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학문이나 하고 싶은 마음, 이황

안동

by baekja



왜관에서 구미를 거쳐 안동으로 올라왔습니다. 내려가다가 올라온 이유는 안동에서 월요일에 할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에 뭐라도 하려면 대구로 가야 했고, 그런 이유로 대구를 갔다가 왜관을 거쳐 안동으로 올라오는 일정을 짜게 되었습니다. 전날 늦은 밤에 안동 숙소에 도착하여 한숨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급행 3번을 타고 도산서원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오전 6시경의 안동 급행 3번 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6시경 첫차는 터미널에서 출발 안 하고 시내에서 출발한다더군요. 하하하. 그렇게 생으로 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8시 15분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과 이육사 문학관이 있는 도산면까지는 무척 멉니다. 약 25km 정도죠. 도산서원까지 가는데만 버스가 50분이 걸립니다. 위치는 엄청 산골이라 걸어가기도 녹록지 않습니다. 급행 3번 버스는 도산서원 삼거리를 거쳐 돌아서 도산서원 앞까지 내려주는데 저는 도산서원 삼거리에서 내려 15분 정도를 걸어 도산서원으로 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것이 분위기가 좋아 간만에 산길을 걷는 기분을 내려고 걸어갔습니다. 도착하자 잘 닦인 주차장과 함께 이런저런 상가와 해설안내소가 보였습니다. 10시부터 해설을 한다 하여 짐도 잠시 물품보관소에 넣어두고 화장실도 갔다 오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0시부터 해설을 듣게 되었죠. 평일 이른 아침에 해설을 들을 때 늘 그랬듯 듣는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20230920_092958.jpg 도산서원 매표소


이곳에 역사 답사를 하러 왔으면 모를까 여행의 목적이 문학 기행이라 도산서원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실 도산서원이 문학과 그리 관련이 깊은 장소도 아니죠. 그럼에도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한 가지, 수능 때 질리도록 공부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었습니다. 고전시가를 공부할 때 무조건 공부하는 시가죠. 도산12곡은 말 그대로 정계에 진출하였다가 도산으로 돌아와 지은 시입니다. 학식이 매우 높고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학자였던 만큼 그는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중앙정계에 불려갔는데 과거나 현재나 학문과 현실 정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던 모양입니다.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이황은 골치 아픈 정치를 잊고 자신의 고향인 이곳 예안군(조선시대 도산면 근처의 지명)으로 내려와 살고자 했습니다. 물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제자를 올바르게 길러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꾸고자 했죠. 그러한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 도산서당입니다.


도산서당이 세워지기 전에는 계상서당이 있어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나 허술하여 무너졌고, 이를 1561년 새로 자신이 설계하여 지은 것이 도산서당입니다. 허물어진 계상서당의 모습은 상상도로나마 남아있는데 그것이 천 원권 지폐 뒤에 있는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이죠. 도산서당의 본 건물은 무척 개방되어 있습니다. 들어오는 입구부터 넓은 마루까지, 학생이라면 누구나 와서 편히 질문하고 토론하고 배움을 청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학문에 관해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던 이황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마 26살이나 어린 기대승과 벌였던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도 이황이 학문에서는 나이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가르쳤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산서당의 동쪽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가 있습니다. 이름은 농운정사(隴雲精舍)로 ‘농운’은 고개 위 걸려있는 구름이고 ‘정사’는 정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工’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동쪽의 시습재(時習齋)는 때때로 다시 공부한다는 뜻이 있고, 서쪽의 관란헌(觀瀾軒)은 물결을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습재의 의미는 이해가 되나 관란헌의 의미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산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쳐다본다는 표면적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학문을 책에서만 익히고 행하지 않음은 학문을 썩히는 것이죠. 학문을 배우는 것을 넘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려면 책 속에 담긴 학문을 익히는 것을 넘어 물결이 흐르는 강을 보면서도 유교의 도(道)를 말하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황이 이름을 관란헌이라고 짓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관란헌에 올라 바라보는 낙동강도 무척 아름답다고는 합니다(지금은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20230920_104417.jpg 농운정사


이 뒤쪽의 건물들은 이황이 죽은 뒤 도산서원으로 사액 받으면서 세워진 건물들이기에 여기서는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황이 쓴 도산십이곡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이황이 도산에 내려온 이유와 내려온 후 한 행동들을 생각하며 도산십이곡의 몇 부분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죠.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라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초야우생(草野禹生)이 이렇다 어떠하료

-벼슬 없는 어리석은 인생이 이렇다 어떠하랴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므슴하료

-하물며 자연에서만 사는 병(벼슬에 나가지 않는 병)을 고쳐 무엇하랴 <제1수>


당시(當時)에 녀던 길을 몇 해를 버려두고

-당시에 가던 길을 몇 해 동안 버려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사 돌아온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나 돌아오나니 딴 데 마음 마로리

-이제야 돌아왔으니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 <제10수>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그 아니 쉬운가

-어리석은 사람도 (학문을) 알며 하는데 그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못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성인도 (학문을) 못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라라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모르겠구나 <제12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中


1수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바라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10수에서는 벼슬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와 학문에 전념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말하며 학문에 매진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2수에는 학문에는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끝이 없다며 늙어서도 학문에 계속 매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황이 왜 도산에 내려왔는지, 그리고 이제 도산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명확히 드러나 있는 시가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다짐과 같은 시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름 신나 보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정치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조용히 학문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황의 호인 퇴계(退溪)가 시냇가로 물러남을 의미함을 봤을 때 아마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삶을 얻어 행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시가에 담겨 있는 것이겠죠.


이황은 대학자입니다. 일본 에도시대에 한창 성리학을 연구할 때는 이황을 일컬어 ‘동방의 주자’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한국 철학사를 통틀어 큰 획을 남긴 중요한 학자이기도 하죠. 우리의 천 원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이렇게만 생각하면 도산십이곡과 도산서원은 무척 어려운 고전 시가와 세상 재미없는 유적지로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대학자인 이황 선생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똑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현실 정치를 겪으며 현실의 매운맛을 맛봐버렸고, 시골로 돌아가 자연과 어울리며 공부나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현실에 치이며 세상을 돌아다니기를 끝내고 노년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학문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무척 신나고 즐거웠을 겁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도산십이곡을 지었고, 도산서당을 설계하였겠죠. 자신보다 학식은 낮지만, 패기는 훨씬 넘치는 제자들을 보면서 가르치는 즐거움 또한 느낄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황 선생이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 즐거워하는 모습,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이제는 도산십이곡이 어렵기만 한 고등 국어의 고전 시가가 아니라 친근한 할아버지의 신남을 담은 시가로 조금이나마 기억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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