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45분, 공기는 서늘했지만 차갑다고는 말할 수 없는 늦가을의 어느 아침과 같은 느낌이었다. 설날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 인천항까지 가는 길은 뻥 뚫려있었고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내에도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많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이번 겨울 날씨 덕분인지 바다가 잠잠하여 근 며칠 간 배 통제가 되지 않은 듯했다. 표를 받고 달콤쌉싸름한 멀미약을 삼키고 나서 웹툰을 보니 내 마지막 복귀를 시켜줄 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인 새벽 7시 30분의 항구는 분주했지만 고요했다. 배에 올라타서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배가 출발한 후 창밖을 내다보자 해가 뜨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구름 뒤를 아주 강렬한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봐서는 저기에 해가 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졌다.
배에서 자고 일어나니 11시, 소청도가 보였다. 목이 뻐근했지만 꿈은 꾸지 않아 피곤함은 어느 정도 풀린 기분이었다. 파도는 잔잔하기 그지없었고 햇빛이 바다에 비쳐 부서지는 그 풍경에 잠시 매료되었다. 백령도에 내린 것은 11시 40분쯤이었다. 새로운 간부님이 부대 차를 끌고와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 전역하기 전까지 저분의 이름은 외우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한 후 잠시 차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는 썰물시간이라 물이 빠져나간 바다가 보였고 해안선을 따라 서 있는 가드레일이 보였다. 무언가 본 듯한 이 장면에 나는 마음을 뺏겨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똑같은 장소를 바라보며 잔뜩 겁먹어 있던 첫 입도날의 기억이 새록새록났다.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그때는 해안선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고 안개가 자욱하여 신비로운 느낌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신비하고도 두려운 느낌과 부대의 대부분의 사정을 알아버린 지금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느낌이 대조되었다. 이에 그때 안개가 자욱하던 백령도의 비밀스런 모습과 해가 눈부시게 내리쬐어 백령도를 발가벗겨 보여주는 느낌 또한 대조되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던 밀물 때의 바다와 바다 밑바닥이 얼마 없음을 보여주는 썰물 때의 바다가 대조되어 생각보다 군대 일이 별 거 없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나치는 길에 보는 롯데리아와 파리바게트를 보며 이제는 다시 볼 일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마지막의 마지막. 이미 나는 내 주 보직의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왔다. 새벽의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순찰을 이용해 부대를 한 바퀴 돌았던 마지막 새벽 근무는 내 군생활을 사실상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그 새벽 근무가 끝나고 있었던 마지막 밤 근무 때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군견과 순찰을 돌았다. 목줄은 거의 풀어준 상태로 돌았는데 항상 나를 따라오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 군견 순찰이 끝나고 내 말을 알아들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 내 근무를 함께 해주었던 군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은 전달되었으면 했다.
나와 근무를 마지막까지 같이 해준 후임에게 해 준 말은 별 거 없었다. 군생활이 참 짧았다는 이야기였다. 군생활이 재밌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한 것이 없어서 너무 짧다는 이야기였다. 죽어도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못난 선임 밑에서 고생했다고. 그렇게 얘기를 끝낸 후엔 그냥 잡다한 군대 일상에 관련된 평생 할 것만 같았던 그런 매우 평범하지만 이제는 평범해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했다.
잠시 방지턱에 걸려 덜커덕 하는 느낌과 함께 회상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주 보직의 근무는 끝났지만 근무가 남아있긴 하구나. 짬은 찰대로 찼지만 전혀 새로운 근무가 나와 남은 2주간의 군생활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마무리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해봤다. 복학 신청, 기숙사 합격 확인, 제주도 여행 준비 등. 할 일은 차고 넘쳤다.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 즈음 그저 바로 앞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은 복귀 보고였다. 그저 웃으며 마지막 복귀마저도 끝내지 못한 지금 끝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 가까이 오자 백령도에서 그렇게 맛있다는 냉면집이 보였다. 신병이 기간 동안 사회문화체험이라며 먹었던 냉면과 파전을 엄청 맛있었다. 그 일이 엊그제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 짓다가 병장 때 도내 휴가를 나와 냉면과 수육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주 오래 된 일인 것 같아 당최 시간의 흐름은 제멋대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부대 앞에 도착했다. 웃으며 반기는 후임들이 참 좋았다. ‘지금 사회 나간다고 이렇게 웃으며 반겨줄 사람은 몇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 보고를 끝내고 생활관에 들어오자 대부분의 후임들이 나를 신기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전역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피부로 느껴졌다. ‘갈 사람은 빨리 가야지.’라고 생각한 뒤. 짐을 풀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군생활이 2주 남은 지금 아직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느낌을 쓰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없을 복귀 길의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 글을 썼다. 다들 부대에 복귀하는 그 길이 길지 않냐고 자주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을 오는 동안에 기분이 어떠냐고도 많이 물었다. 내가 할 말은 그냥 그 길이 그 길이고 기분은 평범하고 다를 것 없다고 하고 싶다. 이제는 복귀마저 일상 같은 기분이다. 가끔은 복귀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던 신병 때가 그립다고 생각하지만 복귀 길마저 일상 같은 무감각함과 편안함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마지막 복귀도 다를 것 없이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