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들어와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 야간에 하는 훈련도, 자다 말고 새벽녘에 일어나 비몽사몽인 상태로 도는 순찰도 아니다. 방독면을 쓰고 하는 훈련이다. 방독면을 쓰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보면 그냥 뛸 때보다 숨이 열 배는 빨리 찬다. 그리고 훈련 마지막엔 정말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된다. 훈련 중에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사람도 꽤 있다. 사람을 화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숨 쉬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숨쉬기 힘들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종 감각마저 제한한다. 첫 번째로 느껴지는 건 시각의 제한이다. 판다의 눈에 늘 있는 검은색 무늬와 비슷한 자그마한 원형 플라스틱 창 두 개로 밖에 세상을 볼 수 없다. 원래의 시야가 제한당해 아름다운 지구의 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서러운데 가끔 잘못 착용하면 습기가 차서 플라스틱 창에 전부 김이 서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잿빛 세상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시력을 상실하면 숨 쉬는 게 괴로운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을 모두 잃은 기분을 정말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뒤로 훈련을 계속하면서 느껴지는 건 청각의 상실이다. 숨만 쉬어도 음성진동판에 의해서 ‘우우웅’ 이상한 소리가 나서 짜증남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그 우우웅 소리를 넘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공기의 진동은 귀를 감싼 방독면의 천에 막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위에서 나오는 명령도, 옆에서 조용히 동기들이 치는 농담도 들을 수 없는 방독면 내의 나의 상황은 그저 최악이다.
감각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방독면을 쓰면 가끔 나 자신을 잃는다. 방독면을 쓰면 흔히 영화에서 위험물을 다루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는 엑스트라로 모두 변한다. 그리고 엑스트라로 변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병사 1,2가 되거나 1,2열에 있는 군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임무를 수행하는 조로 분리되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가 된다. 그냥 훈련을 할 때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같은 느낌이지만, 방독면을 안 쓴 경우 우리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 모습 등을 모두 담고 있는 그 사람의 개성 그 자체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최소한의 우리의 각자의 존재를 구별해서 인정받는 것이다. 군인으로서 수많은 개성이 지워진 후에 마지막으로 존중받던 이름마저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방독면은 왜 쓰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경우 방독면에 짜증을 내긴 하지만, 군생활하면서 방독면에게 감사했던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훈련소 화생방 훈련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흰색 연기가 자욱한 실습장 안에서 숨을 한 번 들이키는 순간부터 이미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CS탄의 별칭인 Cherry-Strawberry탄을 떠올리고 그 별칭 한 번 참 거지 같이 지었다며 욕을 하면서 고춧가루를 한 주먹 코와 기도에 쑤셔 넣은 그 고통을 버텼다. 다 같이 콧물과 침을 한 움큼 흘리고 나면 그 때 방독면을 쓰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환희에 찬다. CS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기적에 천국이 여기에 내려왔음을 느끼고 편안히 실습장을 나온다. 그리고 이런 기적을 맛보게 한 방독면에게 그저 감사한다는 말을 되뇌게 된다.
이처럼 방독면은 위험물질을 제한해 우리를 돕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감각을 제한한다. 그리고 이렇게 감각을 제한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돕기도 한다. 마치 원형 창문으로만 보이는 세상은 전에 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모든 것은 원형틀 안에 갇혀 있으며 이어져야할 세계의 요소요소들은 끊어져서 보인다. 기묘하기 그지없지만, 답답한 방독면 내의 세계를 벗어나면 원래 존재하고 있던 우리의 세계를 다시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플라스틱을 거쳐 탁해졌던 모든 세계의 빛은 내 망막에 들어와 나를 잠시 기분 좋은 어지러움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다.
물론, 우리는 방독면을 벗으면서 원래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기도 한다. 가려졌던 각각의 이미지가 다시 드러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 잠시나마 숨었던 이름은 다시 나타나고 모두는 각자의 특별한 존재로 그 자리에 실재한다. 땀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힘듦이 가득한 얼굴엔 검은색 가루가 묻어있지만, 하나 같이 엑스트라였던 우리 모두는 다시 세계의 주연으로써 자리하며 빛난다.
방독면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위험물질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능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 훈련상황에서 방독면은 애물단지일 뿐이다. 숨을 못 쉬게 만들고, 감각을 제한하며, 우리의 개성을 없애버린다. 분명히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리고 이런 고통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각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기묘하고 이상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 방독면을 벗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 곁에 늘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맑고 신선한 공기. 화려한 채도의 색상. 벌레가 울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 평범한 일상에선 신경조차 쓰지 않던 세계가 품고 있던 아름다움들을 알게 된다.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는 말이 있다. 방독면은 우리의 평범한 세계를 제한함으로써 늘 우리를 둘러싼 평범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삶의 기쁨을 더해준다.