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도피

by baekja

다가오는 전역은 좋기는 하지만 당장에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다.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내 별 거 없는 군생활은 나를 변모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내가 나아가야할 길을 가기 전 합리적인 쉼터가 되어주었다. 온갖 부조리가 가득했던 이곳은 그 부조리에 분노하고 당장 앞에 닥친 근무와 훈련만을 해결하도록 근시안적인 시야를 갖게 했으며 사회에서 내가 받아야하는 부담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전역이 대략 두 달 남은 지금 군대를 오지 않은 내 동년배들은 취직 전선에서 싸우고 있거나 대학원에서 끝도 없는 과제 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일병, 상병 때는 남의 이야기 같았던 그 이야기들이 전역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나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야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1,2학년 동안 술로 망친 학점 복구는 필수적이다. 이미 사라질 만큼 사라진 인간관계에서 공부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혼술도 거뜬히 하는 나에게는 그것과는 상관없는 나의 의지만이 가장 중요할지 모르겠다. 이런 학점 공부도 해야 하는 와중에 외국어 공부에 미술사 공부까지 따로 해야 하는 상황에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가끔은 군생활이 조금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에도 이러한 상황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수학을 풀어야 하는 시간이 오면 나는 늘 도망쳤다. 교실에서 문을 열고 도망쳤다는 것은 아니고 마음을 하늘로 도망치게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는 늘 백지였고 단 한 번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내신에 선생님이 답을 똑같이 낸다는 말이 있어 프린트에 나온 문제와 답을 다 외웠을까. 죽어도 풀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망친 대신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친 대신 역사와 미술을 더 공부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말도 안 되는 내신으로 지금의 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원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만족할만한 대학이었다. 그때까지는 상당히 만족했다. 전공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정말, 생각보다 역사를 전공으로 공부할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학부 공부임에도 그냥 그랬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재밌는 건 사실이었지만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학문은 아니라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여전히 내가 대학에서 가장 재밌게 들었다고 생각하는 수업은 <동양미술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이었다. 1교시임에도 그 어떠한 결석도 하지 않은 수업은 그 수업이 유일했다. 간신히 버틴 1학기가 지나고 이것저것 전공을 끼워넣자 2학기부터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군대 가기 전 간신히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자괴감이 들어 아주 조금 학점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끝에서 결국 선택한 건 군대. 군대에서도 그냥 역사와 미술을 동시에 공부하며 그저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확실한 목표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목표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그 시간에서 마저 도망치던 중 딱 한 가지 경험이 나를 다시 멈춰 세웠다.


너무 힘들어 휴가를 미친 듯이 사용해야만 했던 8월, 그리고 그 허전함을 달래려 찾은 미술관에서도 그저 재밌다는 느낌이었지 무언가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렇게 미술관을 다니는 것에도 지쳤던 휴가의 말미에 나는 이미 본 전시회를 다시 보러 서울의 한 현대 미술관을 찾았다. 거기서 만난 박서보의 묘법.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찢길 대로 찢긴 상태로 도망가던 내 마음은 거기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모르겠다. 처음이었다. 미술작품에게 위로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평안함. 당신이 얼마든지 도망치더라도 나는 이곳에 존재하여 당신이 종국에 지쳐 멈출 데를 찾을 때 잠시 쉴 곳이 되어주고 계속 도망쳐도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 빨간색으로만 칠해진 추상작품을 쳐다보고 걸어 나와 문이 잠긴 창덕궁 돈화문 앞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푸르고 맑았으며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다시 보았던 그 작품에 대한 감정을 맑은 하늘과 함께 계속 담아두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데 익숙해진 나는 이러한 다짐이 무색하게 또다시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졌고 유튜브에 빠진 폐인이 되어버렸다. 폐인이 되는 내가 그저 싫어 찾은 서울 부암동의 한 미술관 거기서 나는 우리나라 한 저명한 화가의 작품을 보고 전율했다. 단 하나의 전시공간에 그 사람의 추상화 필모그래피를 전부 모아놓은 그런 전시에서 나는 전시공간을 다 돌고 있는 거대한 파란 점의 규칙적인 물결에 전율했다. 이번엔 위로가 아니라 마치 자연의 거대한 풍경을 보고 경외를 느끼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작품 앞에서 멈춰 서서 오랜 시간을 그저 쳐다보았다. 아아. 내가 이제 도망가기엔 마음이 더 이상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그 길 앞에서 전혀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동요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감동받고도 내가 이 길을 가지 않는 것은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 들 것 같았으니까.


간신히 나는 다시 내 길의 출발점에 섰다. 그리고 이제 남은 70일의 군생활은 마지막의 도피이자 그전의 준비시간이겠지. 머나먼 길을 가기 전 짐을 챙기고 아픈 곳은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면 나는 이제 머나먼 길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 친구가 물었다. "아직 현실에서 도망칠 구멍이 남지 않았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더 이상 현실에서 도망칠 구멍이 없어." 아무래도 잘못 답한 것 같다. 다시 물어본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이 그 도망칠 구멍을 바라볼 생각을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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