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2019

by baekja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 쯤으로 넘어갈 무렵 나는 집에서 그저 놀 수 있었다. 가끔 잡히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에나 나가면서.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행복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과의 교류가 생겼고 그것에만 집중해도 나에게 남는 것은 많을 줄 알았다. 수능과 대입이라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12년의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자 나에겐 그다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이 즐거움만을 누리는 게 행복했다. 새로운 친구, 술자리라는 새로운 환경, 신촌에 존재하는 내가 가볼 생각도 안했던 수많은 체인점들은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 온 나는 많은 목표를 잃은 상태로 일단은 새로운 기류에 휩쓸려 다니며 재밌게 놀았다. 2016년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나는 2017년을 그렇게 보냈고 2018년에는 잠시 방탕한 술고래로 변한 나에게 제동을 걸기 위해 군대라는 별로 가고 싶지는 않지만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내가 평범하게 누릴 수 있었던 그 모든 특권들은 다시 한 번 제동이 걸렸다. 정말 나쁘게만 보면 한없이 나쁘게만 볼 수 있었던 군대의 모든 순간들을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2019년이 왔고 전역은 아직 일 년이 넘게 남은 상태였다.


괜찮은 선임들과 얘기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재밌는 후임들과 놀며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군생활의 끝자락이자 202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왔다. 2년 가까운 군생활 동안 얻은 것은 무엇일까? 사회에서는 거의 잊힌 사람이 되어버렸다. 첫 휴가 때까지만 해도 넘쳐나던 술 약속은 모두 사라졌고 혼술이 편안해져버렸다. 동생과 엄마와 노는 시간이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남은 친구들과는 더욱 친해졌다. 매일 보는 얼굴이 그 얼굴이라지만 지금까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부쩍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럼에도 내가 가진 것이 아예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사람과 교류가 적어지다보니 부쩍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다. 휴가 때 공부하러 왜 도서관을 가는 지 이해를 못하던 사람이 어느새 공부를 하러 학교 도서관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자니 약간 웃음이 나오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공부를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내가 원하는 아무 주제에 관해서 책을 뽑아 읽고 쉬운 논문을 잡아 슥 읽다보면 가끔은 그 지루함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탓에 점점 재미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싶다. 어떤 주제가 나와도 유머러스하게 넘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아이 같았던 예전을 잃은 것 같아 슬프면서도 ‘이렇게 되어야 내 꿈에 더 다가갈 수 있지.’라며 나를 달랜다. 특히 대학원 간 친구가 점점 저런 모습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내 미래인 것 같아 안쓰러우면서도 저만큼은 공부해야지라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가는 중인데 나보다 힘든 그 길을 먼저 걷고 있는 그 친구가 참 멋있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가야할 길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공부가 늘다보니 자연히 미술관에 가는 시간이 늘었다. 군생활 중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목표도 희망도 모두 잃었던 당시 나는 처참했다. 텔레비전이나 틀어놓고 멍 때리는 순간순간이 최악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길었던 적이 없었다. 휴가를 몇 번이고 쓰고 나가서 술을 마시고 친한 친구들에게 고충을 털어놓아도 뭐가 되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훈련을 받고 피곤해도 새벽 3시까지는 죽어도 잠에 들지 못했다. 버티다 못한 나는 휴가를 아주 길게 썼다. 그리고 대학 생활 처음으로 미술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싶다고 얘기는 했지만 매일 가는 전시에서 차이를 느끼지 못하던 나는 약간 질려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보았던 전시에서 나는 꿈꾸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현대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성적으로만 이해했던 나는 그 순간 고작 빨간 네모 모양의 거대한 한지에 위로를 받고 있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후에 천천히 걸어 창경궁의 야경을 보러 갔던 나는 모든 창덕궁 앞에서 월요일에 고궁이 전부 쉰다는 것을 기억하고 너털웃음을 짓다가 그대로 창덕궁 대문 앞에서 누워버렸다. 기와 위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은 높디높아 전혀 닿을 수 없어보였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나를 거부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기분이었다. 사람들에게 막연히 예술작품을 쉽게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공유해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약간 구체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예술은 정치와 거리를 둬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전히 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국가나 이념의 선전에 예술이 사용되는 것은 생각 만해도 역겹다. 하지만, 예술이 사회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는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정하지는 않겠다. 예술이라는 것에 아직 정의를 내릴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만든 것은 확실하기에 그 작가의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들의 생각은 세상을 비판하든 세상을 조금 따뜻한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든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든 아주 다양하다. 아마 내 좁디좁은 식견으로는 여기까지 닿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지만 한 선임이 있어 조금 더 빨리 닿을 수 있었다. 역사와 미술, 그리고 발라드를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힙합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그 사람과의 공통점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가진 나와는 많이 달랐던 시선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바름을 추구했던 그 선임의 사고방식은 아마 내가 미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함으로써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고 올바르게 만들어보겠다는 현 목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2019년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마냥 웃고 떠들던 대학생에서 미술이 사회의 올바름과 개인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곳저곳 쏘다니며 매일매일 술을 먹던 대학생에서 오래 친구를 할 것 같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고 술 마시며 얘기할 사람도 별로 없는 복학 직전의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마냥 천진난만하던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던 나의 예전과 달리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나의 현재는 이제 사회적 부담감과 무게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것이 변하고 재미없고 칙칙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정말 길고 긴 2019년을 보내고 새 2020년을 무사히 맞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들에게 깊고 깊은 감사를 표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새로 만든 목표가 방향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2019년을 마무리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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