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마치 기계와 같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일상을 똑같은 시간에 반복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전히 기계와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여 문제가 없음을 목표로 삼기에 가장 기계와 같은 조직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계와 같은 조직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하는 시간에 딱딱 맞추어 일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에 딱딱 맞추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계이다.
이런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바로 어제였다. 분명 시계를 차고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왼쪽 손목이 허전했다. 당황해서 침대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찾지 못한 채로 출근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순찰을 나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계속 확인하려고 겉옷의 긴소매를 걷어 왼쪽 손목을 확인했지만 비어있는 손목엔 그 어떠한 시간도 표시되지 않았다. 다행히 시계를 가져 온 후임의 도움으로 시간에 맞추어 순찰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순찰을 나가서도 시계가 없는 것은 대단한 문제였다. 순찰함에 순찰 카드를 넣으면서 시간을 적어야 하는데 시계가 없어 몇 번이고 빈 손목을 보려 소매를 걷었는지 모르겠다. 계속 시계를 갖고 있던 후임 덕분에 근무를 잘 끝낼 수 있었지만 순찰 카드를 넣을 때마다 시간을 물어봐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했다. 이런 불편함은 야외 훈련을 나가서도 계속되어 훈련이 끝나는 시간이 언젠지를 생각하며 후임에게 계속 시간을 물어봐야 했다. 마치 내가 일부러 시계를 안 가져오고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는 것을 후임에게 시킨 것 같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야외 훈련이 끝나고 와서 바로 침대를 천천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손목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 걱정이 한 가득이었던 나는 점점 짜증이 차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한 생각이 머리를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베개를 뒤집었다. 내가 그날 내내 애타게 찼던 시계는 베개 밑에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근무는 끝났지만 바로 시계를 왼쪽손목에 찼다. 오늘 내내 허전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 안정감을 찾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늘 하듯이 오른손으로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보았다. 늘 그랬듯이 시계는 정확하게 나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든 자리는 모르지만 난 자리는 안다고, 없었던 시계가 돌아오자 그 존재가 더없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간을 확인하고도 시계를 좀 더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에 그어진 여러 개의 흠집이었다. 원래는 깨끗했을 시계의 화면에는 이미 푸르죽죽한 어두운 녹색 바탕과 검은색의 숫자가 아닌 하얀색의 불규칙한 선이 다수 있었다. 시간을 아는 데 큰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분의 0과 8을 구분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선부터 빈 화면의 바탕을 수놓는 선들도 많이 보였다. 험한 길을 갈 때, 엎드려서 사격자세를 취할 때, 부주의한 움직임으로 순찰을 돌다 휘청거렸을 때, 그리고 가끔 실수로 시계를 놓쳐 떨어트릴 때 생긴 상처들이었다. 나의 모든 고된 순간이 담겨있어 잠시 감상에 잠겼지만 너무 시계를 험하게 다룬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그리고 그런 험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나에게 늘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고마웠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 눌리지 않는 손목시계의 옆쪽에 달린 조그마한 은색 버튼이 보였다. 3개의 버튼 중 현재 눌리는 버튼은 1개 밖에 남지 않았다. 시계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이 때문에 알람이 울리는 시간을 변경할 수 없게 되었고 야광기능 사용이 불가해져 밤에 다른 불이 없으면 시간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것도 시계의 문제가 아닌 내 실수이다. 방수가 잘 되기에 샤워장에 들고 들어갔다가 그만 미끄러워진 손이 시계를 놓쳐 떨어트려 고장이 났다. 결국 평소엔 문제가 없지만 알람시간을 따로 설정할 수 없어졌다. 그래서 알람 시간은 새벽 두시에 설정된 채로 멈춰 있다. 이 시간을 바라보고 있자면 새벽 근무를 나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시계에게 고장 낸 점은 미안하다. 그럼에도 알람시계에 설정된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어 과거의 내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점은 정말 고맙다.
이런저런 고마운 점이 많지만 역시 시계의 가장 고마운 점은 앞에서 말한 시간을 알려주는 점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이 시계가 아니었다면 아마 군생활에서 얼마나 더 많은 실수를 하고 질책을 받았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딱딱하게 돌아가는 군대에서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덕분에 현재까지 문제없이 군생활을 하고 무사 전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나 싶다. 내 훈련소부터 지금까지를 가장 가까운 옆에서 바라본 친구이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반자가 이 시계라는 것이 참 우습지만 그래도 오래 붙어있다 보니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무사히 그리고 정확한 시간에 내 시계와 같이 전역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