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게임, Monument Valley

by baekja

수능이 끝났음에도 전원 기숙사인 학교에 갇혀 있었어야 했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한 채로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수업을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축구나 영화로 때워지는 실정이었고 그마저도 짧은 단축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 돌아가 소설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불법 다운로드로 가져온 게임에 되게 감명을 받았는데 그 게임이 Monument Valley였다. 에셔의 그림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은 듯한 그 게임은 수려한 일러스트와 게임 디자인,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BGM으로 나에게 감명을 주었다. 하지만 플레이 타임은 길지 않아 2일 안에 모든 걸 깨버렸고 그 이후론 그 게임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막막한 군대 생활을 빠르게 보내주는 핸드폰 게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떠오른 Monument Valley를 거금 4,500원을 주고 내려 받아 플레이하게 되었다.


Monument Valley는 ustwo라는 회사에서 2014년 3월 12일에 출시한 iOS,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퍼즐 게임이다. 2014 Apple Design Award 수상 및 2014 애플 아이패드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었으며, 2014 Unity Award 및 2014 Dice Award에서 베스트 3D 비주얼 및 아트 디렉션 등의 상을 거머쥔 웰메이드 게임이다. 주인공이 손으로 터치한 곳으로 이동하며 레버, 블록, 토템을 이용하여 끊어진 길을 이어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이 게임의 클리어 방법이다. 총 10개의 Original 스테이지와 ‘Forgotten Shore’이라 불리는 8개의 추가 스테이지 그리고 ‘Ida’s Dream’이라는 1개의 추가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스테이지들에서 느껴지는 퍼즐의 난이도가 아니라 퍼즐의 일러스트가 주는 아름다움이 주가 된다. 대부분이 스테이지들은 원래는 곡선이었어야 될 부분도 직선으로 돼있어 마치 ‘사각형의 나라’라는 느낌을 준다. 자연의 곡선이 아닌 인공의 직선을 사용해 ‘사각형의 나라’를 만든 이유는 인간이 만든 monument(기념물)이라는 설정을 따른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형태의 단순함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착시를 일으켜 2차원과 3차원을 오가고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효과를 쉽게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본 형태가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단순함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편안함도 직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게임이 ‘힐링 게임’이라고 불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형태보단 색채이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연한 파스텔톤 색을 사용하여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색채는 스테이지마다 급변하여 마치 정글을 연상케 하는 연두빛의 색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맑은 하늘빛의 색채, 그리고 밤하늘의 그라데이션을 표현한 색채 사용으로 게임을 깨는데 집중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감상을 불러낸다. 이렇게 따뜻한 색채를 보며 천천히 게임을 진행시켜 나가다 보면 귀에 들리는 편안하고 은은한 BGM이 더 이 게임을 차분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현대의 흔한 게임들이 더 어렵고 더 화려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게임은 많은 스테이지는 없을지언정 급하게 레벨 업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보통의 게임과는 달리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을 주고 급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차분함을 주는 정말 좋은 게임이다.


이런 정서적 위로와 같은 것 말고도 내가 이 게임에 집중한 건 다른 이유도 있다. 이 게임은 게임 자체가 대부분 ‘에셔’라는 화가에서 오마주(hommage)한 것이다. 길을 좌우로만 돌리는데 갑자기 상하로 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 다든가 한 측면에서 봤을 때는 끊어졌던 길이 스테이지를 돌림으로써 이어진다든가 하는 이 게임의 기본 원리는 에셔의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Forgotten Shore’의 ‘평온한 법정’이라는 스테이지는 에셔의 <폭포>를 그대로 오마주했다. 거기에 에셔가 자주 미술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던 뫼비우스의 띠도 장식적 소품으로 자주 나와 게임을 하나하나 해결할 때마다 에셔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것이 다수 있다.


이런 에셔의 작품 중 <상대성>을 보면 ‘Monument Valley’와의 가장 큰 공통점을 알 수 있다. 3차원적으로 현실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만들 수 없는, 일상적 현실이라고 착각할 법한 비현실적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일상의 풍경묘사가 중력이 뒤바뀐 상태로 다수의 차원을 병렬하고 시각의 혼합을 일으키면서 마치 미래적 공간이나 제의적인 공간 즉,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에셔는 무한히 반복하는 것들을 만들어내 ‘그래픽 아트(Graphic Art)’의 새 장을 열고자 했고 이 게임에서는 현실에서 멀어지는 낯섬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신비함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세계에서 더욱 멀어져 잠시 속세의 고민을 잊게 만드는데 사용하고자 했다.


여전히 군대 생활관에 돌아오면 반복되는 일에 지쳐 자그마한 성취감이라도 얻을 수 있는 캐릭터들의 레벨 업에 목을 매고 있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아무리 일해도 성과조차 볼 수 없는 반복된 쳇바퀴 안의 삶은 너무 답답해 게임의 자그마한 성취에도 목을 매게 되니까. 하지만, 늘 하던 그런 게임들 말고 가끔은 시각과 청각에 주는 아름다움 자극을 통해 사람들을 힐링하게 만들고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monument들의 신비함으로 잠시 이 변하지 않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게임을 해보는 건 어떠한가. 군대의 일상에 지쳐 잠시 쉴 곳을 찾는 사람에게 Monument Valley로 떠나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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