 자주 불국사와 석굴암을 오면서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해서 최근에 만들어진 건가 싶었는데 2006년에 만들어진 꽤 오래된 문학관이더군요. 머쓱했습니다.
동리·목월 문학관은 불국사 입구 바로 앞에 있습니다. 불국사 가는 버스가 곧 동리·목월 문학관 가는 버스란 뜻이죠. 그래서 가기도 무척 편한 편입니다. 다만, 불국사 앞 정류장에서 불국사 입구까지는 거리가 있어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와 기분이 좋았습니다. 종종 뒤에서 학교 이름을 달고 오는 관광버스는 지금이 수학여행 시기임을 알게 했습니다. 저 또한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방문했었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수학여행의 근본은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이죠. 하하. 설립 시기를 생각하면 동리·목월 문학관이 그때도 있었는데 전혀 몰랐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불국사 입구 길 건너편, 이끼 가득한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주차장과 함께 큰 주차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주차장 바로 뒤로 큰 한옥 모양의 문학관이 있습니다. 딱 경주에 있을 법한 문학관 모습이랄까요? 문학관 주변에는 저 말고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 고요함을 즐기며 문학관 안으로 향했습니다. 문학관의 오픈 시간에 딱 맞추어 간지라 제가 그 날의 첫 손님이더군요. 차분하게 구경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들어간 쪽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박목월 작가의 문학관이고 왼쪽은 김동리 작가의 문학관입니다. 저는 박목월 작가의 문학관부터 보기로 했습니다.
김동리 작가와 박목월 작가의 문학관이 경주에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두 작가 모두 경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박목월 작가는 1915년 경주의 모량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수필 <달과 고무신>에서 “40여 년 전, 경주는 달빛이 하얗게 비치는 골목길이 어린이들의 놀이터요, 풀이 우거진 봉황대나 잔디가 아름다운 왕릉이 어린이들의 생활 무대였다.”라고 말하며 어렸을 때의 경험이 서정성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역 유지이면서 개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신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1930년 그는 대구의 계성학교에 입학했고,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요를 쓰기 시작합니다. 유명한 동요 <얼룩 송아지>의 가사가 바로 박목월이 쓴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동요와 동시로만 만족할 수 없어 193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성인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잠시 작품 활동을 멈추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靑鹿集)≫을 발간하여 박목월의 대표작 <나그네>를 발표합니다.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운율과 향토성, 서정성이 확 와닿는 무척 자연 친화적인 시입니다. 구름과 같이 발걸음에 무상함을 담아 한 발짝씩 나아가는 나그네와 그 뒤를 따라오는 아름다운 밀밭과 노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근본적인 자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는 나오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념의 대립으로 인해 정신없던 시대에 이념과는 전혀 관련 없는 자연과 서정만을 담은 시가 나왔으니까요. 이제는 평범해 보일지 모르는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가 당시에는 새로움 그 자체였던 듯합니다. 다만, 작가는 이런 시에 한계점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봤을 법한 혹은 마음속에 담아둔 정경을 그려내기는 했지만, 이것은 자신이 직접 본 자연이 아니었고, 자신이 만들어낸 자연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이상의 자연에서 순수하고 맑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그만하고, 일상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날마다
生活의 막다른 골목 끝에 놓인
이 짤막한 층층계를 올라와서
샛까만 유리창에
수척한 얼굴을 만난다.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나의 어린 것들은
倭놈들이 남기고 간 다다미 방에서
날무처럼 포름쪽쪽 얼어있구나
<층층계> 中
*포름쪽쪽: 여럿이 한 줄로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어지는 모양
이제 시의 소재는 심상의 자연에서 일상으로 넘어옵니다. 그는 이제 현실의 무게를 체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이들이 보이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보입니다. 이상적인 세계의 아름다움이 아닌 현실의 어두움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옵니다. ‘아버지’라는 역할이 버겁게 느껴지고, 아이들이 비좁은 곳에서 얼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시인으로서의 길과 가장으로서의 길이 잘 양립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세월이 또 지났고, 시인의 길을 계속 걸어온 박목월은 다시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이제 그 내면에는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자신 또한 보입니다.
앉는 자리가 나의 자리다.
자갈밭이건 모래톱이건
저 바위에는
갈매기가 앉는다. 혹은
날고 끼룩거리고
어제는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사람을 그리워하고
오늘은
돌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바다에 뜬 구름을 바라보며,
세상 모든 것은
앉는 자리가 그의 자리다.
벼랑 틈서리에서
풀씨가 움트고
낭떠리지에서도
나무가 뿌리를 편다.
세상의 모든 자리는
떠버리면 흔적 없다.
풀꽃도 자취없이 사라지고
저쪽에서는
파도가 바위를 덮쳐
갈매기는 하늘에 끼룩거리고
이편에서는
털고 일어서는 나의 흔적을
바람이 쓰담아 지워버린다.
<무제>
세상 만물이 있는 곳이 그것이 존재하는 곳이며 없어지면 존재는 사라진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붙잡고는 합니다. 이미 떠난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삶을 망치고, 같은 길로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무언가가 왔다가 다시 사라지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환하여 다른 것이 그것을 메꿉니다. 그저 순환하고 순환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존재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생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지요. 존재했던 것이 없는 자리에는 쓸쓸함이 남으니까요. 그저 깊게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과 죽은 존재와 무(無)는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삶에 큰 미련을 남기지 않았던 그는 정말 바람처럼 갔습니다. 1978년 어느 날 새벽 산책에서 돌아온 박목월은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누웠다 편안한 모습으로 귀천했습니다.
시인 정지용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 평했습니다. 자연 친화적이고 서정적이면서 향토성 짙은 시가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죠. 박목월의 대표작 <나그네>는 이러한 평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시입니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낭만적 감성. 하지만, 그의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상과 현실을 살면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시에 남겼고, 이후에는 눈앞의 고민을 넘어서 삶과 존재, 자연의 기본적인 법칙들에 대한 고민을 시에 담았습니다. 누구보다 현실적이었고, 누구보다 철학적이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박목월을 ‘청록파’ 시인이라고 배웁니다. 그리고 그가 그 시대에 썼던 아름다운 시들을 보고 감탄하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삶에서 지극히 일부였습니다. 그는 이상적 자연 말고 현실과 일상에도 존재했고, 삶과 존재의 법칙 안에도 존재했습니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그의 시는 경주에서부터 시작되어 서울에서 죽을 때까지 그의 삶과 생각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시를 따르면 그의 존재는 사라졌지만, 사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시 속에 살아남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